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CE 국제 펠로우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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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채 총장
PACE 국제 펠로우십은 해외에서 한국에 유학 온 학생들과 교제할수 있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었다. 이 펠로십은 카핑 박사(Dr. Kaping)와 내가 함께 시작하였다.

서울의 신촌 쪽에서 선교를 지향하는 작은 교회에서 한 달 동안 멜빈의 PACE 세미나를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었다. (지금은 그 교회가 국내 대학들에 유학 온 전 세계학생들을 대상으로 선교하는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그때 그곳에서, 나는 인도의 나가랜드에서 온 카핑 박사를 소개받았다. 카핑은 인도의 푸네대학에서 학위를 받았는데 나가랜드 마니푸르에서 태어났다. 그는 많은 나라에서 공부도 했다. 내가 그 교회에서 PACE 12과를 공부시켰을 때 그는 이 사역을 매우 좋아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안산에 있는 많은 나갈랜드 유학생들의 모임에 함께 참석하게 되었다. 결국, 한국에 유학 와서 공부하는 외국인 학생들을 만나다 보니 좀 더 체계적인 접근이 필요하여 PIF (PACE International Fellowship)를 만들게 되었다. 사무실은 필요가 없어 카핑 박사가 다니던 교회(죽전OO교회)를 중심으로 매주 정기 모임을 갖고, 모임 순서지도 만드는 방식으로 시스템을 구축해갔다.

나는 그 모임을 통해 다른 아시아 학생들을 많이 만났다. 특히 미얀마에서 온 학생들이 많아서 미얀마로 가서 교회 세미나와 신학교 강의를 하게 되었다. 그것이 발단이 되어 태국, 루마니아, 일본, 파키스탄, 미국, 영국, 그리고 캐나다 등지로 해외 세미나를 다니게 되었었다. 그런 가운데 영어 자료를 활용할 수 있도록 더 정리하고 발전시킨 것은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 외국에서 온 유학생들을 위해 사역하다 보니, 또한 해외로 역수출 하려다 보니 영어 교재를 많이 개발하면 할수록 좋았다.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당시 만들어진 자료들은 여전히 영어권, 특히 나갈랜드의 신학교와 케냐의 멜빈대학교에서 잘 활용되고 있다.

PACE 국제 펠로우십에서 계속 사역하던 중 인도 나가랜드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알로토 목사를 만났다. 안산에서 많은 나갈랜드 학생들을 만나고 있었는데, 나갈랜드에서 온 새로운 유학생이 있으므로 카핑 박사가 가서 만나자고 했다. 그 집에서 나가랜드에서 온 학생인 알로토와 그의 아내와 딸을 만났다. 그래서 알로토가 우리 사역에 들어와 같이 활동하기 시작했다. 알로토는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았지만, 한국에서 살아가야 했기 때문에, 결국 논현동의 한 교회에서 영어예배 전담자로 부임했고, 영어예배를 마친 뒤 다른 몇몇 성도들과 함께 [영어 PACE 12과]를 공부하는 시간을 계속 가졌다.

그런 인연이 이어지면서 알로토는 2년 뒤 학위를 마치고 고국, 나가랜드로 돌아가서 드디어 PACE 신학교를 준비했고 2015년 7월에 개교했다. 이렇게 해서 나가랜드에 신학교가 설립되었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했기에 나는 자연스럽게 그에게 학교를 세우자고 제안했다. 이 문제에 대해 카핑 박사와 몇 주 동안 논의한 후, 우리 세 사람은 이 PACE 사역이 그들의 나라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교를 설립하는 데 동의했다.

하지만 문제는 알로토가 학교를 지을 땅을 가지고 있지 않아서, 우리는 학교를 위해 건물을 임대하기로 했다. 비어 있는 2층 건물이 있었지만, 한 달에 350달러가 들었다. 그래서 한국에서 1년 동안 보냈다.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시작하여, 첫 신입생은 3명으로 여학생 2명, 남학생 1명이었다. 그때 나는 현지에 가서 개교식을 하고 바로 3개월 동안 3명의 학생을 가르쳤는데, 2015년 7~10월이었다, 벌써 몇 년 전이었다. 하여튼 1년 뒤 지금의 땅을 6만 달러에 구입했고, 이제 학교는 그런 부담 없이 잘 진행되고 있다, 그때 우리는 한 달에 수백 달러를 버리는 것이 아깝다는 결론을 내렸기 때문에 서둘러서 땅을 샀다. 어쨌든 카핑 박사를 만나 한국에서 외국인 유학생을 위해 PACE 국제 펠로우십을 시작했고, 알로토를 만나 나가랜드에 PACE 신학교가 영구적으로 존재하게 된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한다.

#서병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