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대법원은 북아일랜드 학교에서 시행 중인 종교교육(RE) 및 예배 활동이 인권을 침해하고 있으며, 현행 방식은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법원은 현재의 종교교육이 “객관적·비판적·다원적 방식”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다고 영국 크리스천투데이(CT)가 전했다.
이번 판결은 익명으로 처리된 한 부녀가 제기한 소송에서 비롯됐다. 문서상 ‘JR87’로 표기된 딸은 4세에서 7세 사이에 다닌 학교에서 식사 전 기도하게 된 후, 비종교적 성향의 부모가 이에 문제를 제기하면서 소송이 시작됐다. 학교 측은 당시 “핵심 종교교육 과정을 따르고 있다”고 답변했다.
이 사건은 2022년 벨파스트 고등법원에서 먼저 부모 측이 승소했으나, 북아일랜드 교육부가 이를 항소해 뒤집혔다. 그러나 이번에 영국 대법원이 고등법원의 초기 판결을 다시 인정하며 부모와 학생의 손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객관적·비판적·다원적 방식으로 종교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것은 사실상 ‘교화’(indoctrination)”라고 규정했다. 법원은 이 표현이 “부정적 의미의 전도·포교가 아니라, 특정 종교를 절대적 진리로 가르치는 행위”를 뜻한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번 판결은 “교육에서 종교를 배제하자는 취지가 아니다”라며, 북아일랜드에서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 사실은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기독교 중심 교육이 가능하지만, 특정 신앙을 절대적 진리로 주입하는 방식은 인권을 침해한다”고 밝혔다.
대법원은 아울러 학생과 부모가 유럽인권협약(ECHR) 제2의 교육권, 그리고 사상·양심·종교의 자유를 규정한 제9조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판단했다. 또한 현행 ‘수업 철회권’만으로는 해결책이 될 수 없으며, 자녀를 빠지게 하는 부담과 사회적 낙인이 부모와 학생에게 전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판결에 대해 민주연합당(DUP) 하원의원 칼라 로크하트는 “실망스럽다”면서도 “기독교적 가치와 교육을 지키기 위해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가톨릭 데리 교구장 도널 맥키언 주교는 “판결을 예상했다”며, 약 20년 된 현행 종교교육 과정이 수정될 가능성에 대해 “열린 자세”를 보였다. 다만 그는 “유지 학교와 공립학교 간 적용 방식 차이 등 후속 문제들이 명확히 논의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북아일랜드의 종교교육 핵심 교육과정은 2007년 가톨릭, 아일랜드 성공회, 장로교, 감리교 등 4개 주요 교단이 공동으로 제정했으며, 기독교 중심 내용을 담고 있다. 부모는 현재도 자녀의 종교교육 및 예배 참여를 철회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