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신춘식, CLC, 2025)

오피니언·칼럼
배안호 선교사(영국 선교사)
배안호 선교사.

들어가는 말(서론): “그는 시대를 움직이는 거룩한 철학자”(예일대학 대학교회 창문)

‘현대 선교의 할아버지’(에드워드) → ‘현대선교의 아버지’(윌리암 케리)
조나단 에드워즈는 누구인가: 신학자.부흥운동인가?/선교학자.선교사인가?

부흥운동가/신학자/설교자/변증가/철학자/저술가…본서에서는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의 영문 제목(A Missiological Legacy of Jonathan Edwards)처럼, 그를 선교사로 재조명하였다. 본서는 ‘두 렌즈 이론(Two-Lens Theory)’을 통해 조나단 에드워즈의 삶을 보면서 선교사로서 그의 선교학적 유산 6가지를 선명하게 제시하였다. 참으로 통쾌·상쾌하다.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는 ‘기도의 사람’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와 역사적인 만남을 통하여 ‘선교정보 확산’(Information Distribution)에 기여한 특별한 유산을 남겼다. 아울러서 그는 ‘선교운동의 확산’/’선교를 구속사 관점에서 보는 통찰력’/’선교를 위한 기도합주회 운동’/’국제 선교운동의 토대 마련’/’에드워즈의 순교자적 부르심’의 선교적 삶(55년)을 살아낸 위대한 저술가요 선교운동의 새벽별 이자 ‘근대 선교의 할아버지’였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신학>(CLC, 2025,9월10일, 534페이지). 저자는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 두 렌즈 이론으로 에드워즈의 부흥과 선교를 조명했다. “에드워즈의 선교적 비전을 구속사적 관점에서 조명한 본서는, 에드워즈를 사랑하는 이들 뿐 아니라 선교신학의 원류를 탐구하는 모든 신학도와 선교 실천자들에게 꼭 읽어야 할 필독서입니다” (추천사, 정부홍 박사(에드워즈대학교 총장) 서평자가 최근에 읽었던 여러 책들 중에 가장 신선한 책이다.

신춘식 박사는 CGN TV에서 “철가방 소년에서 복음전도자” 소개되었다. 지리산 골짜기서 지게 지며 가족을 도왔고 중학교 졸업 후, 청계천에서 낮에는 철가방, 밤에는 책가방 들고 공부. 총신대 신학대학원졸업. GMS선교사로서 남인도 벵갈루루 지역서 8년간 신학교 강의 목회자 훈련. 2015년 인도 정부의 추방정책으로 도미. 미국 풀러신학교 선교대학원(D. Min), California Prestige University(Ph. D). 현재 GMS 미국 서부지부 지부장. CPU박사원 선교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본서는 저자의 박사학위(Ph.D) 논문이다. 서론과 결론 포함 9개 장 목차다. 서평자는 제3장 방법론(Methodology을 간단히 소개하며, 조나단 에드워즈의 스톡브리지 인디언 선교(6장), 조나단 에드워드의 선교학적 유산(8장)을 중심으로 간단히(?) 서평 할 것이다.

1. 조나단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은 누구인가?

도서 ‘조나단에드워즈의 선교신학‘ 앞 표지 이미지.

에드워즈는 18세기 미국의 영적 각성을 일으킨 인물로서 목회자/신학자/변증가/선교사였다. 교회사에서도 ‘최고의 영적 거인’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20세기의 최고의 설교자, 마르틴 로이드 존스(Martyn Loyd Jones, 1899-1981)는 에드워즈를 ‘에베레스트산’에 비유하며, 부흥은 종종 에드워드의 전집들을 읽기 시작할 때 일어났음을 언급하며, 그의 설교와 논문들과 신학적인 주제 강연을 독자들에 읽으라고 강추 하였다(pp. 77, 78)

