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속에서도 함께하소서: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기도”

토드 네틀턴 부사장.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토드 네틀턴 부사장의 기고글인 ‘IDOP: 우리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이유’(IDOP: 2 reasons why we must pray for persecuted Christians)를 최근 게재했다.

네틀턴 부사장은 '순교자의 소리'의 메시지 담당 부사장이자 '순교자의 소리 라디오'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매년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한 국제 기도의 날(IDOP)’이 다가올 때마다, 필자는 이것이 단지 교회 달력 속의 또 하나의 날짜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금 떠올린다. 이날은 믿음을 이유로 고난받는 우리의 형제자매들과 손과 마음을 맞잡는 시간이다. 그들을 위한 기도는 단순한 상징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실제적인 힘의 근원이다.

이번 10월 한 달, 필자는 남아시아 지역에서 신앙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사랑하는 이들이 살해당한 시신 곁에 서 있던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다.

27년 동안 이 사역을 하며, 그들에게 “우리가 미국에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그들의 첫 번째이자 변함없는 요청은 늘 같았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1. 성경이 그렇게 명령하기 때문이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하라는 부르심은 단순한 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는 시급하고 지속적인 명령이다. 히브리서 13장 3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도 함께 갇힌 것 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너희도 몸을 가졌은즉 학대받는 자를 생각하라.”

이 말씀은 단순한 공감(solidarity) 그 이상이다. 그것은 동일시(identification) 의 부름이다.
“몸 안에 있다”는 것은 한 지체가 고통받을 때 우리 모두가 함께 고통받는다는 뜻이다 (고린도전서 12:26).

마치 내가 그 마을에서 쫓겨난 사람인 것처럼, 내가 오물로 젖은 감옥 바닥에 갇힌 사람인 것처럼, 내가 피 묻은 옷을 입고 매를 맞은 사람인 것처럼 느껴야 한다는 것이다. 시편 79편 11절은 이렇게 간구한다: “갇힌 자의 탄식을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며, 죽기로 정한 자들을 주의 크신 능력대로 보존하소서.”

이 탄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하늘로 올라간다. 북한의 수용소에서, 에리트레아의 뜨거운 철제 컨테이너 감옥에서, 이란의 지하교회에서, 그리고 나이지리아에서 급진적 폭력단체에 의해 쫓겨난 그리스도인들 속에서 형제자매들의 울부짖음이 하나님 보좌 앞으로 올라가고 있다.

IDOP 당일뿐 아니라 1년 내내 당신은 이 고통받는 성도들의 탄식을 기억하겠는가? 그들과 함께 기도의 탄식으로 동참하겠는가? 바울 역시 사슬에 매인 상태에서 교회에 거듭 기도를 요청했다: “형제들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25).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 일 때문에 매임을 당하였노라” (골로새서 4:3).

그리고 예수님은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마태복음 5:44). 즉, 기도는 단지 연대의 표현이 아니라, 순종의 행위다.

우리는 흔히 위로, 안전, 보호를 위해 기도한다. 물론 그것들은 선한 기도이다. 필자 역시 그렇게 기도한다. 하지만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은 “박해가 끝나게 해달라”는 기도를 요청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렇게 요청한다. “박해 속에서도 신실함을 지킬 수 있게 기도해 주세요.” 그들의 기도는 “주여, 우리를 불길에서 건지소서”가 아니라, “주여, 그 불길 속에서 우리와 함께하소서”이다. 그들의 요청에 맞춰 기도할 때, 우리는 그들의 증언의 여정에 동역자로 참여하게 된다.

2. 그들이 우리에게 그것을 부탁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찾아가 “미국의 신자들이 무엇을 도와드리면 좋겠습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의 첫 대답은 언제나 같다: “우리를 위해 기도해 주세요.”

그들의 첫 번째 요청은 자원이나 구호가 아니다. 기도이다. 왜일까? 그들이 가장 깊은 고통의 자리에서 느끼는 가장 큰 두려움은 죽음이 아니라 망각이기 때문이다. 사탄은 박해받는 신자들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아무도 너를 기억하지 않는다. 너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의 기도는 그 거짓말에 맞서는 영적 전쟁의 무기다. 기도는 형제자매들에게 이렇게 상기시킨다. “그리스도의 몸은 너와 함께 있다. 너는 버려지지 않았다. 네 고난은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기억되고 있다.”

복음을 위해 감옥살이를 견딘 많은 이들은 성도들의 기도를 실제로 느꼈다고 고백한다. 편지도, 소식도 닿을 수 없는 어두운 감옥 속에서 그들은 자신에게서 나오지 않은 힘을 느꼈다고 말한다. 그 힘은 바로 기도의 응답이었다.

11월 2일이 다가오면, 당신과 당신의 교회가 이 전 세계적인 기도의 날에 함께 참여하기를 바란다. 성경이 우리에게 “그들을 기억하라”(히브리서 13:3)고 한 그 말씀대로 그리스도 때문에 갇힌 모든 신자들이 결코 홀로 있지 않음을 알게 될 때까지 말이다.

박해받는 그리스도인을 위해 기도할 때 우리는 거룩한 동역 안으로 들어간다. 이 땅에서는 결코 만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영원 속에서 함께할 형제자매와 손을 맞잡는 순간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의 부르심에 순종하고, 복음을 위해 고난당하는 이들의 간절한 요청에 응답하는 길이다.

그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자. 그들의 이름을 기도 속에 올리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담대함과 용기, 그리고 잊히지 않았다는 확신을 주시도록 기도하자. 그들은 결코, 그리고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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