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건강보험공단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제기한 약 533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이 마침내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22일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리는 이번 12차 변론은 항소심의 마지막 절차로, 법원이 곧 선고기일을 지정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소송은 국내 최초로 공공기관이 담배회사들을 상대로 흡연의 사회적 책임을 물은 사례로 주목을 받아왔다.
건보공단은 2014년 KT&G, 한국필립모리스, BAT코리아 등 국내 주요 담배 제조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흡연이 초래한 건강 피해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묻고, 건강보험 재정의 누수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공단이 주장한 손해배상 청구액은 약 533억 원으로, 이는 흡연력 20갑년 이상, 흡연 기간 30년 이상이며 폐암 또는 후두암 진단을 받은 환자 3,465명에게 지급된 건강보험 급여비에 해당한다.
그러나 1심 재판부는 2020년 건보공단의 청구를 기각했다. 법원은 당시 “폐암 등 질병이 흡연 외에도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할 수 있으며, 공단이 지출한 보험급여에 대해서는 구상권을 행사할 수 있을 뿐, 민사상 손해배상청구권이 성립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에 공단은 항소를 제기해 2심으로 이어졌다.
항소심에서 건보공단은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적 근거를 제시했다. 특히 최근에는 연세대학교 보건대학원과 함께 진행한 대규모 역학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2004년부터 2013년까지의 기간 동안 폐암 및 후두암 확진자 13만6,965명을 분석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유전적 위험도가 같은 경우에도 30년 이상, 20갑년 이상 흡연자는 비흡연자보다 소세포폐암 발생 위험이 무려 54.59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담배회사가 주장해온 ‘폐암은 유전적 요인이 주요한 원인’이라는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하는 자료로 평가된다. 공단 측은 이와 같은 과학적 데이터를 통해 흡연이 폐암 발병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재판부에 설득하고 있다.
공단의 정기석 이사장은 직접 최종 변론에 참석해 흡연과 폐암 간의 인과관계를 강조할 예정이다. 그는 지난 11차 변론에서도 "담배가 폐암 등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것은 과학적·의학적으로 명확히 입증돼 있다"며, "설령 단독 원인이 아니라 하더라도 질병 악화에 기여하는 인자로서 담배회사가 최소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정 이사장은 호흡기내과 교수 출신으로, 전문성을 바탕으로 흡연 폐해의 책임 소재를 설득력 있게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최종변론에 앞서 공단은 여론전도 병행하고 있다. 한국금연운동협의회와 한국 YMCA 연합회 등 시민단체는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담배 소송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할 예정이다. 건보공단은 ‘범국민 지지 서명운동’ 등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한 활동도 지속적으로 전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