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세상과 따지기보다 세상의 목마름에 조금만 귀 기울였다면”

다니엘 김 선교사, ‘22차 청소년 지저스 아미’ 첫날 설교
다니엘 김 선교사(JGM)가 ‘22차 청소년 지저스 아미(JESUS ARMY)’ ‘영성집회 1’에서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에스더기도운동’ 영상 캡처

에스더기도운동이 주최하는 ‘22차 청소년 지저스 아미(JESUS ARMY)’가 5~7일까지 3일간 진행된 가운데, 첫날인 지난 5일 다니엘 김 선교사(JGM)가 영성집회 1, 2의 메시지를 전했다.

다니엘 김 선교사는 영성집회 1에서 시편 139편 1-24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전하며 “새해를 맞이하고자 하는 시점에 신앙의 기본으로 돌아가기 원한다. 우리 신앙의 고백부터 회복되기 원한다. 본문을 통해 주님은 어떤 분이신지, 나의 본분은 무엇인지 알기 원한다”라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전지하심, 무소부재하심, 전능하심에 관해 설명하며 “우리의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은 우리의 생각을 아시고, 우리의 행위를 아신다. 우리의 말을 듣고 계시다. 우리 삶을 주의 손으로 꼭 움켜쥐고 계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전지하심이고, 우리 신앙의 출발점이다. 새해 첫 시간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어떤 상황과 경우에도 주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본문 7~8절에 우리 인생의 최고의 때나 최악의 때나 주님은 함께 계시다는 것이다.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에도 주님은 불변하시다. 수많은 선교사가 아무도 가보지 않은 영역을 담대하게 진입할 수 있는 것은 주님이 함께 가시기 때문이다. 주님의 교회가 어둡게만 보이는 내일을 용감하게 맞이할 수 있는 이유는 주님께서 내일도 함께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나와 함께 있는 자는 낮에 걷는 것과 같다고 하셨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현실이 갑자기 내 인생에 찾아와도 우리는 당황하지 않아도 된다. 주님은 여전히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13~15절에 하나님께서 기가 막히게 나를 만드셨다. 주님은 우리를 분명한 목적을 위해 지으시고, 그 목적대로 최적화된 모습으로 디자인하시고, 그 목적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우리 삶을 인도하신다. 우리 삶은 주님의 작정하심 안에 있다. 하나님의 책에 이미 기록된 삶이다. 지난 한 해 주님의 예정하심대로 온 세상이 움직였고, 주님의 허용하심 안에서 온 열방이 가동했다. 이것을 신뢰하는 것이 신앙이다. 세상이 막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성경엔 전염병조차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다. 하나님께서 정확한 범위 안에서 집행하시고 기일이 차면 거둬 가신다. 모든 것이 정한 때가 있다. 코로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그는 “우리 신앙은 우연을 믿는 게 아니라 섭리를 믿는 것이다. 모든 것을 아시고, 어디에도 계시며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 존재의 토대이다. 만사를 우연이 아닌 인도하심으로 이해하고, 운이 아닌 축복으로 인정하는 것이 신앙이다. 저는 ‘굿 럭’ 행운을 빈다는 단어를 매우 싫어하고 사용하지 않는다. 저는 운을 믿지 않는다. 섭리를 믿는다. 주님 안에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이고 인도하심이다. 그걸 믿기 때문에 제 안에 안식이 있다.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역사를 목격한 이들이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지금 경험해야 할 건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시고, 아시고 계신다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2022년에도 주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는다면 우리는 안식할 수 있다. 길이 막힘도 감사하게 되고, 내 길을 막는 이도 미워할 이유가 없어진다. 주님의 베푸심과 거두심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환경과 사람과 상황을 우리는 탓하지 않는다. 그 배후에 계신 하나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 하나님은 나를 잘 아시고 내 삶에 개입하시고 내 삶을 인도하시며 모든 것에 전능하신 분이다. 그 하나님을 믿는지 점검해보자”라고 했다.

