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의대 정원 확대에 반발해 집단 휴학에 나섰던 의대생들이 올해 대거 복귀를 선택하면서, 의료계 내에서 유지되던 이른바 '단일대오'에 균열이 본격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복귀를 택한 학생들이 늘어나면서 내부에서는 현실적인 생존 전략과 집단적 투쟁 사이에서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
30일 교육계와 의료계에 따르면 연세대 의대의 경우 학생 절반 이상이 이미 등록을 마쳤고, 고려대도 40% 이상이 등록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제적 예정 통보를 받은 학생들이 속속 복학 의사를 밝히면서, 연세대는 전원 복귀가, 고려대는 80% 이상 복귀가 예상되고 있다.
서울대 의대도 기존의 '미등록 휴학' 기조에서 '등록 후 휴학'으로 입장을 바꿔 전원 등록을 마친 상태다. 서울대 의대가 전 학생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조사에서는 총 607명 중 65.7%가 "미등록 휴학을 지속하지 않겠다"고 응답해, 투쟁 지속 의사는 34.3%에 그쳤다.
이종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 이사장은 "서울대와 연세대, 고려대 모두 복귀를 결정하면서 다른 대학 의대생들에게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복귀 확산을 전망했다. 이들 주요 대학의 움직임은 상징성이 크기 때문에 다른 의대들도 복귀 쪽으로 흐름을 맞출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지난해 집단 휴학 당시의 결속력은 약화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고려대 의과대학 전 학생 대표 5인은 지난 25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각자의 결정을 존중받아야 하며, 타인의 시선에 위축되지 않고 자유롭게 판단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한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학생협회는 "서울대와 연세대 일부에서 동요가 있었지만, 나머지 38개 단위는 여전히 미등록 휴학을 유지하고 있다"며 투쟁 기조를 고수하고 있다. 복귀와 투쟁 사이에서 입장이 갈리는 만큼 의대 내부 갈등은 한층 격화되는 양상이다.
학생들의 복귀는 단순한 학업 재개를 넘어, 생존을 위한 현실적 선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의사 면허가 없는 의대생 입장에서 제적이 확정되면 향후 의업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복귀 결정을 이끈 배경으로 지목된다. 특히 전공의나 대한의사협회가 구체적인 대책을 내놓지 못하면서, 학생들이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하고 있다는 평가도 뒤따른다.
의료계 내부의 분열도 점차 명확해지고 있다. 이동욱 경기도의사회장은 지난 24일 SNS에 "의협이 의대생 문제에 선을 긋는 모습"이라며 "의대생을 도울 계획이 없다면, 그들에게 돌아가라고 말하는 것이 어른의 도리"라고 지적했다. 반면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장은 28일 페이스북을 통해 "등록 후 수업 거부는 선택지가 아니다"라며 "지금은 물러날 때가 아니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비록 학생들이 등록을 마쳤더라도, 실제 수업에 참여하지 않거나 수업 거부 등의 방식으로 투쟁을 이어갈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에 따라 의료 교육의 정상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이며, 정부에 대한 의료계의 불신 또한 여전히 해소되지 않은 상태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 교수는 "단일대오는 이미 무너졌고, 의대생 다수가 복귀할 가능성이 높다"며 "정부가 발표한 의대 정원 3058명 확보도 휴학자들의 복귀를 전제로 한 것이며, 이들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정책의 신뢰도에도 타격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송기민 경실련 보건의료위원장도 "정부는 단순히 '돌아오라'는 메시지에 그칠 게 아니라, 복귀하지 않는 경우에 대한 구체적인 대응책을 마련해야 한다"며 "의료 공백을 국민에게 전가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의대생들의 복귀는 갈등을 완전히 해소하지는 못했지만, 의료계 내부의 분열이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준다. 정부가 의료개혁을 지속 가능하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후속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