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을 둘러싸고 정부와 의료계 간 갈등이 다시 격화되고 있다. 정부는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결과를 근거로 설 연휴 이전 의대 증원 규모를 확정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반면, 대한의사협회(의협)는 증원 강행 시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증원 규모와 적용 방식에 따라 종료됐던 의정갈등이 다시 불붙을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정부, 추계위 결과 토대로 증원 논의 속도
1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정부는 향후 의과대학 정원 규모를 결정하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통해 2027년 이후 의대 증원분을 특정 지역에서 근무하도록 하는 ‘지역의사제’ 정원으로 활용하는 방안을 포함해 여러 시나리오를 검토 중이다.
앞서 추계위는 2035년 기준 부족한 의사 수가 최소 1535명에서 최대 4923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2040년에는 의사 부족 규모가 최소 5704명에서 최대 1만1136명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정부는 이러한 추계 결과를 토대로 매주 보정심 회의를 열어 늦어도 설 연휴 이전까지 2027학년도 이후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한 결론을 도출한다는 계획이다.
◈의협 “장기적으로 의사 과잉”…정부 추계에 반기
의협은 정부와 추계위의 의사 수급 전망에 대해 정면으로 반박하며, 장기적으로는 의사 인력이 과잉 상태에 이를 수 있다는 자체 분석 결과를 제시했다. 의협은 연간 2080시간, 주 40시간 근무 기준을 적용할 경우 2035년에는 15만4601명, 2040년에는 16만4959명의 의사가 활동할 것으로 내다봤다.
의료 환경 변화와 보건의료 정책 변수를 반영해 추산한 필요 의사 수는 2035년 14만634명, 2040년 14만6992명으로, 이를 기준으로 하면 2035년에는 1만3967명, 2040년에는 1만7967명의 의사가 오히려 과잉 공급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추계 방식 놓고 공방… 데이터·모형·AI 반영 논쟁
양측의 대립은 의사 수급 추계에 활용된 데이터 범위와 분석 모형을 둘러싸고도 이어지고 있다. 의협은 추계에 활용된 데이터 기간이 2000~2024년으로 설정되면서 입원일수 증가 추세가 과도하게 반영돼 수요가 왜곡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추계위는 2010년 이전 자료를 제외할 경우 분석에 활용되는 시계열 길이가 짧아져 통계적 신뢰도가 떨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추계위가 사용한 아리마(ARIMA) 모형에 대해서도 의협은 과거 데이터 패턴이 미래에도 반복된다는 전제에 기반해 인구구조 변화나 정책적 개입 같은 구조적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특히 인공지능(AI) 도입에 따른 의사의 생산성 향상이 과소 평가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협은 국제 연구에서 AI로 인해 의사 생산성이 30~50%까지 향상될 수 있다는 분석이 있음에도, 추계위는 이를 0.04%만 반영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추계위는 이번 추계가 현재 시점에서 관측 가능한 자료와 합의 가능한 가정을 토대로 도출된 결과라며, 공급자 단체 추천 위원이 과반수 포함된 구조에서 투명한 논의를 거쳐 산출됐다고 반박했다. AI 생산성 반영과 관련해서도 진단·검사 등 일부 영역에서는 효과가 크더라도 환자 상담과 설명 등 의사의 판단과 소통이 핵심인 영역까지 일반화하기에는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의견이 제기됐다고 밝혔다.
◈의정갈등 재점화 조짐… 의협 집단행동 가능성 시사
정부와 의료계의 입장 차가 좀처럼 좁혀지지 않으면서,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던 의정갈등이 다시 격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의협은 파업 등 집단행동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정부를 압박하고 있다.
김성근 의협 대변인은 “가장 강력한 수단은 파업이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면서도 “불합리한 결정 과정이 이어진다면 그런 상황으로 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의협은 정부의 의사인력 수급 추계에 반대하며 서울 정부청사 앞에서 일주일 넘게 릴레이 1인 시위를 이어가고 있다. 이철희 의협 기획이사는 “지난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 결정으로 교육 현장에 큰 혼란이 발생했고, 그 파장은 수년, 수십 년 동안 이어질 것”이라며 “교육의 질이 담보되지 않은 증원은 더 큰 문제를 초래할 수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정부는 보정심을 통해 2027학년도 이후 의사 인력 양성 규모를 논의 중이며, 추계위의 의사 부족 전망을 근거로 설 연휴 이전 의대 정원 증원 규모에 대한 결론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의협은 오는 31일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에서 전국의사대표자대회를 열고 정부 추계에 대한 의료계 차원의 대응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