다니엘 김 선교사는 “주님이 전지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전능하신 분이라면 우리는 어떤 자세로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지 세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 볼 수 있다. 첫 번째, 주의 생각을 인정해야 한다. 내 상각이 주님의 생각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 주님의 생각이 보배롭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주님은 나를 단면적, 즉흥적으로 대하시지 않는다. 언제나 신중하게 대하시고, 나의 삶에 모든 것을 여러 가지 각도로 깊이 생각하고 대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실로 대하신다. 나의 과거와 현재, 미래의 수많은 문제와 가능성과 한계를 다 고려해서 내린 결론이 우리 삶에 허락된 현실이라면 주님을 신뢰하겠다는 고백이 우리 삶에 정리되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두 번째 자세는 악한 것을 미워하는 것이다. 우리는 혼란스럽고 불안하고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하는 기준을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원칙이 아니라 유행과 트렌드가 세상을 이끌어가고, 절대적 기준이 아닌 쉽게 변화될 수 있는 여론이 사회 도덕의 기준을 대체해버렸기 때문이다. ‘좋아요’ 숫자가 많은 사람이 도덕의 기준이다. 잘못되고 왜곡된 법도 청원이 들어가고 서명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합법화된다. 맞고 틀리고의 절대적 기준이 희미해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우리는 다시금 하나님 앞에 돌아가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참된 안정감의 시작이다. 상대적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 기준으로 돌아가는 것, 선을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게 우리의 본분이다. 본문 19~22절에 악은 하나님의 모든 원수 된 것들, 주님께서 미워하는 것들이다. 주님이 사랑하는 것을 사랑하고, 주님이 미워하는 것을 미워하는 것이야말로 성경에서 말하는 충성심, 우리의 본분, 나의 정체성”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저지르는 큰 오류는 주님의 원수를 잘못 짚는다는 사실이다. 주님의 편이 누구인지 헛짚는다. 코로나 사태가 시작된 이후로 한국교회는 사회의 칭찬 대상이기보다 오히려 질타와 미움과 원망, 분노의 대상이 되었다. 필립 얀시 박사는 복음이 더는 좋은 소식이 아니라 불쾌한 소식, 나쁜 소식이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것이 오늘날 교회가 저지른 가장 큰 비극이다. 이 비극의 이유를 교회가 세상을 원수로 낙인찍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님은 죽기까지 세상을 사랑했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은 우리의 원수이기 전에 전도와 선교의 대상이란 사실을 결코 잊어선 안 된다. 교회는 교회를 반대하는 사람들조차도 사랑하도록 부르심 받은 공동체”라고 했다.

이어 “또 한 가지 이유는 교회가 세상의 목마름에 관심 갖기보다 비본질적인 것에 집중했기 때문이다. 교회는 세상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 위해 이 땅에 남겨주신 생수의 통로이다. 주님께선 세상을 사랑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원수를 사랑하시고 이 세상에 획기적인 기준을 설립하셨다. 그 배턴을 교회가 이어서 달려가야 한다. 예수님은 비본질적인 주제를 가지고 주님과 논하려는 우물가 여인과의 대화 내내 여인의 목마름에 관심을 기울이면서 대화의 방향을 전환하고자 하셨다. 교회가 전통, 장소, 환경을 두고 세상과 따지기보다 세상의 목마름에 조금만 귀 기울였다면 그렇게까지 미움받지 않았을 것이다. 여러 음성으로 들리겠지만 세상이 우리에게 외치는 내용은 딱 한 마디, ‘목말라요!’”라고 했다.

그는 “마지막 우리의 본분은 주님 앞에서 살아가는 것이다. 다윗은 한평생 주님 앞에서 살기로 몸부림쳤다. 새해 끊임없이 주님의 수술대 위에 우리를 올려놓기 원한다. 상황이 어떠하든지 주의 모든 생각을 인정하기 원한다. 내 안에 있는 죄와 피 흘리기까지 싸워 이기시기 바란다.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서 살아가기 바란다. 주님께 우리의 본심과 양심과 동기를 비롯한 모든 것을 올려드리고 주님의 형상으로 빚어달라고 간구하기 원한다. 이것이 우리가 드려야 하는 예배이고 주님이 원하시는 바이다. 이렇게 이 한 해를 주님께 드린다면 주님께선 우리에게 견고한 정체성을 허락해주실 것이고, 세상이 아무리 요동치고 어려워도 우리는 결코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니엘 김 선교사가 ‘22차 청소년 지저스 아미(JESUS ARMY)’ 영성집회 2 시간에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에스더기도운동’ 영상 캡처

영성 집회 두 번 째 시간엔 디도서 3장 1~11절을 본문으로 메시지를 전하며 “선한 것을 사모하고 기도하기 원한다. 아름다운 교회 흠모할 모습을 갖춘 성도로 새 시대를 함께 열어가기 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선한 것을 하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가. 본문 3~6절에서 사도는 성도로 부르심을 입기 전에 우리의 정체성을 어리석은 자라고 고백한다. 성경에 ‘어리석다’는 표현은 하나님께 대항한다는 개념, 하나님께 불순종한다는 의미이다. 자기중심주의의 늪에 빠져 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새 생명을 얻게 되었다. 삶의 구조, 가치 기준, 인생관과 세계관에 변화가 있었다는 뜻이다. 거듭남은 질서의 변화로 확증된다. 주님은 우리에게 영생을 주기 위해 고난을 당해주셨다. 우리는 그분의 공로로 구원받았으니 자기 자신을 위해 살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것이 우리가 선한 것을 행하게 하는 원인”이라고 했다.

그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교회와 성도들로 하여금 움츠리게 했다. 지역사회와 이웃의 필요를 살피기보다 우리의 필요에 더 민감하고, 열방을 바라보기보다 눈앞에 현실만 가지고 씨름하지 않았나 생각해본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볼 것을 확신하기에 내 이웃을 돌보고, 주님을 섬기고 헌신하는 선한 일에 나서기 바란다”고 했다.