마르틴 로이드 존스의 영향으로 청교도 문헌들 재조명! ‘조나단 에드워드 연구 시작

에드워즈를 평생 영적 스승으로 모시며, 기독교 희락주의(Christian Hedonism) 원리로 사는 존 파이퍼(John Pipe)목사는 “조나단 에드워즈는 미국 역사에 있어서, 아마도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가장 뛰어난 분이다”고 평가했다. 파이퍼는 오늘날 미국교회가 에드워즈와 동시대에 살았던 “벤자민 프랭클린의 실용주의를 선택했기 때문에 신학적으로 황폐해지고, 성공병에 대한 염증으로 에드워드의 목소리는 다른 어느 시대보다 더욱 필요하다”(p. 78)고 하였다. 서평자도 존 파이퍼의 미국교회 황폐화가 실용주의 있다는 지적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특히, 20세기 중반 이후 마틴 로이드 존스의 영향으로 청교도 문헌들에 대한 재조명이 이루어 지면서, 에드워즈에 대한 복음주의 학자들의 관심이 본격화되었다. 이런 흐름속에서 이안 머레이(Iain Murray)와 제임스 패커(James I. Packer)는 에드워즈를 복음주의 신학의 흐름 속에 위치시키며 그의 신학과 영성을 복원하고 계승하는 작업에 기여했다” (pp. 84-85)

조나단 에드워즈 연구 박사(Ph.D)논문: 110년간 286편 (한국인 박사만 40명)

조나단 에드워즈의 학문적 탁월성은 신학과 설교학을 넘어서 철학/미학/영문학/미국 지성사/윤리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서 이루어 졌다. 1890-2000년까지 110년간 에드워드 관련된 작성된 박사논문이 무려 286편! 그의 신학적 입장을 공유하는 칼빈주의자나 복음주의 신학자들에 국한되지 않고 그의 신학에 동의하지 않는 학자들에 의해서도 활발히 전개되어 왔다. (2022년 기준으로 에드워드 연구로 국내 박사학위를 받은 자가 40명이 넘는다).

에드워드 탄생 300주년을 기념하여 한국개혁신학회는 기념논문집을 출판했다. 2013년부터 ‘서울 조나단 에드워즈 컨퍼런스’를 통해 에드워즈에 대한 활발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2. ‘두 렌즈 이론(Two-Lens Theory): 복음주의 신학적 관점과 선교학적 관점 통합

신춘식 박사의 ‘두 렌즈 이론’, 새로운 역사사관으로 에드워즈를 조명하였다.

역사 서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관(史觀)이다. 사관은 과거를 해석하여 현재를 이해하며 미래를 조망하는 나침판이다. 역사학자 마다 역사를 기술하는 방식이 다양하다. 기독교 역사가는 역서적사실을 해석하여 새로운 사실을 창출하는 자이다. <조나단 에드워즈의 평전>을 쓴 조지 마즈던(George M. Marsden, 1939- )은 ‘역사학자는 기독교 공동체가 방향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는 자’로서 우리가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오게 되었는지를 이해하도록 돕는 자라 하였다. 신춘식 박사는 에드워즈를 균형 있게 이해하기 위해서 복음주의 신학의 렌즈에 더하여 선교학적 관점 ‘두 렌즈 이론(Two Lens Theory)’으로 에드워즈를 입체적으로 조명하였다.

복음주의 신학적 관점(조지 마즈던)과 선교학적 관점(폴 피어슨/케네스 라투렛/랄프 윈터, 도날드 맥가브란)

두 렌즈를 통해서 에드워즈의 숨겨진 모습을 입체적으로 이해한 것이다. 곧 에드워즈에 수 많은 선행연구들을 뛰어넘어 에드워즈를 보다 종합적으로 바라보게 한다는 점이 돋보인다. “특히 에드워즈가 남긴 선교적인 유산을 조지 마즈던의 신학적 관점과 폴 피어슨, 케네스 라투렛, 랄프 윈터의 선교학적 관점을 통해 균형 잡힌 방식으로 통합 신 교수의 연구는 독자들에게 깊은 학문적 성찰과 감동을 제공합니다” (임윤택 박사 추천사)

3. 조나단 에드워드와 부흥 운동의 역사 “부흥 없이는 선교도 없다”

두 렌즈 이론은 에드워즈의 선교운동은 사실상 부흥운동에서 비롯됨을 주목한다. 역사상 중요한 선교운동은 부흥운동에서 출발했다. 에드워드는 미국교회의 부흥운동에 핵심 인물이다. 그는 노샘프턴교회에서 23년 사역하는 동안 두 차례( 1730년대 코네티컷 골짜기 부흥운동, 1740년대 조지 휫필드와 연합한 대각성운동) 교회부흥(각성)운동을 주도했다.

