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 공리주의의 부상, 세계 선교의 지형을 다시 흔들다

제이미 마탱가 박사. ©linkedin.com

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제이미 마텡가 박사의 기고글인 ‘고조되는 정치적 공리주의는 글로벌 선교에 새로운 도전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Rising political utilitarianism presents fresh challenges to global missions)를 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제이미 마텡가(Jamie Mātenga) 박사는 마오리(Māori) 혈통을 지닌 맥락 신학자이다. 그는 세계복음주의연맹(World Evangelical Alliance) 선교위원회의 공동 리더로 섬기고 있으며, CDI의 오피니언 에디터이기도 하다. 제이미 박사는 3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선교사 파송 기관과 선교 연합체들과 함께 초문화권 선교 사역에 헌신해 왔다. 그의 열정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의 목적에 더 깊이 참여하도록 돕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새 창조를 함께 이루어 가는 일에 기여하는 데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수년간 누적돼 온 거대한 균열들이 이제 하나둘씩 터져 나오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압박은 세계 질서를 재편하고 있으며, 이는 국제적 안정뿐 아니라 가장 취약한 이들의 삶과 존엄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앞서CDI에 보도된 바와 같이, 캐나다 총리는 지난 1월 세계경제포럼에서 “규칙에 기반한 국제 질서가 약화되고 있으며, 절제가 아닌 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는 이 같은 진단 속에서 인권에 대한 명시적 우려가 거의 언급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약자’에는 단지 힘없는 국가들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소외된 이들, 난민과 피란민, 억압받는 공동체, 가난과 박해, 환경 위기에 놓인 수많은 사람들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다.

1. 공리주의의 타락

위기의 시기마다 국가들은 연민보다 효율을, 도덕보다 실리를 앞세우기 쉽다. 무역과 안보를 위해서라면 인권을 무시하는 정권과도 손을 잡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으로 포장된다. 그러나 이런 지정학적 실용주의는 결국 억압적 체제를 강화하고, 그 아래 놓인 사람들의 고통을 더 깊게 만든다.

이러한 ‘유용성의 논리’는 개인과 영적 삶에도 스며든다. 사람이 그 자체로 존중받기보다, 성과·생산성·기여도로 평가될 때 관계는 거래로 전락한다. 목표 달성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나 환경은 쉽게 버려진다. 이는 도덕성을 잠식하는 사고방식이다.

교회와 사역 현장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사역의 성공을 사람의 성숙이나 공동체의 건강보다, 성장률·재정·성과 지표로만 판단할 때, 우리는 형제자매를 ‘하나님의 형상’이 아닌 ‘자원’처럼 다루게 될 위험에 놓인다.

2. 해독제로서의 상호성

유용성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인간 사회는 자원을 활용하고 서로 의존하며 살아간다. 그러나 **독성 공리주의에 대한 성경적 대안은 ‘상호성’**이다. 성경의 윤리는 지렛대와 이용이 아니라, 주고받음과 나눔을 강조한다. 교회와 선교, 공동체의 건강은 받는 만큼 돌려주는 삶, 함께 책임지는 관계 위에 세워져야 한다.

3. 환경이 말해주는 경고

환경 위기는 상호성이 무너질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분명히 보여준다. 끝없는 착취와 무책임한 폐기는 결국 생태계의 균형과 회복력을 붕괴시킨다.

세계 경제 전망에 따르면, 향후 10년간 가장 큰 위험 요소는 환경 문제다. 극단적 기후, 생물 다양성의 붕괴, 생명 유지 체계의 교란은 이미 전 세계 곳곳에서 현실이 되고 있다. 이는 창조 세계를 외면한 대가다.

성경은 창조 세계를 파괴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신음하며 회복을 기다리는 존재”로 묘사한다. 그리스도인은 사람과 장소 모두가 하나님의 목적 안에 있음을 인식하며, 창세기 2장 15절의 명령처럼 버림이 아닌 돌봄의 청지기적 책임을 감당해야 한다.

4. 불안정 속에서 발견되는 희망의 조짐

세계적 혼란 속에서도 긍정적인 변화의 신호는 존재한다. 특히 영국을 중심으로 한 유럽 일부 지역에서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기독교에 대한 관심이 다시 증가하고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를 ‘조용한 부흥’이라 부른다.

그러나 지도자들은 이 흐름이 문화적·이념적 갈등과 동시에 진행되고 있음을 경고한다. 열려 있으되 치열한 환경이다.