이어 “선한 것을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7~8절에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새 생명을 주셨다는 뜻이다. 이 은혜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 은혜를 힘입은 자는 은혜를 베푸신 분을 사랑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진정 경험했다면 변화가 불가피하다. 이 변화는 어떠한 은사와 사역이기 전에 영생의 소망이란 사실을 절대 잊어선 안 된다. 영생을 소망한다면 하나님나라의 상속자에 합당한 모습을 소유하기 위해 발버둥 치게 되어 있다. 조심하여 선한 일에 힘쓰는 삶을 사도는 아름다우며 유익하다고 결론짓는다. 즉 덕이 된다는 뜻이다. 이렇게만 되면 교회는 세상의 칭찬 거리가 되고, 복음의 통로가 열리게 된다. 이것이 선한 일을 하여야 하는 이유”라고 했다.

이어 “마지막 선한 것에 대한 구체적인 권면이 나온다. 세분화해서 보면 첫 번째 질서에 굴복하라고 한다. 두 번째는 모든 선한 일을 하라고 한다. 교회와 성도의 역할은 모든 선한 일을 하는 것이다. 모든 선한 일로 연결되지 않는 예배는 가짜 예배다. 예배란 예배의 대상이신 하나님과 연합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마음을 공유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물을 공유하고 관심을 공유하고 마음의 통증을 공유하는 것이다. 예배당 밖에 있는 잃어버린 영혼들이 나에게 아픔이 되어야 한다. 교회는 포스트코로나 시대 어떻게 성도들을 다시 교회 안으로 모을까 고민하기보다 코로나가 쓸고 간 세상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 그러한 교회만 이 사회에서 설 자리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세 번째는 충돌하지 말라는 권면이다. 주님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을 악으로 이기라고 응원하고 계시다. 이 시대가 점점 악해져 가고 있다. 이제는 용서하는 것 외에 없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행위를 소유하므로 악을 선으로 이기는 이 시대 성도가 되기를 축원한다. 네 번째, 헛된 것을 피하라이다. 유대인들이 특별히 즐겨하는 논쟁거리가 있었다. 변론과 족보, 율법에 관한 다툼이었다. 우리 안에도 주제는 다르지만 본질적으로 같은 다툼이 있다. 사도는 한 마디로 무익한 것이라 정의해준다. 경건해지는 것과 아무 상관없는 논쟁거리들이란 뜻”이라고 했다.

이어 “제가 지난번 지저스 아미에서 설교한 영상을 봤는데, 대화창에 기가 막힌 내용이 있었다. 다니엘 목사 좌파가 아니냐는 내용이었다. 분명히 말씀드리겠다. 그게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과 무슨 상관있는가. 그런 말 하는 사람은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더 경건하게 살아가는 것과 무슨 도움이 되는 것인가. 좌파건 우파건 그게 무슨 도움이 되냐는 것이다. 신앙을 잘못 배워도 굉장히 잘못 배운 것이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목사가 좌파 우파가 뭐가 중요한가, 정치적 성향은 강단에서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저는 복음파”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말하고 가르치고 선생인 척 하는 것을 좋아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지금은 잠시 입을 다물고 무익하고 헛된 것을 가지고 논쟁하지 않는가 점검해보길 원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시대이다. 블로그, SNS, 유튜브, 영상, 댓글까지 너무 많은 말들을 한다. 경건생활에 실제 도움이 되지 않는 글들이 많다. 권면 드린다. 이 시대 성숙한 성도의 자리로 돌아가기 원한다면 오히려 말을 줄이기 원한다. 따지고 논쟁하는 걸로 시간을 보낸다면 주님이 오히려 책망하신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은 분열을 봉쇄하라는 것이다. 10-11절에 사용되는 이단이란 단어는 헬라어 ‘하이레티코스’이다. 분열, 분리, 붕괴를 가리키는 표현이다. 교회 안에서 당을 짓고, 뒤에서 수근수근하고, 정치하고 분열을 일으키는 사람들을 한 두 번 훈계한 뒤에 멀리하라고 한다. 그리스도의 몸을 찢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교회는 전도하는 기관이 아니라 교회가 전도이다. 성도의 기본 자세가 회복되고, 사회에서도 부끄럽지 않은 일반 상식을 성도들이 회복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선한 일에 열심을 내기 시작하면 교회는 자연히 부흥하게 되어 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진리의 공동체가 되고 세상의 빛이 되고 생명의 통로가 되게 되어 있다”고 했다.

아울러 “복음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우리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었다. 성도들, 교회 안에 있었다. 우리를 진짜 핍박하고 있는 것은 세상이 아니다. 우리의 정체성만 바뀌면 빛을 발하게 되어 있다. 주님께서 일어나 빛을 발하라고 하신다. 어떠한 정치 제도가 교회를 핍박하고, 타종교가 복음의 확장을 방해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우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리고,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인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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