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언어가 한 예배 속에 흐르고, 문화적, 세대적 차이로 인한 불편함과 수고로움을 복음 때문에 기꺼이 감수하는 이 통합적 공동체야말로 파편화된 한국 사회의 갈등을 치유할 복음의 강력한 대안이다. 끼리끼리 모이는 편안함을 거절하고, 낯선 타자와 함께 어우러지는 이 ‘거룩한 불편함’을 선택할 때, 교회는 비로소 다문화 시대의 진정한 소망이 될 수 있다. 삼위일체 하나님: 다문화 교회의 궁극적인 원형은 삼위일 체 하나님 안에 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은 서로 구별되는 위격으로 존재하시지만, 결코 자기를 중심에 두지 않으신다. 대신 서로를 영화롭게 하며 타자를 위해 자기를 내어주시는 ‘거룩한 춤’의 관계 속에 계신다. 이처럼 다문화 교회는 각기 다른 인종과 문화가 자기 중심성을 버리고, 상대방의 다름을 높이며 그 주변을 함께 도는 ‘복음적 춤’을 추는 곳이다. 삼위 하나님이 한 분이신 것처럼, 우리 역시 각자의 고유함을 유지한 채 타자를 중심으로 돌 때 비로소 하나님의 형 상을 온전히 드러내는, 하나님을 닮은 공동체가 된다.
신치헌 - 다문화 시대, 목회를 말하다
연말이 되면 개인이나 국가도 재정 결산을 합니다. 적자(赤字)냐 흑자(黑字)냐를 따지며, 잘한 것과 잘못된 것을 점검하죠.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신앙의 손익계산서를 한번 써보아야 할 때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서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라는 아름다운 세 가지 열매를 보고 칭찬했습니다. 우리의 삶도 이 세 가지 기준으로 점검해보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자주 “본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배는 구경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드리는 것’, ‘참여하는 것’, ‘응답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에서는 “미사를 드린다”고 말하고, 믿지 않는 이들도 “제사를 드린다”고 말합니다. 그런데도 개신교인들 중에는 종종 무의식 중에 “예배 보러 간다”는 표현을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것”이 예배라고 말씀합니다.
정종국 – 말씀으로 남은 사람
어떤 일을 하면서 살아가야 할지, 그리고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고민하는 형제 자매들을 많이 만납니다. 성경은 고차원의 직업적인 의미를 찾기 전에, 일을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를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살아가는 것 자체, 살아 내 보려고 하는 것 자체가 하나님 앞에서는 일의 위대한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허락하신 반복이라면, 하나님이 허락하신 전환도 함께 찾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이 반복하게 하시는 자리가 맞다면, 그 반복의 자리는 결코 반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갑자기 떠나게 하시고, 갑자기 움직이게 하시고, 갑자기 다른 일을 맡기시고, 갑자기 다른 시도를 해 보자 하는 마음을 주시고 몰아가십니다. 그래서 전환은 이렇게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도적으로 반복 다음의 진행을 시작하시는 순간. 그것이 하나님의 전환의 때입니다.
서창희 - 하나님의 출근 수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