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총연합회가 올 가을 서울에서 개최될 예정인 WEA 총회의 취소를 요청하기로 했다. 한국교회 안에서 WEA 서울총회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산하고 있는데도 WEA 서울총회 조직위원회가 강행하는 것이 향후 한국교회 전체에 커다란 선교적 부담을 안길 것이란 판단에서다.
한기총은 그동안 WEA 서울총회가 회원단체나 교단이 아닌 특정 대형교회가 중심이 되는 등 매우 비정상적인 절차로 진행되고 있는 데 대해 수차례 문제를 제기해 왔다. 총회를 유치하는 과정도, 공식적인 의결기구를 통하지 않고 WEA 내 몇몇 고위인사들이 국내 특정 대형교회와 접촉했다가 성사가 안 되자 다른 교회와 다시 비밀리에 접촉하는 등 세계 복음주의 교회를 대표하는 기구라는 명성에 큰 오점을 남겼다.
그런데 한국교회 복음주의 진영이 우려하는 건 이런 절차상의 문제 정도가 아닐 것이다. 한국교회 초대형교회를 찾아가 총회 유치를 구걸한 WEA 내 고위인사들이 국내 초대형교회와 손잡고 총회를 개최해 얻고자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무엇이건 간에 최근 이들이 보여준 행보가 과연 WEA가 복음주의 기구가 맞는지 심각한 의구심이 들게 했기 때문이다. WEA가 세계적인 복음주의 기구라면 어떻게 종교다원·혼합주의와 결합한 인사들이 WEA의 요직에 있는지 총회 전에 반드시 명확한 답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WEA 국제이사회 의장이자 공석인 사무총장직까지 겸임하고 있는 굿윌 샤나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신사도운동’(NAR) 사역자로 활동해 온 인물이다. 한국교회 주요 교단이 이단으로 규정한 ‘신사도운동’ 사역자를 사랑의교회가 서울총회를 앞두고 새벽기도회 강사로 강단 위에 세우고 있는 것에 대해 교단이 어떻게 볼지가 궁금하다.
서울총회의 실질적인 준비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부사무총장 사무엘 치앙은 전 교황 프란치스코에게 절하는 사진이 보도돼 구설에 오른 인물이다. 지난해 2월 아부다비에서 무슬림장로협의회 사무총장과 종교간 협력 강화 공유를 약속하는 등 종교다원·혼합주의 성향이 짙은 WEA내 대표적인 인사로 분류된다.
이런 숱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서울총회 조직위는 내 갈 길을 가겠다는 태도다. 한국교회가 반대하든 비판하든 내 알 바 아니라는 자세가 지금의 갈등을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기총이 WEA 서울총회 조직위 측에 찬반 토론회 개최를 제안한 것도 그런 배경에서다. 비판 여론이 비등한 현실에서 WEA에 찬성하는 신학자와 반대하는 신학자가 한 테이블에 마주 앉아 토론을 통해 서로의 견해에 대한 절충점을 모색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조직위 측이 이런 제안을 거절하면서 WEA 서울총회를 둘러싸고 한국교회 안에 일고 갈등의 합의점을 찾는 노력조차 끝내 무산되고 말았다.
당초 서울총회 조직위는 출범식에서 기탄없이 찬반 의견을 수용하겠다는 열린 자세를 보여줬다. 그랬던 조직위가 방어적인 태도로 바뀌게 된 건 아무래도 교계 내에 확산하는 부정적인 기류 때문일 것으로 분석된다. 그중 가장 신경 쓰이는 게 한국교회 보수 교단의 수장 격인 예장 합동 측에서 터져 나오는 반대 목소리일 것이다. 합동측 봄 정기노회를 결산한 결과 ‘WEA 서울총회’에 반대하는 헌의안이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WEA 서울총회에 반대하는 내용의 헌의안을 낸 노회는 전북제일·함평·광서·광주제일·전라·남광주·함북 노회 등 총 7개 노회다. 이중 함북노회는 WEA에 총회 목회자들이 참석·지지·후원하는 것을 금지하는 등 구체적인 실천사항까지 결의했다. 만일 이 헌의안이 9월 총회에서 통과되면 WEA 총회 개최장소로 확정된 사랑의교회와 공동조직위원장인 오정현 목사 등 교단 소속 인사들에 직격탄이 될 수 있다.
합동 측은 지난 제106회 총회에서 WEA 교류금지와 관련한 헌의 안건을 다뤘으나 WEA에 대한 명확한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결의를 유보하는 결정을 했다. 당시에도 WEA 내 복음주의에서 이탈한 일부 인사들의 행보가 문제가 됐으나 명확한 검증이 필요하다는 신중론에 따라 구체적인 결의가 뒤로 미뤄진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이 시간이 지나도 해소되기는커녕 종교다원·혼합주의에 깊이 연관된 인사들에 의해 서울총회가 주도된 사실이 드러나고 교단을 대표하는 교회와 목회자가 이들과 손을 잡고 총회를 개최하는 현실을 교단 차원에서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게 됐다는 게 교계의 정서다. 총회 산하 7개 노회가 서울총회 반대 헌의안을 상정하는 등 교단 내 여론이 우려에서 반대로 굳어진 점도 이 문제를 더는 뒤로 미룰 수 없는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기총은 서울총회 조직위 측이 대화를 거절함에 따라 최후 수단으로 WEA 본부에 총회 취소 요청을 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래도 강행한다면 적극적인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이 모든 문제점을 백서로 남기겠다고 한다.
하지만 한기총이 반대한다고 WEA 서울총회가 무산되거나 변경될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아 보인다. 다만 9월 합동 총회가 강력한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합동 교단의 대표적인 대형교회가 총회가 거는 브레이크를 무시하고 직진한다면 이는 곧 교단을 완전히 교단을 등지겠다는 의사 표현이 될 수도 있다.
WEA 서울총회를 둘러싼 한국교회 안의 갈등을 단순히 남이 잘되는 것을 시샘해서 하는 훼방정도로 취급한다면 큰 오산이다. 자유주의 신학에 물든 신(新)복음주의자들의 분탕질에 한국교회가 놀아나 보수 신학마저 오염되는 길을 차단하겠다는 사명감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서울총회를 반드시 개최하고야 말겠다는 의지가 아무리 단호한들 한국교회가 앞으로 10년, 100년 지켜나가야 할 순수한 ‘복음’ 가치의 무게보다 더 중할 순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