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鄕愁)’의 시인 정지용의 신앙시 ‘갈릴리(갈릴레아)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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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의 기독교 시인을 만나다(30)

갈릴리(갈릴레아) 바다

나의 가슴은
조그만 '갈릴레아 바다'.

​때없이 설레는 파도(波濤)는
미(美)한 풍경(風景)을 이룰 수 없도다.

예전에 문제(門弟)들은
잠자시는 主를 다만 깨웠도다.
主를 다만 깨움으로
그들의 신덕(信德)은 복(福)되도다.

​돛폭은 다시 펴고
키는 방향(方向)을 찾았도다.

​오늘도 나의 조그만 「갈릴레아」에서
主는 짐짓 잠자신 줄을….

​바람과 바다가 잠잠한 후에야
나의 탄식(嘆息)은 깨달았도다.

​※괄호는 원문이다.

베드로 등 갈릴리 어부들이 많았던 예수 제자들처럼 지금도 여전히 고기 잡이 배들이 있는 베드로사명교회 예배당 앞 갈릴리 바닷가.. 멀리 보이는 산들이 골란고원이다. ©조덕영 박사
정지용 시인 ©나무위키 캡쳐

한국인이 사랑하는 "향수"의 시인 정지용(鄭芝溶, 1902 ~ 1950?)은 충북 옥천生. 휘문고보를 거쳐 교토대와 도시샤대학 영문과를 나와 휘문고보 교원(1929-45), 광복 후 이화여전 문과 교수와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거쳤다.

​정지용 시인은 이미지의 시인이다. 문학박사 강우식 시인은 정지용 시인의 시에 나타난 산과 바다 이미지를 주목한다. 강 시인은 논어에 나오는 「仁者樂山 知者樂水(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를 인용하며 고요하고 정적인 산은 동양적 이미지요, 한시도 그 흐름이 멈추지 않는 동적인 물은 서양적인 이미지라 했다. 정지용 시인은 당시로서는 그리 흔하지 않은 영문학도였다. 그런 정지용은 동양과 서양의 이미지를 절묘하게 교차시키며 1930년대 전후의 한국시를 "언어의 예술"이라는 현대시의 새로운 국면을 이끈 절창의 시인이었다. 정지용 시전집에 실린 89편의 시 가운데 바다를 소재로 한 시는 13편이 있다. 그 중에서 「갈릴레아 바다」는 신앙시의 모습을 드러낸 특별한 시라 할 수 있다.

조덕영 박사

​정지용 시인은 원래 방지거라는 세례명을 가진 가톨릭 신자(1933년 <가톨릭 청년> 편집 고문)로 순수 시인이었으나, 조선문학가 동맹 측과도 가까이 지냈다. 6.25 당시 납북되면서 남북 모두에서 생사 여부가 불분명하여, 전쟁 와중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 따라서 해금 되기 이전, 그의 이름이나 작품이나 저서는 오랫동안 금기어였다. 지금은 시인이 된 젊은 시절 필자의 절친이 정 시인의 '유리창' 시를 발견하고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시적 애탄(哀嘆)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장면이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 난다.

​1970년 대 고향 친구와 청계천 중고서점에서 그의 시집을 발견하고는 너무나 반가워 친구가 구입을 원했으나 주인장께서 30만원을 불러 함께 단념하고 돌아서던 추억이 애틋하면서도 아련하고 여전히 새롭기만 하다.

조덕영(창조신학연구소, 신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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