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는 말론 드 블라시오 작가의 기고글인 ‘밈을 넘어서: 디지털 조롱 속에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가이드’(Beyond the meme: A Christian’s guide to navigating digital mockery)를 4월 14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블라시오 작가는 문화 옹호자, 기독교 작가, 그리고 '문화를 분별하다'(Discerning Culture)의 저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얼마 전 필자는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는 여러 개의 밈과 만화를 한꺼번에 받았다. 필자는 그 메시지에 응답하지 않았고, 보낸 사람은 다시 한 번 단정적이고 다소 비하하는 듯한 어조로 메시지를 보냈다. 그럼에도 필자가 답하지 않자 대화는 그대로 끝났다.
이러한 조롱에는 나름의 자신감이 담겨 있다. 조롱이 효과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디지털 밈은 어떤 입장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만들고, 그 대상이 된 관점은 논리적 검증 없이 자동적으로 비난의 대상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조롱이 지적 근거가 없는 심리적 전략임을 분별할 필요가 있다. 조롱이 담긴 콘텐츠는 종종 생산적이지 못하고 감정적으로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어진다. 사도 바울도 “어리석고 무식한 논쟁을 피하라 이것이 다툼을 일으키는 줄 앎이라”(딤후 2:23)라고 권면했다.
조롱의 심리는 실제로 매우 강력하며, 여기에는 조롱의 오류(fallacy of ridicule)라는 논리적 문제도 포함된다. 이는 풍자나 비웃음을 통해 어떤 입장이 반박된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오류다. 다음 설명은 이를 잘 보여 준다.
“조롱은 논리적 공격이 아니라 심리적 공격이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에 조롱의 영향을 받기 쉽다. 누구도 우스꽝스럽게 보이는 것과 동일시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우스워 보이게 만들 수 있다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그것으로부터 거리를 두게 된다. 테리 프래쳇(Terry Pratchett)이 말했듯이, ‘웃음은 칼보다 더 빨리 이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
기독교 신앙 역시 종종 조롱을 통해 “우스운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진다. 웃음을 통해 느껴지는 불편함이 사람들로 하여금 그 신앙을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방식은 문화 속에서 은밀하게 작동하며, 신앙을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 수 있다.
대표적인 예로 애니메이션 심슨 가족(The Simpsons) 에 등장하는 이웃 가족 플랜더스(Flanders)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전형적인 복음주의 기독교 가정으로 묘사되며, 특히 네드 플랜더스(Ned Flanders)의 신앙적 모습은 호머 심슨(Homer Simpson)에 의해 반복적으로 풍자의 대상이 된다. 이러한 설정은 단순한 웃음을 넘어 문화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특정한 이미지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한다.
필자는 『심슨 가족』이 대중적 인기를 얻기 시작하던 시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대화를 나누던 경험을 떠올린다. 대화 중 필자가 사역에 참여하고 있다고 말하자, 비기독교인이었던 한 친구가 필자를 두둔하며 “말론은 신중한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사람들은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반응했다. “그러면 네드 플랜더스 같은 사람이라는 뜻인가요?” 그리고 가볍게 웃음을 터뜨렸다.
이처럼 조롱을 통한 문화적 압박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의 신앙을 표현하는 것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풍자는 때로 진리의 중요성을 흐리게 만들고, 사람들이 조롱의 대상이 되는 입장과 거리를 두도록 만든다.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은근한 조롱은 사회 여러 영역에서 발견되며,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서구권 대학에서는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경우도 있다. Kelly Monroe Kullberg 은 하버드대학교에서 베리타스 포럼(Veritas Forum)을 설립한 기독교인으로, 현재 이 포럼은 전 세계 200개 이상의 대학으로 확산되었다.
그녀는 대학원생 시절 캠퍼스에 처음 도착했던 날의 경험을 기록하며 이렇게 썼다. “오리엔테이션 점심 모임이 끝날 즈음, 예수님이나 성경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교양 있는 냉소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는 분위기를 느꼈다. 미묘한 조롱이 논리보다 더 강력하게 작용했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그날 점심 자리에서 느낀 분위기는 일반적인 모습이었다.”
이제 문화 속 표현 방식은 시트콤이나 대학 캠퍼스를 넘어 디지털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풍자는 밈의 형태로 빠르게 확산되며 강한 인상을 남긴다.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현상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 없지만, 분별력을 키우고 반응을 조절할 수는 있다. 사도 바울의 통찰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중요하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고전 2:14). 기독교 신앙을 조롱하는 태도는 지적인 논증이 아니라 공정하지 못한 방식으로 신앙을 약화시키려는 시도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를 분별할 수 있다면 신앙의 확신은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인은 불신자를 조롱하는 방식으로 대응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필자는 이러한 태도를 권하지 않는다. 우리의 시선은 언제나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자”(히 12:2)는 말씀에 머물러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 안에서 우리는 영적·지적으로 더욱 풍성해질 수 있으며,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다”(골 2:3-4)는 말씀처럼 진리를 더욱 깊이 발견하게 된다. 디지털 시대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문화의 풍자적 압박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지속될 수 있다. 이미 강조한 바와 같이, 그리스도인의 확신은 인간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며, 그 은혜는 결코 흔들리지 않는다.
물론 그리스도인이 유머 자체를 즐겨서는 안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유머는 분명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다만 조롱과 유머는 동일하지 않다. 때로 웃음은 영혼을 치유하는 약이 될 수도 있다.
마지막으로 가볍게 웃을 수 있는 이야기를 덧붙이고자 한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코미디언이 누구인지 아는가? 삼손이다. 왜냐하면 그는 정말로 집을 무너뜨렸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