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국 교수(백석대 실천신학)가 최근 복음과 도시 홈페이지에 ‘나면서부터 걷지 못한 이가 던지는 질문’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재했다.
최 교수는 “사도행전은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를 이야기한다. 그런데 우리 가운데 여전히 그를 ‘앉은뱅이’라고 부르는 이들이 있다”며 “오랫동안 교회 안에서 익숙하게 사용해 온 표현이지만, 오늘날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단어를 ‘서거나 걷지 못하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로 규정한다. 언론과 공공기관에서도 사용이 제한되는 차별 표현”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오랫동안 성전 문 앞에 앉아 동정을 구하는 수동적 인물로 이해되어 왔다. 무기력한 존재, 도움을 기다리는 사람으로만 그려졌다”며 “그러나 당시 사회에서 장애인에게 허용된 거의 유일한 경제 활동은 구걸이었다. 그의 구걸은 단순한 연명이 아니라, 자신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일이자 소명이었다. 그는 누워 있었던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생존을 수행한 사람이다. 그의 구걸은 무력함이 아니라 제한된 조건 속에서의 능동적 선택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그의 존재는 개인의 생존 문제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그의 존재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질문이 되었다. ‘너는 하나님의 자비를 어떻게 실천하고 있는가?’ 아름다운 문(‘미문’)과 대비되는 그의 몸은 종교 체제의 모순을 드러냈다”며 “성전은 화려하고 웅장했지만, 그 문 앞에는 40년 동안 한 사람이 배제된 채 앉아 있었다. 그의 자리는 종교적 경건과 사회적 배제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점을 드러내는 살아 있는 예언이었다. 그는 도움의 대상이기 이전에, 공동체의 영적 상태를 비추는 거울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건은 장애를 제거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배제를 허무는 이야기”라며 “그는 은과 금을 구했지만, 하나님은 그에게 예수의 이름과 공동체로의 복귀를 주셨다. 40년 동안 지켜온 그의 자리는 결국 부활의 능력이 선포되는 무대가 되었다. 만약 그가 그 자리를 포기했더라면, 그날의 증언도 없었을 것이다. 그는 단순한 기적의 수혜자가 아니라, 복음 사건의 동역자였다”고 했다.
최 교수는 “이제 질문은 우리에게 돌아온다”며 “우리는 장애인을 고쳐야 할 대상으로만 이해하는가, 아니면 함께 하나님을 찬미할 동역자로 보는가? 우리는 여전히 ‘정상’과 ‘비정상’의 언어로 사람을 분류하고 있지 않은가”라고 했다.
아울러 “누군가를 어떻게 부르는가는, 그를 어떤 자리에 두는가의 문제다. ‘나면서 못 걷게 된 이’는 교회가 누구를 중심에 둘 것인지 묻는다”라며 “그는 연약한 몸으로 성전 문 앞에 앉아 있었지만, 그가 성전 안으로 들어갔을 때 공동체의 경계도 함께 이동했다. 교회는 오늘도 그 경계 앞에 서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