선과 악이 뒤바뀐 시대: 도덕적 혼란 속에서 다시 묻는 기준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존 스톤스트리트 회장의 기고글인 ‘악이 선이라 불리는 시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악이 선이라 불리는 시대: 미국 사회의 도덕적 혼란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4월 15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스톤스트리트 회장은 콜슨 기독교 세계관 센터의 회장을 맡고 있으며 신앙과 문화, 신학, 세계관, 교육 및 변증법 분야에서 인기 있는 작가이자 연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선지자 이사야는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라고 경고했다. 최근 알 몰러(Al Mohler) 박사가 「The Briefing」에서 언급했듯이, 오늘날 사회는 생명이 신성하고 가치 있다고 말하면서도 동시에 그 생명을 빼앗는 행위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으려 하는 ‘도덕적 불일치(moral incoherence)’를 보여주고 있다.

최근 미국 조지아주에서는 한 여성이 임신을 중단하기 위해 집에서 낙태약을 복용한 뒤 태어난 지 한 시간 만에 사망한 임신 22~24주 태아의 죽음과 관련해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이는 조지아주의 임신 6주 낙태 금지법과 관련해 제기된 첫 번째 살인 혐의 사건이다.

이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 포스트(The Washington Post)는 기사 말미에서 2022년 The Economist /YouGov 여론조사를 인용했다. 해당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19%는 주법을 위반한 낙태에 대해 살인 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답했으며, 54%는 살인 혐의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고 답했고, 26%는 확신하지 못한다고 응답했다.

보다 최근인 2025년 퓨리서치센터(Pew Research Center) 보고서는 생명에 대한 도덕적 혼란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인은 무엇을 비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가(What do Americans Consider Immoral?)」라는 제목의 이 연구는 육식부터 낙태까지 다양한 행위에 대한 인식을 조사했다. 그 결과 “미국인의 47%는 낙태가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이라고 답한 반면, 약 절반은 낙태를 도덕적 문제가 아니라고 보거나(31%), 도덕적으로 허용 가능하다고(21%) 생각한다”고 나타났다.

낙태 문제는 미국 역사 속 또 다른 중대한 도덕적 악이었던 노예제와 비교될 수 있는 측면이 있다. 남북전쟁 이전 수십 년 동안 미국 사회는 노예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러 타협을 시도했는데, 그 대표적인 사례가 1854년 제정된 캔자스-네브래스카 법(Kansas-Nebraska Act)이다. 이 법은 각 지역이 다수결을 통해 노예제를 허용할지 여부를 결정하도록 하는 ‘주권적 선택(popular sovereignty)’ 원칙을 허용했다. 그러나 이러한 접근은 이전에 노예제가 금지되었던 지역에까지 노예제가 확산되는 결과를 낳았다.

이에 대해 에이브라함 링컨(Abraham Lincoln)은 미국 독립선언서에 담긴 도덕적 기준에 호소했다. 독립선언서가 제시한 인간 평등의 원칙과 자연법에 따르면 다수의 의견이라 할지라도 노예제가 잘못되었음을 인정하고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링컨은 캔자스-네브래스카 법을 제정한 스티븐 더글라스(Stephen A. Douglas)에 대해 우리 주변의 “도덕적 빛을 꺼뜨리고 있다(blowing out the moral lights around us)”고 비판했다.

2022년 Dobbs v. Jackson Women’s Health Organization 판결에서 미국 연방대법원은 로 웨이드(Roe v. Wade)판례를 뒤집었다. 그러나 이 판결은 모든 인간 생명이 창조 질서 안에서 신성하다는 도덕적 근거를 분명히 선언하기보다 법적 절차의 문제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 결과 낙태의 합법성 판단이 다시 각 주로 넘어갔고, 일부 주에서는 낙태를 기본적인 권리로 규정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2026년 현재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노예제와 짐 크로 법(Jim Crow laws) 시대와 마찬가지로, 미국은 인간 생명의 도덕적 가치라는 매우 중요한 문제를 두고 주마다 서로 다른 입장을 보이며 깊이 분열된 상태에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문화의 도덕적 쇠퇴를 언급한 C.S 루이스(C. S. Lewis)의 말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는 복음을 전하는 일뿐 아니라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돕는 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말하기 전에 먼저 자연법의 존재를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 사함을 약속하셨지만, 자연법을 모르는 사람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조차 알지 못한다.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면 약을 찾지 않는 것처럼, 도덕적 상대주의는 무신론보다 먼저 극복해야 할 과제라는 것이다.

낙태를 비롯해 성 정체성 혼란, LGBT 운동, 비판 이론(Critical Theory), 이민 문제 등 다양한 현대 사회의 논쟁은 결국 근본적인 도덕적 질문으로 우리를 이끈다. 초월적인 도덕적 권위는 존재하는가? 무엇을 기준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것인가? 모든 인간의 생명은 가치 있는가?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모든 도덕의 궁극적 기준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은 전통, 가치, 법, 사회 규범, 다수의 의견보다 높은 기준이 되신다. 자연법과 성경 계시를 통해 드러난 객관적 도덕 기준에 따라 모든 행동과 정책은 평가되어야 한다.

이러한 시대 속에서 필요한 것은 문화 전반에 퍼져 있는 도덕적 상대주의에 맞서고, 하나님의 분명한 도덕적 기준을 붙드는 일이다. 깊은 도덕적 혼란 속에서도 그 기준을 다시 세우고 호소하는 일이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다.

#크리스천포스트 #기독일보 #기독일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