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세대에 남겨야 할 유산,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의 문화”

이춘성 목사, “유전자 전장검사, ‘완벽한 아이 고르기’라는 엄격한 선별”
이춘성 목사 ©기독일보DB

이춘성 목사(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사무국장, 분당우리교회 협동목사)가 최근 한국기독교윤리연구원 홈페이지에 ‘완벽한 아이를 향한 비뚤어진 욕망: 유전자 검사를 통한 새로운 산전검사의 도입과 그 위험성’이라는 주제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 목사는 “지난 9월 WIRED Health 2025 무대에서 미국 스타트업 오키드(Orchid)의 CEO 누르 시디키(Noor Siddiqui)는 이렇게 선언했다. 그녀의 회사는 아직 자궁에 착상되지 않은 초기 배아의 DNA를 전장 유전체 수준에서 분석해(Whole Genome Sequencing), 수천 가지 질병의 위험도를 산출하고, 그중 가장 건강할 가능성이 높은 배아를 골라 이식할 수 있도록 돕는다”라며 “시디키는 이 기술이 희귀 유전질환은 물론, 심장병, 당뇨, 치매, 정신질환 같은 만성 질환의 미래 위험까지 낮출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하는 중증 유전질환을 완전히 피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머지않아 이 방식이 임신의 기본 전제가 될 것이라 강조했다”고 했다.

이어 “이 비전은 겉으로 보기엔 부모와 아이를 향한 배려처럼 들린다”며 “이제 우리는 ‘유전자 전장검사’라는 새로운 산전검사가 가져올 위험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한다. 겉으로는 더 좋은 돌봄과 배려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하는 일은 ‘완벽한 아이 고르기’라는 이름의 더 엄격한 선별”이라고 했다.

또 “이 선별은 단순한 의학적 조언을 넘어, 우리가 생명을 바라보는 기준 자체를 바꾸고 있다. 이제 인간 생명은 더 이상 태어나는 것만으로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며 “아예 태어나기도 전에 점수를 매기고, 그 점수에 따라 선택되거나 버려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 기준은 ‘사랑’이나 ‘존엄성’이 아니라, 시장 논리”라고 했다.

그는 “더 심각한 것은, 이런 계산이 단지 개인 윤리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의 인식을 바꿀 것”이라며 “우리가 ‘조금이라도 위험이 있으면 미리 걸러내야 한다’고 말하는 순간, 장애나 만성질환 가능성이 있는 아기들은 점점 ‘낳아서는 안 될 생명’으로 취급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미 장애인 인권 운동가들과 일부 생명윤리학자들은 이 흐름을 ‘부드럽게 포장된 우생학(eugenics)’이라고 비판한다. 약한 생명은 단지 치료가 필요한 이웃이 아니라 미리 사라져야 할 리스크로 바뀐다”며 “이 변화는 교회와 기독교 공동체가 전통적으로 붙들어온 복음적 상상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복음은 약자를 제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약자를 품으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또한 이 기술이 사실상 빈부의 격차에 따라서 부와 건강을 대물림하는 불평들을 심화 시킬 것”이라며 “PGT-A 같은 검사는 수천 달러가 들지만 보험은 잘 안 된다. 전장 유전체 배아 스크리닝은 별도로 수천 달러의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이 돈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통계적으로 더 안전한 배아를 선택할 수 있고, 그렇지 않은 가정은 그냥 자연임신을 한다. 이것은 건강, 지능, 정신질환 위험도 같은 요소들까지 계급화할 위험이 있으며, 부자들은 유전적으로 리스크가 적은 아이를 선택하여 가질 특권을 얻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목사는 “유전자 기술 발전 그 자체를 악으로 단순화할 필요는 없다”며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질환을 막는 것은 선한 일일 수 있으며, 부모가 아이의 고통을 줄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사랑에 근거한다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아래 있지 않는 사랑은 언제나 이기적일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유전자 기술의 발전을 곧장 악으로 못 박을 일은 아니다. 희귀하고 치명적인 유전질환을 막는 일은 선할 수 있고, 아이의 고통을 덜어 주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이 사랑에서 비롯됨을 의심하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 아래 놓이지 않은 사랑은 언제든 이기심으로 기울기 쉽다. 그 사랑은 부모의 기대와 욕심을 따라 생명을 고르는 힘, 마치 창조자 하나님의 자리에 부모들을 앉게 만든다”고 했다.

또한 “기술은 부모의 불안을 잠시 덮어 주지만, 동시에 그들에게 ‘이 아이를 살릴지 지울지’아 같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결정을 강요하고 있다”며 “의료 체계는 그 결정을 합리성이라는 말로 감싸고, 시장은 그것을 출산을 업그래이드 하는 것이라고 포장한다”고 했다.

아울러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께 속하며, 약할수록 더 보호받아야 하고, 불확실할수록 더 하나님께 믿음으로 맡겨야 한다고 말이다. 또한 기독교 윤리학자 메일랜더의 말처럼, ‘네가 존재해서 좋다’라고 선언해야 한다”며 “우리는 통제할 수 없는 미래를 이유로 이미 존재하는 생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 우리가 정말로 미래 세대에 남겨야 할 유산은 유전적으로 정제된 완벽함이 아니라, 약함과 위험을 지닌 생명도 존중받는다는 확신, 곧 인간 존엄과 생명 존중의 문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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