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얼마나 알고 있느냐보다, 어디를 향해 어떻게 걷고 있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른다. <걷는 동안 믿음이 된다>는 지난 300여 년 동안 성경 다음으로 가장 널리 읽혀 온 존 번연의 고전 <천로역정>을, 오늘의 그리스도인이 삶으로 체험하도록 안내하는 40일 묵상 여정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고전을 ‘읽는 대상’이 아니라 몸으로 통과하는 신앙의 길로 제시한다는 점이다. 배경은 전 세계 최초로 조성된 가평 필그림하우스의 ‘천로역정 순례길’. 5,000평의 부지 위에 조성된 39개의 처소와 40점의 인물 조형물은, <천로역정> 속 크리스천의 여정을 단순한 이야기에서 실제적인 신앙 체험의 장으로 확장시켜 왔다.
저자는 이 공간을 일회성 탐방으로 끝내지 않고,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묵상하고 적용할 수 있는 영적 훈련의 길로 연결하고자 이 책을 집필했다. 그 결과 <걷는 동안 믿음이 된다>는 순례 전의 준비서이자, 순례 이후의 삶을 정리하는 신앙 안내서로 기능한다.
40일, 멸망의 도시에서 천성까지
이 책은 모세의 시내산 40일, 엘리야의 소명 여정, 예수님의 광야 40일처럼, 성경이 반복해 보여 주는 ‘40일의 영적 전환’이라는 틀 위에 <천로역정>의 서사를 놓는다. 독자는 40일 동안 멸망의 도시를 떠나 좁은 문을 지나 십자가 언덕을 오르고, 곤고의 산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해 마침내 천성을 바라보는 순례자의 길을 묵상하게 된다.
각 날마다 제공되는 묵상 본문은 단순한 감상에 머물지 않는다. 질문, 나눔, 적용, 결단, 기도가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개인 묵상은 물론 소그룹, 교회 공동체 훈련 교재로도 활용 가능하다. 신앙을 ‘개인적 감정’이 아니라 공동체적 여정으로 회복시키려는 의도가 분명히 드러난다.
속도의 시대에 다시 배우는 ‘느린 믿음’
저자는 서문에서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를 “유례없는 가속의 시대”라 진단한다. 정보는 넘치지만 진리는 흐려지고, 연결은 많아졌지만 관계는 얕아진 시대. 그 속도에 익숙해진 그리스도인들 또한 신앙을 깊이보다 효율로 판단하기 쉽다.
이 책은 그런 시대를 향해 분명하게 말한다. 신앙은 달리는 것이 아니라 걷는 것이며, 믿음은 한순간에 도착하는 결과가 아니라 순례의 과정 속에서 형성되는 삶의 태도라고 말한다. <천로역정>은 바로 그 사실을 가장 선명하게 증언하는 고전이며, 이 묵상집은 그 고전을 오늘의 언어와 삶의 리듬으로 다시 불러온다.
십자가에서 다시 시작되는 여정
책 속 묵상들은 일관되게 복음의 중심으로 독자를 이끈다. 멸망의 도시를 떠나는 회심, 율법의 무력함과 복음의 단순함, 십자가 언덕에서 짐이 풀리는 은혜, 인내와 기다림의 신앙, 교회라는 ‘아름다운 집’에서의 회복,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확인되는 하나님의 동행, 그리고 천성을 향한 소망까지 이끈다.
이 여정은 신앙을 미화하지 않는다. 곤고의 산은 여전히 가파르고, 골짜기는 여전히 어둡다. 그러나 그 길 위에서 순례자는 배운다. 믿음은 고난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걷는 법을 익히는 것임을 배우게 된다.
걷는 동안, 믿음이 된다
<걷는 동안 믿음이 된다>는 <천로역정>을 다시 읽게 만드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의 인생이 하나의 천로역정임을 자각하게 만드는 책이다. 각자의 멸망의 도시를 떠나 좁은 길을 걷는 모든 순례자에게, 이 40일의 묵상은 잃어버린 영적 방향 감각을 회복하는 조용하지만 단단한 안내서가 될 것이다.
빠르게 소비되는 신앙 콘텐츠에 지친 이들, 깊이 있는 묵상과 공동체적 신앙 훈련을 갈망하는 교회와 성도들에게 이 책은 묻는다. “당신은 지금 어디를 향해, 누구와 함께 걷고 있는가?” 그리고 걷는 동안 믿음이 되도록 조용히 초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