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죽이고 더 나은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는 삶

[신간] 죽을만큼 거룩하라
도서 「죽을만큼 거룩하라」

영화에는 의로워지고 성화된 사람들의 신체적인 죽음과 육신적인 부활이 포함된다. 언젠가 그리스도인은 영화된 몸을 덧입게 된다. 마치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셨을 때 그분이 영화된 인간의 몸을 받으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면 그리스도인은 영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그리스도인은 죽어서 하늘나라로 가기 전에 개인적으로 이생에서 칭의와 성화를 깨닫고 경험해야 한다. 이것을 적절히 표현하자면, 한 개인의 구원은 칭의, 성화, 영화를 포함하는 모든 과정을 포괄한다고 할 수 있다.

저자 찰스 피니는 이 책에서 의롭게 된 후에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 안에서 살아가는 것이 의미하는 바에 관해 매우 중요한 믿음을 다루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어떤 사람들은 온전한 성화의 상태를 균일하고 보편적인 평온한 마음이라고 말한다. 마치 모든 종류의 흥분된 감정은 이와 같은 상태와는 전혀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단지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감정이 고조되었을 때를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종종 하나님의 원수를 책망하실 때 엄청날 정도로 흥분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의 이력을 그대로 따라가 본다면 그분의 평온과 흥분 상태는 각 경우의 환경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달라졌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귀신 들린 자를 질책하실 때처럼 그리스도께서 때때로 상당히 매섭고 혹독하게 책망하기도 하셨지만 그분은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과 거기에 합당한 자들에게는 따뜻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셨다. 그렇기에 온전한 성화는 죄나 죄인들을 향하여 아무런 거룩한 분노 없이 지속해서 마음의 평정 상태를 유지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죄에 대한 거룩한 분노는 단지 사랑의 또 다른 모습일 뿐이다. 그렇기에 거룩함, 또는 온전한 성화의 상태는 항상 주변 환경이 그것을 요구할 때 얼마든지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사람 중에 습관적으로 담배를 피우던 어떤 그리스도인 흡연자는 이 습관을 깨부수기 위하여 온갖 노력을 다 기울였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그러자 이 사람은 더는 담배를 끊겠다는 결심을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람이 담뱃대에 불을 붙이고 이제 막 입으로 갖다 대려던 순간에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몹쓸 탐닉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그래서 잠시 멈칫했지만 그런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이런 몹쓸 탐닉에서 나를 자유롭게 하려고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시지 않았던가?’ 이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담배 피우는 습관 사이의 관계를 깨닫게 되자 그 즉시 담배 피우던 습관의 힘은 깨어지고 말았고, 그때부터 거기에서 자유롭게 되었다. …이처럼 가장 깊숙이 뿌리 박혀 있던 죄의 습관들, 그리고 우리 몸의 기능을 심각하게 저하시켜 신체에 악영향을 끼쳤던 습관들, 우리 마음을 압도하는 유혹의 근원으로 작용했던 습관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철저히 깨어지고 근절되었다면, 그와 같은 은혜로 모든 죄에 대하여 영원히 승리할 수 있다는 사실을 왜 의심한단 말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충분히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극복할 수 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첫째, 인간의 양심은 현재 자신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최고의 증거이다. 나는 자신의 상태를 마음으로 인식하는 것이 바로 양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하여 우리 마음을 보여주는 최고의 가능한 증거가 바로 양심이라고 이해한다. 물론 양심은 단지 현재 우리의 성화에 대해서만 증거할 수 있지만 우리 앞에 있는 기준으로서 하나님의 법과 더불어 최고의 기준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 기준에 순응하는지 아닌지와 관련하여 양심의 증언은 우리의 상태를 알려주는 최고의 증거가 된다. 양심은 우리의 존재를 의심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더는 의심할 수 없는 증언이다. 우리는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나는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숨 쉬고, 사랑하거나 싫어하고, 앉거나 서고, 눕거나 일어나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한 기쁘거나 슬프다는 것을, 다시 말해 어떤 마음의 감정이나 반감이나 애정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내가 죄를 짓거나 회개하거나 믿는다는 것을 도대체 어떻게 알 수 있단 말인가? 우리는 자신의 양심을 통해서 알 수 있다. 다른 어떤 증언도 이보다 직접적인 설득력을 보여줄 수는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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