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 속 혼선을 겪는 ‘한반도평화공존센터’ 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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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인권센터에서 평화·공존·교류센터로 전환됐지만 정체성·예산 문제 여전
전 정부 때 통일부가 진행한 '국립북한인권센터' 설계안 공모에서 최우수 당선작에 선정된 종합건축사무소 아키미르의 설계안. ©통일부

통일부가 지난 정부에서 추진한 ‘국립북한인권센터’ 설립 계획을 공식 철회하고, 이를 대체하는 ‘한반도평화공존센터’ 건립을 새롭게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명칭 변동과 목적 재설정이 빠르게 이뤄지면서 센터의 역할과 방향이 불명확해졌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특히 기존의 북한 인권 기록과 교육 기능이 크게 축소된 반면, 남북 교류·협력과 사회적 공론장이라는 광범위한 기능을 모두 담으려다 보니 정체성이 흐려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통일부가 공개한 ‘한반도평화공존센터 추진계획안’은 센터의 목적을 세 가지로 제시했다. 남북 간 평화 공존을 위한 사회적 기반 구축, 실향민·북향민 경험 공유 플랫폼 조성, 그리고 한반도 미래 논의를 위한 시민사회·국제사회 공론장 마련이다. 이름에서도 드러나듯, 센터는 정부의 평화·공존 정책 기조를 반영하는 공간으로 재설정됐다.

계획안은 현재 분단의 고착화와 남북 간 단절이 심화되는 상황을 언급하며, 공존 가치를 확산시키기 위해 민간단체·기업·학술기관 등이 참여할 수 있는 상설 공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각 세대와 계층이 직접 대화하고 참여함으로써 한반도 평화 공존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히겠다는 취지가 제시됐다.

센터가 평화협력 중심으로 재편됐음에도, 계획안은 실향민과 북향민을 위한 공간 구축도 포함하고 있다. 이들의 경험을 기록하고 공유해 북한 주민의 일상과 분단 이후의 역사를 복원하는 작업이 추진되며, 이를 위해 디지털 아카이브와 전시 공간을 마련하겠다는 계획도 명시됐다.

해외 사례로는 미국평화연구소(USIP),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자료관, 독일 베를린 ‘토포그라피 오브 테러’ 등이 거론되며, 이들 기관의 구조와 운영을 참고하겠다고 설명했다. 이는 북한인권센터의 원래 취지였던 인권 기록 기능을 완전히 배제하지 않되, 새로운 정책 방향에 맞춰 재구성하려는 시도로 해석된다.

그러나 센터가 남북 평화·공존·교류·인권이라는 여러 기능을 한꺼번에 강조하면서 뚜렷한 정체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북한 인권 기록 기능이 축소되면서 정책의 초점이 흐려졌고, 평화·교류 기능이 강조되면서 기존 사업의 연속성이 약화됐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사업 추진 과정에서 예산 사용의 비효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추진계획안에 따르면 총사업비 396억 원 중 약 12억 5,800만 원이 설계비로 책정돼 있다. 그러나 지난 정부에서 이미 국립북한인권센터 설계 공모전이 진행돼 최우수안까지 선정됐음에도 이를 폐기하고 다시 설계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예산 중복 문제가 제기된다.

통일부는 2026년 1~3월 건축 기본계획 수립, 6~7월 부지선정위원회 구성, 8월 설계 시작을 계획하고 있으며 2028년 착공, 2030년 준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이 예정대로 시작되기 위해서는 센터의 존재 목적과 운영 방향을 명확히 설정하는 절차가 선행돼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국회 외교통일위원회는 19일 예산 심의 과정에서 국립북한인권센터 예산 81억 7,600만 원을 전액 삭감하고, 새롭게 추진되는 한반도평화공존센터 예산 32억 원을 신규 반영했다. 통일부가 요청한 예산이 100억 원 이상이었음을 고려하면 약 20% 수준으로 축소된 셈이다.

야당은 기존 사업의 정당성을 문제 삼았으며, 국민적 공감대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일부 여당 의원도 이에 동의하면서 최종 예산 조정이 이뤄졌다.

더불어민주당 이재강 의원은 센터가 단순히 전 정권 사업의 대체재가 아니라 실질적인 평화 인프라로 자리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통일부가 이산가족 기록 수집 및 디지털화 사업을 준비 중인 점을 언급하며, 이산가족을 매개로 한 남북 교류 공간으로 발전시키는 방향도 검토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정권 교체에 따라 역할이 크게 바뀐 한반도평화공존센터가 앞으로 어떤 구조와 기능을 갖추게 될지, 향후 운영 전략과 공론 형성이 중요한 과제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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