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길로 걸어서 들어가는 작은 섬 하나가 유명하다. 밀물이 썰물로 바뀌어 바닷물이 줄어들면 ‘모세의 기적’처럼 하루에 두 번 길이 열리는 신비한 ‘목섬’ 말이다. 그 카페의 글귀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소용없는 기도’였다. 2층으로 올라가는 입구에 걸어놓은 것인데, 얼마 전까지 그림 전시회가 열린 것 같았다. 혹시나 작품이 있나 해서 올라가 봤더니만, 그림 수십 점만 있을 뿐 벽에 이런 내용의 제목과 내용이 적혀 있었다.
제목은 ‘소용없는 기도’였다. 요즘 적지 않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께 불만을 가지면서 내뱉는 말과 같았다. 내용이 궁금해서 읽어보았다.
‘소용없는 기도’
“나의 간절한 기도와 염원은 아무런 소용이 없고
보란 듯 부질없는 기도와 염원 따위가 되었다.
나뿐만 그러하겠는가?
많은 이들의 기도와 염원이 무참히 짓밟히고
뭉개지는 시간만이 정직하게 관통하고 있다.
이렇게도 무력한데 어떤 희망을 얘기하고 나눌 수 있을까?
그럼에도 별수 없이 그림은 내게 이름 모를 희망을 심어주었다.
나의 무력과 당신의 무력이 지금 여기 함께한다면
우린 다시 이만큼 또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소용없는 기도가 서로 만난다면
우리 다시 기적을 마주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 별수 없는 나는 또 기도를, 영원을 품고
다시금 붓을 잡아 이름 모를 희망을 그리고 새긴다.
언젠가 당신 앞에 훌쩍 커버린 넘실대는
희망을 마주할 수 있기를 바라고 또 바라면서
잔잔하지만 정확한 믿음과 소망으로 부디 그럴 수 있기를
그런 나는 오늘도 소용없는 기도를...”
기도가 소용없다 하면서도 다시금 기도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의 처지를 잘 묘사하고 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 중에도 이처럼 자포자기의 상태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이들이 적지 않음을 알고 있다. 하나님이 우리가 바라고 소원하는 대로 늘 응답해 주시지 않음을 잘 알고 있기에 말이다. 그러다 보니 언제부턴가 하나님은 ‘기도해도 잘 들어주시지 않는 분’이란 존재로 각인이 되어버린 듯하다.
내 경험으로 봐서도 이는 부정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그래서 나 또한 그렇게 인식되는 하나님에 대한 불만과 불평이 가득할 때가 꽤 있음을 안다.
한 교회에서 설교를 했다. ‘10년이 가고 20년이 가고 30년이 가더라도 우리 하나님은 약속에 신실하신 분’이시라는 내용의 설교였다. 내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내가 원하는 소원들이 넘치게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다.
단지 내가 원하는 내용이 인간적인 것이기에, 그보다 더 나은 선택이 있음을 알지 못하기에, 더 큰 인내가 필요하기에 성취되지 않거나, 전혀 다른 것으로 이뤄주시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 후에 응답해 주실 때가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유명한 선교사 윌리암 케리는 인도에서 힌두교인 한 명을 전도해서 세례를 주는데, 7년이 걸렸다고 한다. 서아프리카에서는 한 명을 전도하는데, 14년이 걸렸다고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한 영혼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데, 9년이 걸렸다고 한다.
또한 인도에 옹고레(Ongole) 선교회라는 기관이 있었는데, 15년 동안 10명밖에 구원을 시키지 못해 문을 닫으려고 하다가 좀 더 기다린 결과 30년 후에는 15,000명을 전도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전도에도 인내가 필요하다.
‘고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의 조지 뮬러가 있다. 기도응답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하는 뮬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한 기도 제목이 있었다. 그것은 자기가 어렸을 때부터 같이 삶을 나누었던 다섯 명의 친구들의 구원 문제를 위해서 기도한 것이었다.
한 사람, 두 사람 믿기 시작했는데, 끝까지 믿지 않는 친구가 두 사람이 있었다. 뮬러는 이 두 친구를 위해서 오랜 세월 기도했다. 그래도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다. 뮬러가 노년이 되어서 병석에 눕게 되었다. 어느 날 뮬러는 주변 사람들에게 부탁했다.
“오늘은 내가 사랑하는 교회에서 말씀을 전할 수 있는 특권을 주십시오.” 그는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간절하게 최후의 설교를 했다. 그가 마지막 설교를 하던 그날, 그의 한 친구가 거기에 참석했다가 친구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리고는 뮬러가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기도 응답을 많이 받았던 뮬러도 한 친구를 위한 기도의 응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믿지 않았던 한 친구가 뮬러의 사망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자기 친구 뮬러가 자기를 위해서 무려 52년간이나 기도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바로 그때 그 친구는 예수를 믿었다.
그 후 그 친구는 전 영국을 순회하면서 이렇게 간증했다고 한다. “조지 뮬러 목사의 기도는 다 응답되었습니다. 저는 그 기도의 최후 응답입니다. 당신의 모든 기도도 다 응답됩니다.”
그렇다. 오늘 우리는 5년 2개월도 기도하지 않은 채 ‘하나님이 우리 기도에 잘 응답하지 않으신다’며 낙심해서 포기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가! 적어도 뮬러처럼 52년간은 기도해보고 해야 할 소리이지 않은가! 그렇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살아계셔서 우리가 기도하는 내용을 응답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고 계신다.
문제는 ‘우리 기도의 내용’과 ‘인내 부족’이다. 약속에 신실하시고 응답에 확실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우리 필요에 따라 채우심을 굳게 믿고, 늘 감사의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 세상에 ‘소용없는 기도’란 없다. 하나님과의 사랑 고백과 대화의 시간인 기도엔 버릴 것이 없다. ‘소용 가치가 충분한 기도’임을 꼭 기억하고 우리 모두 기도의 사람으로 거듭나면 좋겠다.
#신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