“폴 피어선(Paul E. Pierson)은 선교운동과 부흥 운동과의 관계를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선교운동은 부흥운동에서 출발한다. 이런 까닭에 선교에 관심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부흥운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가 속해 있는 단체들은 대부분 부흥운동의 결과로 형성되었다. (중략) 어떤 특정 개인이나 집단이 어떤 경험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선교하지 않으면 ‘부흥’이라 부를 수 없을 것이다” (p. 234, 부흥은 선교의 성령님과 분리될 수 없다)

코네티컷 부흥운동(1730년대)과 제1차 대각성운동(1740-42)과 에드워즈

1730년대 에드워즈는 노샘프턴교회 목회당시 목요강좌서 구속에 대한 강좌이후 노샘프턴교회와 그 주변 교회서 부흥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1735년 봄/여름 성령의 뜨거운 역사가 온 동네와 교회에 충만하게 나타났다. 연이어 1738, 1739년 연이어 에드워즈는 고전13장과 하나님의 구속사에 관해 연속설교를 할 때, 1740년경 2번째 부흥이 뉴잉글랜드 전역에서 새로운 대각성운동이 일어났다. 이때 조나단 에드워즈의 초청으로 영국에서 건너온 조지 휫필드의 순회 설교가 미국의 대각성운동의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Sinners in the Hands of an Angry God)

부흥의 불길은 휫필드의 설교로 점화되어 에드워즈의 설교사역에 불을 붙였다. 1741년 7월 8일 코네티컷주 엔필드(Enfield)서 에드워즈의 유명한 설교, “하나님의 진노의 손에 붙잡힌 죄인들”설교(본문: 신32:35). 그는 “인간의 지식이나 이성을 의지하는 것은 마치 지옥 불 위에 매달린 거미와 같다”고 회중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다. 어떤 사람은 지옥불에 떨어지지 않기 위해 교회 기둥을 잡기도 했다. 이 설교는 대각성운동의 기폭제 역할을 했다. 서평자는 한국과 전세계 교회 주일예배 강단 마다 이런 불타는 설교가 전해지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변호하는 탁월한 부흥신학자요 체험신학자 였다. 자신의 설교와 저술을 통해 대각성 운동 중에 나타난 현상들이 성령의 진정한 나타나심 이었음을 상세하게 논증하였다. <성령의 역사 분별표지>(The Distinguishing Marks, 1741), <부흥에 관한 고찰> (Some Thoughts Concerning the Revival, 1742), <신앙과 정서>(The Religious Affection, 1746). 이 3권의 책들은 부흥운동의 신학적 옹호 뿐만 아니라, 무엇이 참된 부흥/거짓 부흥인지를 성경적으로 정확하게 진단하며, 부흥신학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참된 부흥은 단순한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죄의 각성과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는 과정임을 강조했다. 이 같은 일련의 부흥운동은 곧바로 선교운동으로 연결되어 점화되었던 것이다.

4. 에드워즈의 스톡브리지 인디언 선교.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섭리적 만남’

스톡브리지(Stockbridge)는 허드슨강(Hudson River) 상류계곡 아메리카 원주민 부족 인디언을 문명화 하여 복음화하여 그들의 충성을 확보할 목적으로 조성된 마을. 인디언 모히칸(Mohicans)족(250명)으로 ‘스톡브리지 인디언’으로 지칭되었다. 에드워즈가 활동하던 18세기는 미국이 독립되기 전 영국 식민지 시대였으며 인디언 문제가 큰 사회적 이슈였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외할아버지가 목회하던 노샘프턴교회서 23년간(1727-1750) 목회했다. 그는 전임자의 성찬에 대한 의견과 다르게, 성찬에 대한 엄격한 견해를 고수했다. 성찬에 대한 논쟁이 극에 달하였을 때 교인들의 투표 결과에 따라 그는 교회를 떠나게 되었고, 곧 인디언 선교사가 되었다. 에드워즈는 노샘프턴교회서 목회 할 때부터 인디언 선교에 적극 참여하고 있었다. 그를 인디언 선교로 인도하신 ‘선교의 하나님의 섭리하심’이 놀랍다.

조나단 에드워즈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만남과 인디언 선교: ‘놀라운 하나님의 섭리’

“에드워즈는 노샘프턴교회에서 사역을 할 때부터 선교에 관심이 있었고, 선교일에 참여해 왔다. 에드워즈가 선교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1730년 중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드워즈가 처음으로 인디언 선교에 관련된 것은 1734년이었다” (p. 311) 에드워즈는 스톡브리지 선교(Stockbridge Mission)가 처음 시작되었을 때부터 지대한 관심을 가졌고 초기 인디언 선교사들은 대부분 에드워즈 목사관에서 함께 참여한 자들이었다.

