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죽음의 의미-대속(代贖)의 죽음(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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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 논구 시리즈

3. 성령의 능력으로 대속제물이 되신 예수

김영한 박사

예수는 자신의 신성과 성령이 주시는 겸허 능력으로써 죄인의 모양으로 자기를 낮추어 우리의 대속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셨다: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사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예수의 겸허는 그의 신적 본성의 겸허에서 나온다. 인간은 교만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일시하려다 하나님의 금지명령을 불순종하였다. 이에 반해 성자의 겸손은 자신을 성부와 동일시하지 않고 스스로 자신을 낮추어 인간의 모습을 취하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께서 성령이 주시는 사랑과 헌신의 능력으로 흠없는 자신을 대속제물로 하나님께 드렸다고 증언하고 있다: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히 9:14).

이렇게 성자가 자신을 대속제물로 드린 데는 성자가 가지신 무한한 신적 본성에 입각한 사랑에 기인한다. 성령은 겸허의 영이요 자신을 조건없이 주시는 대속의 영이요, 치료의 영이시다. 성령은 성자의 영이요 성부의 영이며, 양자(兩者)를 연결하는 사랑의 끈이요, 이 사랑은 자신의 충만에서 본성적으로 자신을 타자에게 아낌없이 주시는, 자신을 본성적으로 비우시는 능력이다. 조건없는 사랑의 능력은 성령의 능력이요, 이것이 바로 신적 자기 주심이요, 대속의 헌신이요, 제물되심이다. 제물되심으로 성자는 죄인을 심판하시는 성부의 정의를 충족시키고, 동시에 자신이 제물되심으로 죄인을 구속하시는 성부의 사랑을 충족시키신다. 인간이 되신 성자는 그의 신성이 지닌 성령의 충만으로 인성이 지닌 한계를 극복하였다. 하나님은 인간되신 성자 예수에게 성령을 한량없이 주셨다. 요한은 이에 대하여 증언한다: “하나님이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 없이 주심이니라”(요 3:34).

4.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kenosis of God): 성육신한 신성에 본질 변화 없음

1)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처형당한 유대인, 즉 변두리 지역 나사렛 출신 예수 안에서 죽으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κένωσις, kenosis)을 나타낸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 영광의 본체를 버리고 인간의 아들이 되시고 고통을 받으시고, 능욕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처형되시기까지 자기를 낮추셨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죄와 죽음의 세력을 척결하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 자신이 인간이 되시어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죄인을 구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나심이다. 요한은 이 사랑의 화신(化身)이 세상에 보내신 하나님 아들 나사렛 예수라고 증언하고 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하나님 사랑은 관념적 초연한 사랑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주신 아주 구체적인 아가페(Agape)다.

헬라인들에 의하면 신적인 이데아는 저 영원의 세계 속에서 변하지 않고 소멸하지 않고 그 정신적 숭고함 속에 있다. 이들은 물질이나 육체란 영혼이 그 속에 들어 있는 무덤과 같이 비천하고 욕된 것이라고 보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기 비우심은 당시의 헬라 사상에 의하면 어리석고 미련한 것으로 보였다. 그러므로 바울은 십자가 도의 미련함을 말한 것이다. 바울은 아들 안에서 하나님의 철저한 비우심을 복음의 핵심이라고 본다. 예수가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다는 사실은 종교적 상징(象徵) 이상이다. 이것은 모든 인간에게 다가오는 고통과 죽음과 대결하시는 하나님 아들의 사랑의 행위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심은 제자들을 부르시는 윤리적 모델 이상(以上)이다. 이 십자가 죽음의 사건은 하나님이 죽음의 세력에 대결하여 이것을 철폐하신 것을 드러낸다. 그러므로 종교적 상징을 넘어선다. 그리고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 안에서 스스로 한 인간의 죽음을 받아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리적 모델을 넘어선다. 이 사건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인간 대속의 사건이다.

2) 비우심(kenosis)이란 신성 포기가 아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에 의하면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본체”(μορφή θεοu/)로서 사람과 같이 되시기 위하여 "자기를 비우시고(έαυτον έκένωσε)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셨다." 케노시스란 용어는 주후 3세기 이후로 빌립보서 2장 7절에 나타나 있는 사상을 서술하기 위하여 기독교 신학에서 사용되어 온 용어이다. 케노시스(kenosis)는 성육신의 이론 중 하나인 케노시스 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이 견해에 따르면, 신적 로고스, 혹은 삼위일체의 제2위는 그의 신성인 전능, 전지, 편재 등의 속성을 유보(留保)하고서(비워서), 모든 인간 존재의 한계를 스스로 취하고 성육신 하셨다. 케노시스 사상은 19세기에 와서, 특히 루터교와 영국 교회에서 유행하였다. '케노시스'라는 용어는 원래 교부들의 저서들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내려오신 사실을 표현하기 위하여 '성육신'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다(고후 8:9). 그러나 현대신학에 있어서 이 용어는 보다 광범위한 교의 -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자신의 신성의 전부나 일부를 포기하시고 지식의 한정을 포함한 인간의 삶의 모든 상황과 조건들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셨다는 교의 - 를 나타내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바울은 이 용어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인성을 취하신 그의 겸허를 드러내고자 했다. 따라서 자유주의자들이 해석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가 그의 신성, 즉 그와 하나님과의 특수한 관계를 완전히 상실하셨다는 것은 전혀 아니다. 케노시스는 그의 겸허와 비우심으로 이해되어야지 신성포기로 해석되어서는 않된다. “하나님과 동등함을 취하지 않으셨다”는 구절은 그의 신성을 포기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가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겸비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가 인간이 되심으로 무지, 연약, 시험, 고난, 죽음을 그의 인성으로 수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신성의 속성, 전능, 전지, 불멸, 불사, 생명은 그대로 소유하시고 계셨다는 것이다. 루이스 벌코프가 말하는 것처럼 예수의 “신성은 성육신에서 하등 근본적 변화를 겪지 않았”으며, “신성은 손상받지 않음, 곧 고난과 죽음에 처할 수 없고 무지에서 자유롭고 연약과 유혹에 흔들지 않았다.” 케노시스 이론은 가현설(Docetism)을 피하면서, 예수가 인간으로서 모든 고난(지식의 한계도 포함)을 다 당하였다는 것을 강조할 수 있다고 하는 장점이 있다. 공관복음서에 의하면 지상적 예수는 인성으로는 유대인이었고, 나사렛 출신으로 아람 방언을 쓰는 완전한 인간으로서 육신이 당면한 제한성을 지녔다. 그러나 예수의 신성은 하나님의 본성을 그대로 보유하셔서 성령의 능력으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메시아적 전권(Messianische Vollmacht)을 부여받으셔서 초자연적 표적과 이적(異蹟)을 행하셨다. 사복음서는 지상적 예수가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과 지식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과 자신과의 완전한 동등성을 지니시고 영원한 교제를 하시는 역사적 인물이라고 서술하고 있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 샬롬나비 대표, 숭실대 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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