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의 본질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드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드려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이다. 그리고 교회는 기도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또 교회는 영혼을 구원하는 장소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현대교회에 이러한 교회의 본질이 사라지고 있다. 교회에 사람을 모이게 하려고 각종 행사와 잔치를 많이 하고, 일반 교육 과목을 개설해 가르친다. 여러 친교 모임과 노인대학을 운영하면서 유행가를 가르치고, 노래방을 만들어 유행가를 부르게 하고, 운동 모임을 만들어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는 다시 초대교회의 모습으로 돌아가 성령 충만을 위한 기도 운동이 일어나야 한다. 어린이나 학생이나 청년이나 장년이나 노인이나 누구라도 기도하여 성령의 역사를 경험하면 진심으로 하나님을 믿게 되고 영혼 구원을 받는다. 교회는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한다.
권영구 – 교회와 예배 개혁
유스티니아누스의 하기아 소피아 건축은 단순히 신앙심의 발현을 넘어, 율리아나의 성 폴리에욱토스 교회를 능가하려는 암묵적인 경쟁 의식도 내포하고 있었다. 두 거대한 건축물은 단순히 신앙의 상징이 아니라, 당시 최고 권력자들의 우월성 추구와 서로를 능가하려는 야망의 거대한 기념비였다. 이러한 경쟁 속에서 하기아 소피아는 비록 역사에 길이 남을 걸작이 되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의 끝없는 야망과 그로 인한 대가가 아로새겨져 있다. 그들은 영광을 추구했지만, 그 영광의 이면에는 인간적인 교만과 경쟁 의식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우리에게 남보다 나아지려는 야망이 어떻게 인간의 본질과 신앙의 순수성을 왜곡시킬 수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미로슬라브 볼프 – 야망의 대가
약자가 억눌리는 현실 속에서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신다. 하나님은 불의와 악에 대하여 늘 사자와 같이 으르렁거리고 계신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만나는 하급자들과 약자들을 존중하고 살리는 삶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로 하는 사람’보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서 손을 내미는 예수의 제자가 되어 주기를 바라신다. 세상은 말할 것도 없고, 가정에서도 그리고 교회에서도 약자들은 철저히 외면당한다. 그러나 약자가 외면당하는 자리에 하나님이 서실 자리는 없다. 약자를 외면하면 하나님을 적으로 만드는 것이다. 하나님은 약자를 외면하고 누르는 자에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누르리니”(암 2:13). 아모스를 흔히 “정의(正義)의 예언자”라고 일컫는다. 이는 아모스의 핵심 메시지라 할 수 있는 “오직 정의를 물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같이 흐르게 할지어다”(암 5:24)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희생제물이나 곡식제물, 십일조 따위가 아니라 매일매일의 생활 속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다.
차준희 – 아모스의 영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