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복음을 살아내는 영성(3)

오피니언·칼럼
설교
갈라디아서 2장 11-16절
최철준 목사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외식을 버려야 할 뿐만 아니라 진리 안에서 사랑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복음에 합당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3. 복음의 진리를 따라 행해야 한다.

바울이 베드로를 공개적으로 책망한 또 다른 이유는 14절에 베드로가 “복음의 진리를 따라 바르게 행하지 아니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복음을 따라 정중앙으로 걷지 않았다는 것이다. 여기서 정중앙이라는 말은 그리스어로 ‘오쏘’인데, ‘똑바로 가다’는 의미다. 우리가 복음을 알았다면 복음의 요지와 방향에 맞게 삶 전체를 정돈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 믿고 천국만 가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진리를 삶 속에 적용하는 일련의 과정이다. 그런데 여기서 베드로가 실패했다.

베드로는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다. 유대인이 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인정을 못 받거나, 진정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오늘날에도 베드로의 실수가 반복되고 있다. 세상의 방식대로 인종과 문화를 따라 편을 갈라 교제한다. 사회적 지위가 없는 신자들은 사회적 지위가 있는 신자들을 보고 부담스러워할지 모른다. 반대의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신자들은 반대되는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보면 불쾌하게 생각한다. 다재다능한 신자들은 평범한 사람들과 동등한 신자로 대우받는 것에 불만을 가질 수 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우리도 베드로처럼 다른 사람들 곁에서 공손히 앉아 예배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사람들과 함께 식탁의 교제는 하지 않는다. 그들의 친구가 되어주지 않고, 마음을 나누지 않는다. 겉으로는 관계를 유지하지만 교회에서 얼굴만 마주칠 뿐이다. 이런 삶은 복음에 합당한 삶이 아니다. 우리 가슴에 복음이 없기 때문에 나와 다른 사람을 비교해서 자기 존재가치를 확보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복음은 말한다. 우리모두가 그리스도 없이는 한결같이 부정하고, 예수님 안에서 모든 사람이 정결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인종과 문화를 보고 교제하신 것이 아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인종과 문화를 내세워서 사람을 차별하고 있다. 결국 인종과 문화에 대한 우월감을 느끼는 뿌리에는 행위로 의롭다 함을 얻으려는 생각이 뿌리 깊이 배어 있는 것이다. 내가 너보다 의롭고 내가 너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느끼기 위해서 사람을 무시하고 차별하는 것이다. 결국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 복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내가 은혜로 구원받았고 은혜로 하나님과 교제하게 되었다는 복음을 잊어버렸기 때문에 율법주의로 나아가는 것이다.

또 하나, 베드로가 우월감을 가진 중요한 동기가 두려움 때문이라고 했다. 베드로가 왜 두려워하게 되었을까? 베드로가 왜 유대인들의 비난을 두려워해야 할까? 베드로가 왜 그들의 인정에 목말라 해야 할까? 베드로는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사람의 인정과 평가에 목말라할 필요가 없다. 베드로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완전한 인정과 사랑을 받았다. 그런데 그 복음을 잊어버리니까 사람의 인정에 목말라 하는 초라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한국교회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교회가 한국 초대교회에 있다. 전북 김제에 가보면 ‘금산교회’가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10년 전에, 테이트 선교사님이 김제로 와서 복음을 전했다.
당시 그 마을에는 많은 마부들이 쉬어가는 말들의 호텔을 경영하던 분이 있었다. 그 마을의 최고 부자인 ‘조덕삼씨’다. 테이트 선교사님의 전도로 조덕삼씨가 예수를 믿게 되었다. 그래서 그분의 부잣집 사랑방에서 교회가 시작되었다. 교회가 시작되니까 자기가 데리고 있었던 일꾼인 마부들이 참석하고 동네 사람도 하나둘 모이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장하다 보니까 장로를 세울 때가 되었다

교회에서 두 사람의 후보가 생겼다. 조덕삼과 마부인 ‘이자익, 두 사람이 후보가 되었다. 투표 결과 누가 장로가 되었을까? 주인 양반이 떨어졌다. 마부, 주인의 종이 당선된 것이다. 테이트 선교사는 당시의 심정을 글에 이렇게 남겼다. ‘그때 내 심장이 막 떨렸다...’. 그동안 수년간 여기서 전도한 모든 것이 무위로 돌아갈 상황이었다. 이때 조덕삼 씨가 일어나 소리 한 번 치면서 “이런 선거 무효입니다.” 하면 다 끝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손을 들더니, 선거 끝나고 “언권 주시오.” 발언권 달라는 말이다.

“오늘 여러분은 큰일을 하셨습니다. 우리 중에 정말 훌륭한 일꾼을 잘 뽑으셨습니다. 우리 이자익 형제는 우리 집의 머슴이고, 일꾼이기는 하지만, 신앙의 열의가 저보다도 훨씬 나은 형제입니다. 우리 형제를 장로로 모시고, 우리 교회를 잘해 나가십시다.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시다.”

정말 놀라운 장면이다. 그리고는 어느 날 조덕삼씨가 이자익 형제에게 말한다. “자네는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은사가 있는 사람인데, 여기 있지 말고 신학 했으면 좋겠어. 내가 학비를 대주겠네.” 그래서 이자익을 도와 신학교를 졸업시키고, 다시 돌아온 그 사람을 금산리 교회의 담임 목회자로 모시게 된다. 나중에 물론 그분도 장로가 되었다. ‘조덕삼 장로님’.

조덕삼 장로는 ‘호남’ 사람이지만, 이자익 목사는 본래 ‘경상도’ 사람이다. 가장 아름다운 한국교회의 표본이 되었다.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고, 경상도와 전라도가 하나가 되는 정말 아름다운 교회를 세웠다. 수많은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을 끼친 것이다.

금산리 교회가 한국교회 역사에 자랑스러운 교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조덕삼 장로 안에 복음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은 차별을 없애준다. 머슴이 먼저 장로가 되어도 인정하게 만들고, 머슴을 목사로 모시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드는 위대한 능력이 복음 안에 있는 것이다. 이 복음이 우리 교회에도 필요하다. 우리 사회에도 필요하다. 이념과 세대 간의 격차가 커지는 우리 민족 가운데 이 복음이 필요하다.

우리 한국교회가 금산 교회처럼 자랑스러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 한국교회에 조덕삼 장로님처럼 훌륭한 집사님들과 권사님들, 장로님들이 세워져서, 이자익 같은 훌륭한 목사님, 선교사님, 위대한 성도들이 세워질 수 있기를 바란다. 하나님 보시기에 자랑스러운 교회, 다시 세상의 소망이 되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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