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이브더칠드런, 탈레반 장악 1년 아프간 아동의 삶 보고서 발표

탈레반이 여학생의 중등 교육을 금지한 이후로 아프간 소녀 주할(가명, 16세)은 집에서 바느질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세이브더칠드런 제공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한 지 1년이 지났다. 지난해 7월 2일 미군이 아프간을 철수하면서 탈레반은 아프간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해 8월 15일 20년 만에 정권을 탈환했다. 이후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국제 원조가 철회되고 외환 보유고가 동결되었으며 은행 시스템이 붕괴됐다. 경제 위기가 이어지는 가운데 3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이 닥치자 수많은 아프간 가정이 빈곤 상태에 놓였다. 경제 위기와 심각한 가뭄, 탈레반의 차별적인 규제로 인해 아프간 아동의 삶은 더욱 어려워졌다.

국제아동권리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10일(수) 아프간의 1년을 담은 보고서 〈한계점: 탈레반 장악 1년 후 아동의 삶(Breaking point: Life for children one year since the Taliban takeover)〉을 발표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지난 5월에서 6월까지 발크, 파리아브, 사르이풀, 자우잔, 낭가하르, 칸다하르 주에 거주하는 9세~17세 아동 1,690명과 부모 및 보호자 1,450명을 대상으로 탈레반 치하에서 변화한 삶에 대해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심층 면담 및 아동 대상 보건, 교육, 보호 서비스에 대한 질적 연구와 양적 연구를 진행한 결과를 담아 보고서를 마련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아프간 가정의 97%가 자녀에게 충분한 음식을 제공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으나 아동의 80%가 지난 30일간 배고픈 상태로 잠들었다고 답했다. 여아의 경우, 남아에 비해 배고픈 상태에서 잠들 가능성이 2배 높았다. 여아 10명 중 9명이 지난 1년 동안 식사량이 줄었다고 응답했으며, 살이 빠지고 일상생활에 필요한 에너지가 부족한 것에 대해 걱정을 표했다. 아동의 심리 상태도 눈에 띈다. 여아 26%, 남아 16%가 우울증의 징후를 보였으며, 여아 27%, 남아 18%가 불안 증세를 보였다. 아이들은 포커스 그룹 인터뷰를 통해 걱정과 나쁜 꿈 때문에 밤에 숙면을 취하지 못했고, 친구나 친척들과 함께 공원이나 쇼핑을 가는 등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상적인 활동에서 배제됐다고 답했다.

식량 부족은 아동의 건강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고 더 나아가 아동의 미래를 위협한다. 음식과 기본 생필품이 부족해지는 등 경제적 어려움이 계속되면서 많은 지역 사회에서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거나 아동에게 결혼을 권유하고 있다. 특히 지난해 8월 탈레반은 정권 장악 후 여아의 중등 교육을 금지했으며, 아동 수천 명이 집 안에 머물게 됐다. 이는 지난 수년간 아프가니스탄 사회가 이뤄온 성 평등의 퇴보를 의미한다. 설문에 응답한 여아의 46%, 남아의 20%가 학교에 다니지 않는다고 답했으며, 주요 장벽으로 경제적 어려움, 여학생의 중등교육 출석 금지, 지역 사회의 태도 등을 꼽았다. 많은 여아들이 인터뷰를 통해 더 이상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사실에 실망과 분노를 표했고, 이전에 가졌던 권리와 자유가 없어진 탓에 자신의 미래가 절망적이라고 답했다. 지난 한 해 동안 가정 내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결혼을 권유 받은 아동 중 88%가 여아이다

아프가니스탄 북부에 거주하는 파리샤드(가명, 15세)는 책과 문구류는 물론이고 부모가 자녀의 끼니를 챙길 여유조차 없어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지난 1년 간 가정 형편이 급격히 악화돼 집세를 내지 못하자 집주인은 파리샤드의 형제자매 중 한 명을 사겠다고 제안했지만 부모가 거절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파리샤드 가족에게 4차례의 긴급 현금을 지원해 가족의 필요에 맞게 필수품을 살 수 있도록 도왔다. 파리샤드는 “아버지가 음식을 가져오지 못하는 날에는 동생들이 한밤중에 일어나 먹을 것을 찾으며 울곤 한다. 나도 잘 먹지 않고 내 몫을 아껴 뒀다가 동생들에게 나눠준다. 동생들이 밥 달라고 할 때마다 속상하고 눈물이 많이 난다”며 어려운 사정을 설명했다.

