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유대 사상과 종교철학을 대표하는 마르틴 부버(Martin Buber, 1878~1965)의 하시디즘 선집 <하시디즘: 100개의 이야기>가 한국어로 출간됐다. 이 책은 18세기 동유럽 유대교 신비주의 운동인 하시디즘 전통 속에서 구전되어 온 이야기들 가운데, 부버가 직접 선별한 100편을 엮은 작품이다. 신앙을 교리나 이론으로 설명하기보다 ‘이야기’라는 삶의 언어로 되살렸다는 점에서, 종교·철학·문학의 경계에 서 있는 독특한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하시디즘’은 히브리어로 ‘경건한 사람’을 뜻하는 ‘하시드(복수 하시딤)’에서 유래한다. 하시디즘은 일상의 모든 순간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살아내고자 했던 대중적 신앙 운동으로, 짧은 이야기들에는 하나님 사랑과 인간 사랑, 겸손과 기쁨, 회개와 신뢰, 공동체의 고난과 희망 같은 주제가 담담하면서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부버는 바로 이 구전 서사가 하시디즘의 핵심을 “가장 잘 체현하는 형태”라고 보았고, 그 판단이 곧 이 책의 기획을 이루는 토대가 됐다.
이 책이 지닌 역사적 맥락도 각별하다. <하시디즘>은 나치 정권이 집권하던 1930년대 독일에서 기획된 ‘정신적 저항’의 성격을 띤다. 부버는 직접적인 정치 언설 대신, 상징과 알레고리를 통해 메시지를 전하는 ‘새로운 미드라시’ 방식으로 인간의 존엄과 신앙의 불꽃을 지키고자 했다. 박해의 시대를 배경으로 탄생한 이야기들은, 현실을 회피하는 위안이 아니라 현실을 견디고 맞서는 힘으로서의 신앙을 증언한다.
부버가 그린 신앙은 ‘맹목적 복종’이 아니라 삶의 궁극적 의미에 대한 ‘신뢰’에 가깝다. 하시딤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질문하고 항의하며 관계를 포기하지 않는다. 책 곳곳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긴장과 대화, 사랑에 기초한 저항의 태도가 생생하게 드러나는 이유다. 옮긴이 역시 이 책의 목적이 “유대교의 한 분파 소개”에만 있지 않다고 강조한다. 부버가 찾은 것은 하시디즘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 세계 안에 잠재해 있으나 밖으로 나와야 했던 ‘불꽃’—모든 존재 안에 깃든 거룩함을 감지하고, 하나님을 통해 이 세상을 사랑하려는 태도라는 설명이다.
편집자인 폴 멘데스-플로어(1941–2024)는 <하시디즘>을 종교·철학·문학의 경계에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의 고전”으로 자리매김한다. 헤르만 헤세가 이 작품을 세계문학의 반열에 올려놓으며 감동을 표했던 이유 또한, 이 이야기들이 특정 종교를 넘어 인간 존재의 근원적 질문을 건드리기 때문이라는 평가가 뒤따른다.
<하시디즘: 100개의 이야기>는 신앙 유무를 떠나 삶의 의미와 인간다움에 대해 질문하는 독자에게 열려 있다. “하나의 빛이 타오르기 시작하면, 그 불빛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100개의 짧은 서사, 백 개의 불꽃 중 어느 하나는 독자의 내면에 옮겨붙어 오래도록 타오를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불꽃이 살아 있는 한, 독자는 결국 한 질문 앞에 다시 서게 된다. “당신은 거룩한 기쁨으로 이 세상을 사랑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