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이 성령 이해 특별히 오순절주의에서 이해하는 성령은 주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시는 분이시다. 인간의 한계를 벗어나는 초월적이고 초자연적인 능력을 베푸시는 영으로 이해되었다. 성령은 우리 삶 속에서 열매를 맺게 하실 뿐 아니라, 각가지의 자연적 초자연적 은사를 주셔서 성도들이 능력 있게 사역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시는 분이시다. 이러한 성령 이해에서는 성도들이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에 깊은 관심을 갖는 경향을 보인다.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전도도 할 수 있고, 말씀도 전할 수 있고, 마귀의 궤계도 무너뜨릴 수 있고,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무언가를 행하는 것은 그 다음 단계의 일이다. 먼저는 성령의 능력을 받아야 한다. 성령의 능력을 받으면 하루에 3천 명씩 회개하고 앉은뱅이가 일어나는 기적이 일어나며, 산헤드린 앞에서도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전통적인 성령이해에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의 능력을 받는데 깊은 관심을 둔다.
그러나 새로운 이해인 에큐메니칼 성령 이해는 다른 관점에서 이해된다. 전통적인 성령이해에서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에 관심을 가진다면 에큐메니칼 성령이해는 성령을 따라 헌신하는 것이 강조된다. 전통적인 성령 이해가 수용적이고 피동적이라면 에큐메니칼 성령 이해는 적극적이고 참여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에큐메니칼에서 이해하는 성령은 성도들을 사로잡아서 구체적인 삶의 투쟁으로 이끌어가시는 영이시다. 캔베라가 말하듯이 “성령의 해방의 목소리는 우리에게 사랑과 정의로 모든 형제 자매를 포용하라고 요구하신다.” 에큐메니칼이 말하는 복음은 개인과 사회 차원에서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을 가져오는 것이므로, 에큐메니칼의 성령 역시 인종차별, 사회적 부정의, 경제 정치적 억압, 비극적인 전쟁, 과학기술 문명으로 인한 비인간화 등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행동으로(in action) 나타내도록 촉구하는 영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에큐메니칼에서 추구하는 샬롬은 앉아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성도들이 삶 속에서 말씀을 잘 순종하는 것만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캔베라가 지적한대로 이미 “탐욕적인 물질주의는 우리 시대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렸다. 피조계에 대한 무책임한 착취가 계속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을 비인간화하는 모든 구조적 악을 향하여 담대히 일어나서 적극적인 반대를 하고, 구체적인 사회적 압력을 가하고, 결사적으로 투쟁하는 헌신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캔베라는 “... 우리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야 하며, 새로운 형태의 선교로서 복음의 표준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경제, 사회, 정치적 구조들에 도전해야 한다” 고 강조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성령은 사회 변혁을 위하여 성도들을 부르시어 행동과 참여로 이끄시는 영이시며, 이런 점에서 캔베라는 말하기를, “교회는 하나님의 전체 백성(laos)으로서, 성령에 의해 능력을 받는다. 교회의 평신도들- 그들이 여성이건 남성이건, 혹은 청년이건 노인이건 관계없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 그들은 성령의 대사(ambassadors)이며, 그들의 증거와 봉사를 통해 사회를 변화시킨다” 라고 하였다.
※ 좀 더 자세한 내용과 각주 등은 아래의 책에 나와 있다.
안승오 교수(영남신대)
성결대학교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M.Div)에서 수학한 후, 미국 풀러신학대학원에서 선교학으로 신학석사(Th.M) 학위와 철학박사(Ph.D) 학위를 받았다. 총회 파송으로 필리핀에서 선교 사역을 했으며, 풀러신학대학원 객원교수, Journal of Asian Mission 편집위원, 한국로잔 연구교수회장, 영남신학대학교 대학원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선교와 신학』 및 『복음과 선교』 편집위원, 지구촌선교연구원 원장, 영남신학대학교 선교신학 교수 등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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