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법원이 기독교인 간호사 2명에 대해 신성모독 혐의 무죄를 선고하며, 4년 넘게 이어진 사건이 종결됐다. 이번 판결은 하급심에서 내려진 드문 무죄 판결로 평가되고 있다.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마리암 랄(Mariam Lal)과 뉴워시 아루즈(Newosh Arooj)는 파키스탄 형법 제295-B조(쿠란 훼손 시 종신형)에 따라 기소됐으나, 법원은 검찰이 혐의를 입증하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두 간호사에 대한 무죄 판결은 2025년 11월 내려졌으며, 항소 시한이 최근 만료되면서 판결이 최종 확정됐다고 국제 가톨릭 구호단체 ‘ACN(Aid to the Church in Need)은 밝혔다.
사건은 2021년 4월, 펀자브주 파이살라바드 시의 시민병원(Civil Hospital)에서 근무하던 두 간호사가 병원 찬장에 붙어 있던 이슬람 문구 스티커를 훼손했다는 한 선임 의사의 주장으로 시작됐다.
소문이 확산되자 격분한 군중이 병원에 몰려들어 두 간호사를 린치하려 했고, 이들은 가까스로 탈출한 뒤 당국에 의해 보호 차원에서 구금됐다. 두 사람은 약 5개월간 구금 생활을 한 뒤, 신변 안전을 이유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도록 허가받았다.
법원은 이후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생명 위협이 존재한다며 공개 출석을 면제했다. 재판 기간 동안 두 간호사는 직장을 잃었고, 지속적인 협박으로 인해 경호 조치가 필요했다.
변호는 ACN의 지원을 받는 가톨릭 단체 ‘정의와 평화를 위한 국가위원회(National Commission for Justice and Peace, NCJP)’가 맡았다.
현지 인권 활동가들은 이번 판결을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상급심으로 넘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인 파키스탄 신성모독 사건에서 보기 드문 하급심 무죄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NCJP의 칼리드 라시드 아시(Khalid Rashid Asi) 신부는 “이번 판결은 담당 판사가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증거에 근거해 독립적으로 판단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의 가족들은 판결에 안도감을 표했지만, 여전히 불안한 상황에 놓여 있다.
아시 신부는 “이제 우리의 싸움은 두 간호사의 안전한 미래와 재활, 그리고 존엄한 사회 복귀를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파이살라바드 교구의 인드리아스 레흐마트(Indrias Rehmat) 주교와 변호사 사나울라 바그(Sanaullah Baig), 샤히드 안와르(Shahid Anwar)의 헌신적인 노력을 언급하며, 국제사회의 연대와 지원에도 감사를 표했다.
“국제사회의 기도와 재정적 지원, 연대는 두 간호사에게 큰 힘이 되었을 뿐 아니라, 고난의 시기에 교회와 세계 공동체가 침묵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고 그는 말했다.
2023년 두 간호사를 직접 만났던 ACN 영국 지부의 언론·공공업무 책임자 존 폰티펙스(John Pontifex)는 “이들은 극심한 위험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다”고 전했다.
파키스탄 형법 제295조와 298조에 포함된 신성모독법은 개인적 보복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빈번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법은 이슬람이나 예언자 무함마드를 모독한 혐의에 대해 사형까지 허용하지만, 허위 고발자나 위증자에 대한 처벌 규정은 없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이 법을 기독교인, 시아파 무슬림, 아흐마디야 공동체, 힌두교도 등 종교 소수자를 탄압하는 수단으로 사용해 왔다.
라호르에 기반을 둔 시민단체 ‘사회정의센터(Centre for Social Justice)’에 따르면, 2020년 한 해에만 200명이 신성모독 혐의로 기소돼 단일 연도 기준 최다 기록을 세웠다. 1987년 이후 현재까지 최소 1,855명이 신성모독법으로 기소된 것으로 집계됐다.
국제 인권 단체들은 오랫동안 파키스탄 정부에 형법 개정을 촉구해 왔으며, 해당 법률이 종교 소수자 박해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고 비판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