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최고의 시인 예수님”을 닮은 시인 황금찬의 ‘어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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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덕영 박사의 기독교 시인을 만나다(20)

어머님

​내가 혹 밤늦게 돌아 올때나
우리 형제 중에 누가 앓거나 할 때면
어머님은 언제나 기도를 드리셨다.

​『하느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의 자식들을
어미닭이 병아리를 품듯
당신의 품으로
보호하여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들이 장차
당신과 당신의 나라를 위하여
일 하는 일군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어머님은
기도를 끝 맞추시고
얼마 후에야 「아멘」을
음성에 힘을 주어 하신다.

어머님이 세상을 떠나시고 난 다음
나는 고아가 된 느낌으로
며칠을 두고 울었다.
지금은 내가
내 무릎 밑에서 자라는
아이들을 위하여
기도를 드린다.
그런데
옛날 어머니의 음성처럼
내 기도엔 힘이 없다.

​그립다.
어머님의 그 힘있던 음성으로
드리던 기도가
지금 내게 없는 것이------.

황금찬 시인

"인류 최고 시인 예수", 필자가 한 말이 아니다. 황금찬 선생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시인은 예수님"이라 했다. 성경 실명 인물 중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 다윗도 열정의 시인이었지 않은가. 예수님이 주로 사역하시던 갈릴리 호수 북쪽에 가면 관광객들은 모르는 현지인들이 잘 아는 갈릴리 호수로 떨어지고 있는 마르지 않는 작은 폭포 두 개를 찾을 수 있다. 욥이 욕창을 치료받았다는 전승이 남아 있는 생수 중 생수 폭포다. 필자는 마르지 않는 감성을 가졌던 황금찬 시인이야말로 "인류 최고 시인 예수"를 닮은 시인이라 부르고 싶다.

​황금찬(黃錦燦, 1918년 8월 10일 ~ 2017년 4월 8일) 시인은 강원도 속초 출생으로 〈문예〉지에 시 〈경주를 지나며〉(1953년)를, 《현대문학》에 〈접동새〉, 〈여운〉(1955년) 등이 추천되어 문단에 데뷔했다. 일본 도쿄 다이토(大同) 학원 대학을 중퇴하였으며 동성고 교사와 중앙신학대 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평생 총 40권에 달하는 시집을 펴냈으며, 생활 속 쉴새 없이 2,000여편의 시를 비롯하여 8,000여편의 작품을 남긴 다작(多作)의 문학계 원로였다.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분 아닌가. 예수님의 언어에는 창조성과 절대성이 담겨 있다. 황 시인은 "지금 우리들이 쓰고 있는 말에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다. 우리의 언어를 기독교 정신을 바탕으로 완전히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는 "최고의 시인을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데 우리가 왜 좋은 시를 못 쓰겠냐"며 "좋은 시를 쓰려면 신앙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어야 하고, 언어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야 한다. 이것을 알고 나서 '신앙 문학'으로 새롭게 출발하자"고 했었다.

조덕영 박사

자녀의 이름이나 어머니를 부름은 때로 얼마나 애틋하고 애절하던가. 황금찬 시인도 그랬다. 우리 나이로 100세 장수하였으나 이어령 박사처럼 따님을 먼저 천국으로 보낸 아픔을 안고 살았다. 황 시인의 따님은 1974년 이화여대 영문과 4학년 재학 중 백혈병 투병 끝 세상을 떠났다. 황 시인은 착하고 순결한 딸이라 하나님께서 세상에 두지 않고 먼저 데려가셨다 했다.

황 시인의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詩가 바로 그 작품이다. 당시 변장호 감독이 메거폰을 잡고 남궁원이 황 시인으로 분한 영화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는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울렸다.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너의 창에 불이 꺼지고
밤 하늘의 별빛만
네 눈빛처럼 박혀 있구나.

새벽녘
너의 창 앞을 지날라치면
언제나 애처롭게 들리던
너의 앓음소리
그 소리도 이젠 들리지 않는다.

그 어느 땐가
네가 건강한 날을
향유하였을 때
그 창 앞에서
마리아 칼라스가 부르는
나비부인 중의 어떤 개인 날이
조용히 들리기도 했었다.

네가 그 창 앞에서
마지막 숨을 걷어 갈 때
한 개의 유성이
긴 꼬리를 끌고
창 저 쪽으로 흘러갔다.

다 잠든 밤
내 홀로 네 창 앞에 서서
네 이름을 불러 본다.
애리야! 애리야! 애리야! 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려올 뿐
대답이 없구나.

네가 죽은 것이 아니다.
진정 너의 창이 잠들었구나.
네 창 앞에서 이런 생각을 해보나
모두 부질없구나.

예수의 詩심을 닮은 황금찬 시인은 원로 기독 문인이자 분명 한국 문단의 거목이었다.

조덕영 박사(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신학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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