무엇보다도 에드워즈가 인디언 선교에 뛰어든 것은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의 생애와 일기를 출판한 것에서 찾을 수 있다. 사실상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의 멘토였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인디언 선교에 헌신했던 브레이너드는 결국 폐결핵으로 악화된 상태에서 에드워즈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병마와 사투할 때 에드워즈의 가족, 딸 제루사가 그를 간호하는 가운데 브레이너드는 1747년 10월 9일 별세하게 된다.

“브레이너드는 에드워즈에게 인디언 선교의 중요성을 보다 확고하게 일깨워준 인물이었다. 에드워즈는 브레이너드의 죽음을 통해 인디언에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했다. 에드워즈가 브레이너드의 삶을 책으로 출판한 것은 그가 인디언 선교에 관심이 있었다는 분명한 증거가 되는 것이다”(p. 313, 이는 세계선교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분명하였다)

<데이비드 브레이너드의 생애와 일기>(The Life of David Brainerd), 1749)

이 책은 브레이너드가 남긴 일기와 서신, 그리고 자신의 관찰을 바탕으로 출간했다. 이 책은 단순한 전기(傳記, biography)를 넘어 “인디언 선교의 영적 의미와 선교사로서 고난과 헌신, 하나님의 섭리를 조명한 선교학적 텍스트였다. 에드워즈는 이 책을 통해 인디언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존재로서 회심의 가능성을 지닌 존재임을 주장하며, 인디언 선교의 정당성과 필요성을 교회에 각인 시켰다” (p. 357, 기존의 자서전들과 구별되는 브레이너드의 내적인 영성에 집중한 ‘영적 자서전(Spiritual Autobiography)’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브레이너드의 일기의 출판은 미국 내 청교도들과 유럽 복음주의자들에게 신선한 감동을 주었다. 이 책은 윌리엄 케리(William Carey), 로버트 멕체인(Robert M. McChene), 헨리 마틴(Henry Martyn),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프란시스 애즈베리(Francis Asbury), 토마스 코크(Thomas Coke), 로버트 모리슨(Robert Morrison), 사무엘 밀스(Samuel Mills), 데이비드 리빙스톤(David Livingstone), 아도니람 저드슨(Adoniram Judson), 앤드류 머레이(Andrew Murray) 등 19세기 복음주의 선교사들과 근대선교운동에 불을 지핀 책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이 책의 영향으로 미국교회가 해외선교를 태동하게 되는 신학적 토대를 제공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내지선교부/홰외선교부가 설립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미국 침례교선교회(Batist Missionary Society, 1792)와 런던선교회(London Missionary Society1795)가 설립되는 등 미국과 영국에서 근대선교운동이 태동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이 저술은 보스턴에서 처음 출판되어 곧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무수한 재판과 재인쇄를 거듭했다. 존 웨슬리는 이 책의 요약본을 출판하였고, 19세기 전반 제2차 대각성 때 여러 판을 거듭한 이 책은 미국 안에서 뿐만 아니라 해외에서 가장 인기있는 미국문헌들 중 하나가 되었다. 많은 선교사가 그 책을 품고 선교지로 떠났다. 에드워즈의 저서들 중 그의 생전에 가장 인기 있던 책으로, 아직도 많은 이에게 영감을 주는 전기물이며,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기를 부인하고 세상의 위로를 포기한 생애의 모범으로 남아있다” (p. 388)

에드워즈의 <기도합주회>(A Humble Attempt, 1747)

에드워즈의 선교사상을 잘 드러나는 책이다. 에드워즈는 스코틀랜드 사람들과 지속적인 유대관계를 가지고 서신을 왕래하였다. 스코틀랜드 지도자들 한 그룹은 1744년 10월에 그리스도의 나라의 세계적인 확장과 번영을 위한 중보기도연합회를 조직하였다. 에드워즈는 그리스도의 왕국이 오기를 위한 스코틀랜드 교회의 연합기도 요청을 적극 지지하며 전 세계에 부흥과 회심을 통해 천년왕국을 맞이할 것을 바라보았던 것이다. 이 책은 한국교회 청년대학생들 선교대회, ‘선교한국’의 <기도합주회>의 전범(典範)이 되었다.

