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코 목사 실종 8년 만에… 법원, 정부에 1백억원 배상 명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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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경 기자
mklee@cdaily.co.kr
말레이시아 레이몬드 코 목사 ©CHANGE.ORG

2017년 대낮에 납치된 말레이시아 목회자 레이몬드 코(Raymond Koh) 사건과 관련해, 그의 가족이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소송에서 승소했다. 고등법원은 경찰관들이 그의 실종에 직접 책임이 있다고 판결하고, 정부에 막대한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최근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경찰 관계자들이 상부의 지시에 따라 “억압적이고 자의적인 방식으로” 코 목사를 강제로 납치했다고 인정했다.

미국 비영리단체 순교자의 소리(Voice of the Martyrs)는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에 “법원은 정부가 코 목사 가족에게 실종 이후 매일 1만 링깃(약 2,350달러)을 지급하도록 판결했다. 그동안의 기간을 합산하면 총액은 3,100만 링깃(약 740만 달러, 한화 약 100억 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또한 법원은 코 목사의 아내 수잔나 리우(Susanna Liew)에게 430만 링깃(약 100만 달러)의 손해배상과 소송 비용을 지급하도록 명령했다. 이 금액은 신탁계정에 예치되며, 코 목사가 발견되기 전까지 리우와 세 자녀는 이를 사용할 수 없도록 했다.

코 목사는 2017년 2월 13일, 페탈링자야 거리에서 납치됐다. 당시 CCTV에는 차량 7대와 최소 15명의 남성이 40초 만에 작전을 수행하는 장면이 포착됐다. 그의 차량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이후 목격된 흔적도 없다.

법원은 경찰이 코 목사 실종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하고, 두 달마다 수사 진척 상황을 법무장관에게 보고하도록 지시했다. 이번 판결은 사법부가 이 사건에서 정부의 책임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재판 후 법정 밖에서 리우는 “남편이 사라진 지 거의 9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라며 “남편을 되찾을 수는 없지만, 가족에게는 작은 위로이자 정의의 회복”이라고 말했다. 그녀는 또한 “경찰의 개입 정황이 드러났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며 당국의 무책임을 비판했다.

2019년 말레이시아 인권위원회는 조사 보고서를 통해 “레이몬드 코는 국가 기관에 의해 강제 실종된 피해자”라고 결론 내렸지만, 이후 관련자에 대한 기소는 단 한 건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코 목사 가족은 소송 과정에서 “납치 직후 경찰이 남편의 실종 경위를 묻기보다, 그의 사역 활동과 무슬림 대상 복음 전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캐물었다”고 주장했다. 코 목사는 말레이 무슬림을 돕는 기독교 자선단체를 운영해 왔으며, 과거 개종 시도 혐의로 조사를 받았으나 정식 기소되지는 않았다.

영국의 종교자유 단체 세계기독연대(CSW)는 이번 판결 이후 “정부가 사건의 전모를 밝히기 위해 왕립조사위원회를 설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리우는 판결 후 성명을 통해 “이 결정은 믿음과 자비, 용기의 사람인 남편을 위한 것이며, 강제실종의 모든 피해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그녀는 이번 사건이 “국가 권력의 남용에 책임을 묻는 중요한 선례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