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포스터의 마지막 수업

[신간] 겸손을 배우다
도서 「겸손을 배우다」

세계적인 영성 고전 <하나님을 경험하는 길>로 전 세계 그리스도인에게 깊은 영적 통찰을 전했던 리처드 포스터가 마지막으로 남긴 주제는 다름 아닌 ‘겸손’이다. 그는 말한다. “겸손은 인간을 다시 흙으로 데려다 놓는 일이다.” 새롭게 출간된 <겸손을 배우다>는 포스터가 1년 동안 겸손의 본질을 탐구하며 써 내려간 영적 일기이자 순례의 기록이다. 현대인의 내면을 파고드는 자기과시의 문화 속에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통해 겸손의 참된 의미를 다시 배운다.

“겸손이란 자신을 낮추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정확히 보는 것’이다” 책은 겸손을 단순히 ‘비굴함’이나 ‘자기부정’으로 오해하는 현대의 시선을 바로잡는다. 포스터는 겸손이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도, 낮게도 보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진실함의 덕목이라고 정의한다.

그는 이렇게 쓴다. “겸손은 자신을 실제보다 높게 생각하지도, 낮게 생각하지도 않는다. 자신의 강점과 결함을 동시에 직시하는 것, 그것이 참된 겸손이다.” 이처럼 포스터는 겸손을 ‘인간됨의 회복’으로 본다. 사람을 다시 흙으로, 하나님께로 돌려놓는 힘이 바로 겸손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이 바꾸신 겸손의 관점

고대 헬라 세계에서 겸손(타페이노스)은 ‘천하다’, ‘비굴하다’는 부정적 의미로 쓰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진다”는 말씀으로 이 가치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 놓으셨다. 포스터는 이 점을 강조하며, 예수님이 겸손의 의미를 ‘약함’이 아닌 ‘하나님의 강함 안에 거하는 상태’로 바꾸셨다고 말한다. 이제 겸손은 단순한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을 드러내는 제자도의 핵심이 되었다.

라코타족의 달력으로 배우는 12개월의 겸손 훈련

이 책의 독특한 구성은 포스터가 북미 원주민 라코타족의 달력을 따라 12달 동안 겸손을 묵상한 데 있다. 그는 라코타족이 지닌 ‘땅과 더불어 사는 지혜’ 속에서 인간 본연의 순수를 발견하고, 매달 한 가지 덕목인 겸손, 인내, 존중, 명예, 사랑, 희생, 진실, 연민, 용기, 끈기, 아량, 지혜를 주제로 묵상한다.

그는 일기 속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겸손의 징후 중 하나는 통제하려는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다. 겸손한 이는 다그치지 않는다. 그는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만든다.” 포스터는 매달의 묵상을 통해, 겸손이 단순히 도덕적 훈련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고 관계를 회복하는 사랑의 태도임을 보여준다: “겸손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받을 준비를 해야 한다.”

포스터는 인간의 노력으로 겸손을 얻을 수 없다고 단언한다. “겸손은 우리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다가오심으로 주어지는 은혜의 선물이다.”

그는 이 ‘선물’을 받기 위해 필요한 것은 순종과 공동체라고 강조한다. 사랑의 공동체 속에서 영적 스승과 신앙의 친구들이 서로를 붙들 때, 비로소 겸손은 성품으로 자리 잡는다. 따라서 겸손은 개인의 내면 수양이 아니라 공동체적 덕목이자 하나님 나라의 관계적 힘이다.

꽃처럼 겸손하게, 흙처럼 단단하게

책 곳곳에는 저자의 아름다운 시적 묵상이 담겨 있다. “계곡의 꽃을 보라. 거들먹거리지 않으면서 찬란히 빛난다. 꽃은 그저 그 자리에 서 있을 뿐이다. 나는 그 꽃에게서 하나님의 겸손을 배운다.”

그의 문장은 마치 일기처럼 담담하지만, 그 안에는 평생 영성 훈련가로 살아온 노(老) 멘토의 깊은 통찰이 배어 있다. 그는 겸손을 통해 “나는 더 나다워지고, 다른 사람은 내 곁에서 더 편안해진다”고 고백한다. 결국 겸손은 나를 작게 만드는 덕이 아니라, 모든 관계를 넓히는 은혜의 힘임을 일깨운다.

“겸손의 은혜에서 자라가라” — 마지막 멘토의 유언

<겸손을 배우다>는 리처드 포스터의 마지막 영적 유산이자 자기중심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주는 깊은 도전이다. 그는 “겸손은 약한 자의 미덕이 아니라, 하나님의 강함을 담는 그릇이다.”라고 말한다.

이 책은 신앙과 인격의 성숙을 추구하는 모든 그리스도인, 그리고 제자훈련과 영성지도에 헌신하는 목회자와 리더들에게 삶의 방향을 새롭게 가다듬는 영적 지침서가 될 것이다. 땅처럼 낮아질 때, 하늘의 은혜가 스며든다. <겸손을 배우다>는 그 낮아짐의 길에서 다시 하나님을 배우게 하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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