 “기도, 부흥 그리고 선교”: 중보기도 → 영적각성 → 세계복음화

<기도합주회> 즉 <기독교의 부흥과 지상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의 확장을 위한 비상한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백성들의 분명한 일치와 가시적 연합을 증진시키기 위한 겸허한 기도 시도>(A Humble Attempt to promote an explicit agreement and visible union of God’s people through the world, in extraordinary prayer for the revival of religion, and the advancement of Christ’s Kingdom on earth, pursuant to scripture promise and prophecies concerning the last time). 긴 제목의 책에서 에드워즈는 “교회의 중보기도를 우선순위에 두었다. (중략) 이 책에서 에드워즈가 선교와 종말, 그리고 역사에 관하여 견지하고 있는 근본적인 사상은 바로 기도, 부흥, 선교이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중보기도, 영적 각성, 세계 복음화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성경에서나 하나님의 교회에서 입증할 수 있는 패턴이다. 부흥이 오기 전에는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중보기도가 선행되었고, 부흥은 그 결과로서 놀라운 복음의 폭발을 가져왔다는 것이다”(pp. 452-53, 에드워즈의 놀란 통찰!! )

나가는 말(결론): 조나단 에드워즈의 선교학적 유산: 중보기도 → 영적각성 → 세계복음화

“기도로 부흥을 일으키고 부흥은 선교로 이어진다” (조나단 에드워즈)

지금까지 신학계에서 조나단 에드워즈는 부흥운동가/신학자/목회자/변증가/철학자/저술가로 알려졌다. 저자는 “복음주의 신학과 선교학”의 두 렌즈로 에드워즈를 볼 때 비로서 우리는 입체적 균형감을 갖고 그의 진면목(眞面目)을 보게 된다고 하였다. 그는 ‘부흥과 목회와 선교’에 대한 새로운 통찰을 아우르는 ‘통전적 선교사요 선교신학자’였음을 확인하였다.

그는 짧은(55년) 생애를 통해 “기도로 부흥을 일으키고 부흥은 선교로 이어진다”는 그의 메시지대로 선교적(순교적) 삶을 살아내었다. 20세 전에 작성한 70개의 결심문(Resolutions)을 매주 주말에 읽고 점검하면서 앞장서서 부흥운동을 주도하였다. 선교운동 확산과 선교정보 확산/국제연합기도의 발판을 마련하며/선교를 구속사(救贖史) 관점으로 이해하였다. <기도합주회>를 통해 모든 평신도에게 주님의 대위임명령의 실천의 중요성을 일깨웠다. 그래서 근대 선교운동이 전세계로 요원의 불길처럼 확산되었던 것이다.

스테반의 순교(행7장)가 새로운 이방선교의 문을 활짝 열었듯이, 에드워즈는 자신의 생명을 인디언 원주민 선교의 제단에 바친 순교자였다. 무엇보다 당시의 대부분 사람들이 예방접종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린다고(신학적으로) 이해하였다. 그러나, 에드워즈는 인디언을 위해 천연두 예방접종을 스스로 먼저 맞았고 결국 그는 천연두 예방접종 부작용으로 55세에 죽음을 맞이 하였다. 그의 전 생애는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순종의 삶이었다.

“나는 전 생애 동안 하나님의 영광과 나 자신의 행복과 유익과 기쁨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하자. 지금 당장이든, 아니면 지금부터 수 많은 세월이 지나가든 시간은 전혀 고려하지 말자. 내가 해야 할 의무와 인류전체의 행복과 유익에 최상의 도움이 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자. 내가 부딪치게 될 어려움이 무엇이든지 간에, 또한 그 어려움이 아무리 많고 크다 할지라도 그렇게 하자” (조나단 에드워즈의 결심문 1번)

◇ 서평후기

사도 바울은 신학자인가? 목회자인가? 선교사인가” 서평자는 늦은 나이에 신학을 공부하면서 신학교 교수들, 신학생은 모두 ‘바울신학’ 곧, 신학자 바울을 당연시 하는 것에 놀랐다. 바울 선교사는 해외 선교를 위한 택함 받은 하나님의 그릇이었다. 본서에서 에드워즈도 그는 부흥운동가, 목회자 신학자 뿐 아니라, 선교사로 이해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에드워즈의 70개 결심문은 그가 20세 전에 쓴 것임을 본서를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서평자는 결심문 70개를 매주말에 소리 내어 읽기로 작정하였다. 서평자는 데이비드 브레이너드(David Brainerd, 1718-1747)와 ‘맥체인 성경읽기’의 로버트 맥체인(Robert M. McCheyne, 1813-1843)이 ‘29세에 별세’한 것이 무슨 뜻인지를 주님께 묻게 된다. <오직 주님께 영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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