이어 “예전 집에서 이사할 때 너무나 속상했다. 왜 우리 가족은 또 떠나야만 하나, 왜 이런 어려움을 또 겪어야 하는가 싶었다. 화가 많이 났고 매우 힘든 시간이었다. 나는 학교에 가고 싶다. 다른 여자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걸 볼 때 나도 학교에 갔으면 싶다. 거의 매달 이사를 해야 해서 학교에 가기 어렵다. 학용품도 없고 책을 사려면 돈이 필요하다. 더는 참을 수 없지만 방법이 없다”며 좌절했다.

세이브더칠드런 아프가니스탄 사무소장 크리스 니아만디는 “탈레반이 정권을 잡은 지 1년이 된 아프가니스탄 아동의 삶은 참혹하다. 아이들은 밤마다 배고픈 상태로 잠자리에 든다. 지치고 병약해진 탓에 이전처럼 놀거나 공부할 힘이 없다. 학교에 가는 대신 벽돌 공장에서 일하고 쓰레기를 주우러 다니며, 집을 청소하면서 하루를 보낸다. 상황이 나빠지면서 여자 아이들은 더 큰 타격을 감내하고 있다.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더 많으며 남학생들이 학교에 갈 동안 집에서 머물게 된 탓에 고립에서 오는 정서적 고통을 겪고 있다. 이것은 인도주의적 위기인 동시에 아동권리의 재앙이다”고 전했다.

그는 “현 상황의 해결책은 세계 정치를 이끄는 리더들의 손에 달렸다. 즉각적인 인도적 지원 기금을 제공하고 은행 시스템을 되살려 소용돌이 치는 경제를 지원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수많은 아동의 생명이 희생될 것이며, 더 많은 아이가 노동, 결혼, 권리 침해에 어린 시절을 빼앗기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1976년부터 아프간 전역에서 아동과 가족의 생명을 살리기 위한 인도적지원 사업을 추진해왔으며, 탈레반 집권 이후 1년 간 아동 145만 1,402명을 포함해 총 255만 2,763명을 지원했다. 카불, 낭가르하르, 칸다하르, 자우잔, 파르야브, 사르이풀 등 9개 지역에서 보건 영양, 교육, 아동 보호, 생계 지원 서비스를 직접 진행했으며, 그 외 쿤두즈, 타하르, 바다흐샨 등 6개 지역에서 현지파트너와 협력했다. 지난해 9월에는 재난 대응 단계 중 가장 높은 카테고리1(CAT1)을 선포하고 200만 달러(한화 약 290억 원) 규모를 목표로 모금 캠페인을 펼쳤다.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는 이 중 50만 달러(한화 약 5억 8천만 원)를 지원했으며, 국내 아프간 난민 입국 및 2022년 1월 거주지 중심의 가정별 지역사회 내 초기 정착의 과정에 아동중심 서비스를 제공했다. 초기 외국인 신분으로 아동 21명의 고액 의료비를 지원했으며, 경기, 인천, 대전, 울산 등지의 71가정 아동 242명을 대상으로 초기 정착을 위해 연령대 별 아동이 필요로 하는 물품에 대한 조사를 마쳤다. 하반기에는 조사에 기반한 물품을 지원하며 더불어 난민 가정 내 보호자의 한국 양육지원체계에 대한 이해를 위한 온라인 설명회와 긍정적으로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부모 교육을 제공할 예정이다.

아울러 아프간의 위기 사태에 대응해 보건 교육, 아동보호, 식량안보 및 생계지원, 주거지, 식수 위생 등 생명을 살리기 위한 긴급구호 활동을 계속해 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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