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부활절을 대체하려는 시도는 남아 있지만, 그마저도 설득력을 잃는다'(The only Easter alternative left standing — and it still fails)을 3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다양한 설명을 제시해 왔다. 역사 속에서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두고 수많은 대안적 가설들이 등장했다.
부활을 신화로 보는 주장, 제자들이 시신을 훔쳤다는 설명(마태복음 28장), 예수께서 실제로 죽지 않고 기절했다는 ‘기절설(swoon theory)’, 무덤을 잘못 찾았다는 주장, 육체적 부활이 아닌 단지 영적인 부활이었다는 해석 등 다양한 시도들이 이어졌다. 이 모든 가설의 공통된 목적은 단 하나, 곧 예수가 실제로 죽음에서 살아났다는 가장 직접적인 결론을 피하려는 데 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독특한 주장은 ‘착각된 정체성(mistaken identity)’ 이론이다. 일부 주장자들, 특히 로버트 그레그 캐빈(Robert Greg Cavin)은 예수에게 알려지지 않은 쌍둥이 형제가 있었고, 그가 십자가 사건 이후 예수를 가장해 나타났다는 주장을 펼쳤다. 캐빈은 심지어 『기적, 확률, 그리고 예수의 부활(Miracles, Probability, and the Resurrection of Jesus)』이라는 400쪽 분량의 박사 논문을 통해 이 이론을 제시했다.
그러나 이러한 설명은 지나치게 억지스럽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 더 나아가 어떤 이들, 이른바 ‘신화론자(mythicists)’들은 예수라는 인물 자체가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회의적인 입장을 가진 학자들조차 이러한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신약학자 바트 어만(Bart Ehrman)은 『예수는 존재했는가?(Did Jesus Exist?)』에서 “예수는 분명히 존재했다. 고대사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유능한 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고 단언했다.
또 다른 비판은 복음서의 부활 기록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역사학자들이 폭넓게 동의하는 핵심 사실들을 살펴보면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을 잃는다. 역사학자 게리 하버마스(Gary Habermas)와 같은 학자들이 강조하는 주요 사실들은 다음과 같다.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형으로 처형되었고,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그리고 사흘 뒤, 여성 제자들이 그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후 여러 사람에게 예수가 나타났다는 증언이 이어졌으며, 이러한 경험은 제자들과 회의적인 사람들까지도 예수의 부활을 담대히 선포하는 이들로 변화시켰다.
비교적 자유주의적 역사학자로 알려진 폴라 프레드릭센(Dr. Paula Fredriksen) 역시 ABC 뉴스 특집 「예수를 찾아서(The Search for Jesus)」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들이 본 것이 부활한 예수였다고 그들 스스로 확신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나는 실제로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역사학자로서 말하자면 그들이 무언가를 보았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 ‘무언가’는 무엇이었을까? 오늘날 기독교 변증가들과의 논쟁에서 여전히 자주 제시되는 대안 설명은 ‘환각 가설(hallucination hypothesis)’이다. 무신론자 리처드 캐리어(Richard Carrier)는 “과학적 발견과 남아 있는 증거들을 고려할 때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형태로든 부활한 그리스도를 환각으로 경험했다는 설명이 가장 적절하다”고 주장한다.
이 가설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께서 부활하리라고 말씀하셨던 내용을 믿고 있었고, 예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강한 기대 속에서 환각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그들은 예수가 살아 있다고 확신했고, 그 믿음을 전하다가 목숨까지 바쳤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그럴듯해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조금만 깊이 생각해 보면 여러 문제가 드러난다. 환각은 시신을 사라지게 만들지 못한다. 만약 예수의 시신이 여전히 무덤에 있었다면, 반대자들은 시신을 공개함으로써 기독교 운동을 즉시 무너뜨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한 오늘날 공개적으로 제자들이 시신을 훔쳤다고 주장하는 회의론자 역시 거의 없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기대 심리의 문제다. 환각은 종종 강한 기대나 믿음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복음서는 제자들이 부활을 기대하지 않았음을 반복해서 보여 준다. 그들은 혼란스러워했고 낙심해 있었으며, 예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당시 유대인들의 일반적인 신앙 역시 역사 한가운데서 한 개인이 부활하는 개념이 아니라, 마지막 때에 이루어질 집단적 부활을 기대하는 것이었다(다니엘 12:2).
더욱이 예수의 가족을 포함한 회의적인 사람들까지도 예수를 만났다고 주장했다. 이는 소망에 의해 만들어진 환각의 전형적인 심리 상태와는 거리가 멀다.
부활의 증언은 단 한 번이 아니라 여러 차례 나타났고, 한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에게 나타났으며, 개인뿐 아니라 집단에게도 나타났고, 한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장소에서 나타났으며, 동일한 상황이 아니라 서로 다른 환경 속에서도 나타났고, 믿는 사람들뿐 아니라 의심하는 사람들과 반대자들에게도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특징은 단순한 환각 현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오히려 기적에 가깝다. 그러나 대부분의 회의론자들은 기적의 가능성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역사 연구에서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기준인 설명력, 범위, 개연성, 일관성, 경쟁 이론보다 우월한 설명이라는 요소를 적용해 보면 하나의 결론이 두드러진다. 바로 첫 번째 부활절 아침에 실제로 어떤 초자연적 사건이 일어났다는 설명이다.
신약학자 톰 라이트(N. T. Wright)는 이를 이렇게 표현했다. “예수의 육체적 부활이라는 설명은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자료를 가장 강력하게 설명해 주는 가설이다.”
물론 이러한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을 자유는 누구에게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할 경우 문제는 1세기 사람들이 환각을 경험했는지 여부가 아니다. 어쩌면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