미국에서는 이와 같은 전국적 회복세가 뚜렷하지 않다는 분석이 많지만, 우르바나(Urbana) 컨퍼런스와 같은 집회는 위기와 불확실성이 여전히 젊은 세대의 신앙적 갈망을 자극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모든 흐름을 정확히 읽기 위해서는 감정이 아닌 데이터에 기반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5. ‘안정된 세계’라는 환상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 협력 질서는 분명 성과도 있었지만, 왜곡도 낳았다. 세계화는 일부 빈곤을 줄였으나, 동시에 부의 격차를 확대했다.

기독교적 관점에서 신자유주의적 세계관의 근본적 한계는 인간의 죄성과 권력의 무제한 욕망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정치·경제 체계가 흔들릴수록 이 문제는 더 분명히 드러난다.

과거에는 국경 개방과 국제 협력이 선교와 문화 교류를 촉진했지만, 이제 그 시대는 끝났다. 민족주의의 부상, 통제 강화, 국가 간 경쟁이 새로운 표준이 되고 있다. 선교를 둘러싼 조건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6. NGO 시대의 저물음

1990년대 이후 NGO는 개발과 선교 참여의 핵심 통로였다. 그러나 각종 스캔들, 비효율, 정치적 변화로 신뢰가 약화됐다. 이제 많은 정부는 원조와 개발을 다시 국가 통제 아래 두고, 특히 국방과 안보 중심으로 자원을 재배치하고 있다.

민간 기부 역시 세계 금융 압박과 세대 간 자산 이동 속에서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다. 선교와 개발 사역을 지탱해 온 기존 재원 구조는 축소되거나 재편될 가능성이 크다.

7. 부족주의가 남기는 상처

민족주의와 동맹 재편은 다문화 사회 내부의 분열을 심화시킨다. 국제 분쟁의 ‘상대편’ 국가와 연결된 민족·출신 배경을 가졌다는 이유만으로 의심과 배제를 경험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이때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선다. 배제적 정체성에 동조할 것인가, 아니면 주변부에 선 이들을 옹호할 것인가. 두려움의 시대일수록 자비와 정의에 대한 신학적 토대는 더욱 중요해진다.

8. 신학 교육의 심각한 격차

세계 여러 지역에서 교회 성장은 신학 교육의 공급을 훨씬 앞서고 있다. 제자훈련과 교리 교육의 부족은 극단적 가르침과 분열에 취약한 환경을 만든다.

전 세계 수백만 교회가 정규 신학 교육을 받은 목회자 없이 운영되고 있으며, 일부 국가는 사역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있다. 역설적으로, 서구의 신학교와 선교 훈련 기관은 쇠퇴하고 있는 반면, 글로벌 사우스와 동방 세계에서는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이는 기독교 지도력 형성 방식의 대전환을 예고한다.

9. 이동하는 다수 세계의 힘

기독교의 중심은 이미 ‘다수 세계(Majority World)’로 이동했다. 현재 대다수의 그리스도인은 서구 밖에 살거나, 서구로 이주한 이들이다.

이들은 기존 기관이 동원해야 할 ‘선교 자원’이 아니다. 이미 삶의 자리에서 신앙을 살아내고 있으며, 이주·피란·일상의 관계 속에서 복음은 자연스럽게 확산되고 있다. 이들은 전문 선교사라기보다, 삶의 현장에서 증인으로 살아가는 평신도들이다.

10. 선교의 미래

선교의 핵심 신념은 변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복음을 들을 기회를 가져야 한다. 다만 그 방식은 점점 전문 외국인 선교사보다, 문화적으로 가까운 신자들과 이주민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외부 사역자의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지만, 지시보다는 지원과 동행의 형태가 바람직하다. 상향식이 아닌 공동 학습과 상호 나눔이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이 된다.

11. 기술이라는 새로운 도전

인공지능과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기회이자 위험이다. 기술은 관계를 돕기도 하지만, 언제든 관계를 대체하고 지배할 수 있다.

기독교 사상가들은 신학적 정합성, 관계적 영향, 정의, 지속 가능성, 투명성을 중심에 둔 윤리적 기준을 강조한다. 기술은 인간적 연결을 약화시키는 도구가 아니라, 섬김을 확장하는 도구여야 한다.

결론

세계가 불안정해질수록 한 가지는 분명하다. 하나님은 이 모든 변화에 당황하지 않으신다. 정치·경제·사회적 격변 속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은 계속 전개 되고 있다. 사람과 장소를 ‘쓸모’로 환원하려는 유혹을 거부하고, 모든 존재 안에 담긴 하나님의 형상을 존중하는 것, 그것이 오늘의 부르심이다.

전통적 의미의 선교는 지금 깊은 전환기를 지나고 있다. 그러나 복음을 신실하게, 자비와 용기로 살아내고 나누라는 부르심은 여전히 동일하다. 불확실성 속에서도, 그 소명은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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