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국내 증시가 사상 최고치 행진을 이어가며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지만, 증권가에서는 업종별로 희비가 극명하게 갈리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증시 활황의 직접적인 수혜를 입는 증권주들은 연일 랠리를 펼치며 주가가 치솟고 있는 반면, 전통적인 배당주로 꼽히는 은행주들은 상대적인 약세를 면치 못하며 부진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역대급 호황을 맞이한 증시로 자금이 쏠리는 이른바 ‘머니무브’ 현상이 심화되면서 시중 자금의 흐름이 은행에서 증권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1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들어 KRX 은행 지수는 0.51% 하락한 것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코스피 지수가 9.74% 상승하며 가파른 오름세를 보인 것과 비교하면 매우 저조한 성적표다. 실제로 이날 오전 유가증권시장에서 신한지주는 전 거래일 대비 0.64% 하락한 7만 7,700원에 거래되며 연초 이후 약 1.7%의 하락률을 기록했다. 하나금융지주와 우리금융지주 역시 각각 0.53%, 0.18% 내림세를 보이며 약세를 면치 못했다. 4대 주요 금융지주 중에서는 KB금융만이 0.08% 소폭 상승하며 겨우 보합권을 유지하는 수준에 그쳤다.
이와 대조적으로 증권주들은 코스피가 4,660선을 돌파하는 등 연일 사상 최고치를 갈아치우는 호재에 힘입어 파죽지세의 상승세를 기록했다. 증권업종 대장주인 미래에셋증권은 미국 우주 탐사 기업인 스페이스X에 대한 투자 효과가 부각되며 올해 들어서만 22% 급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한국금융지주 역시 1.54% 올랐으며 NH투자증권, 삼성증권, 유안타증권 등 주요 증권주들이 일제히 오름세를 보이며 시장의 상승 동력을 뒷받침했다. 거래대금 증가에 따른 위탁매매 수익 확대 기대감이 증권주 전반의 투자심리를 자극했다는 평가다.
◈사상 최고치 경신에 증시로 쏠리는 자금… ‘머니무브’ 가속화에 은행권 긴장
지난해 견조한 흐름을 보였던 은행주들이 올해 들어 유독 힘을 쓰지 못하는 배경에는 증시로의 급격한 자금 이탈이 자리 잡고 있다. 코스피가 8거래일 연속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는 등 역대급 활황을 보이자, 시중은행의 정기 예·적금에 묶여 있던 자금들이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증시로 대거 유입되는 ‘머니무브’ 현상이 가속화된 것이다. 실제로 KB국민·신한·우리·하나·NH농협 등 5대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 기준 939조 2,863억 원으로 전월 대비 한 달 새 32조 7,034억 원이나 급감하며 자금 이탈의 심각성을 드러냈다.
여기에 증권사들이 발행어음 판매를 본격화하며 은행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제시한 점도 투자자들의 발길을 돌리게 만든 요인이 됐다. 1년 이내의 단기 만기로 운용하면서도 시중은행 금리를 상회하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으로 작용한 것이다. 또한 지난해 4분기 국내 은행들의 실적이 시장의 전망치를 밑돌 것이라는 부정적인 분석도 주가 하방 압력을 높였다. 대신증권은 4대 금융지주의 지난해 4분기 순이익이 시장 컨센서스인 2조 6,000억 원보다 20% 이상 낮을 것으로 내다봤으며, 홍콩 주가연계증권(ELS) 손실과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과징금 대비 비용 반영 등이 실적의 주요 변수가 될 것으로 짚었다.
다만 최근 들어 외국인 투자자들이 은행주에 대한 수급 개선을 견인하고 있다는 점은 긍정적인 신호다. 외국인은 지난 5일부터 KB금융과 신한지주를 각각 수백억 원 규모로 순매수하며 저가 매수에 나서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따라 KB금융과 신한지주 주가는 최근 각각 2.7%, 1.6% 상승하며 은행주 중에서는 비교적 강한 회복 탄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원·달러 환율 상승이 다소 부담스러운 요인이긴 하지만, 외국인의 꾸준한 매수세 유입과 과징금 관련 불확실성 완화가 기대되는 만큼 투자심리가 점차 회복될 것으로 보고 있다.
◈주주환원 확대 기대감과 세제 혜택 수혜… 은행주 투자심리 회복 가능성 주시
증권가에서는 은행주들의 단기적인 실적 부진 우려에도 불구하고 주주환원 확대 정책과 기업가치 제고 의지에 힘입어 완만한 상승 흐름을 보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실적 시즌을 기점으로 각종 일회성 비용과 관련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기업들의 밸류업 프로그램 이행 의지를 재확인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신한투자연구원은 높아진 증시 밸류에이션을 배경으로 은행주들이 저평가 매력을 부각하며 주가가 우상향할 가능성이 크다고 진단하며 KB금융을 최선호주로 꼽았다.
특히 올해부터 시행되는 고배당 상장기업 주주 대상 배당소득 분리과세 특례는 은행주가 대표적인 수혜 업종으로 떠오르는 결정적인 배경이 되고 있다.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배당소득 분리과세에 대한 기대감을 고려할 때 은행들의 배당성향이 최소 25% 이상으로 상향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비과세 배당 혜택과 더불어 자사주 매입 및 소각 확대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한다면, 총주주환원율 증가에 대한 시장의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연초 증시를 달구고 있는 증권주와 은행주의 엇갈린 행보는 자금의 흐름과 실적 변동성에 따른 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증시의 역사적 고점 돌파로 촉발된 머니무브가 증권주의 단기 급등을 이끌었다면, 향후에는 실적 불확실성을 털어낸 은행주들이 강력한 주주환원 정책을 무기로 반격에 나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올해 증시 밸류에이션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상황에서 정책적 수혜와 실적 회복이 맞물리는 시점이 은행주 투자심리 회복의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