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없는 신학, 교회를 섬기지 않는 신학이란…”

제임스 에글린턴·유해무 박사, 개혁주의학술원 칼빈학술세미나서 발제
제임스 에글린턴 박사가 개혁주의학술원 칼빈학술세미나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개혁주의학술원 영상 캡처

개혁주의학술원이 4일 오후 헤르만 바빙크 서거 100주년 기념세미나를 온라인으로 개최했다. 이날 제임스 에글린턴 박사(James Eglinton, 에든버러대학)가 ‘헤르만 바빙크: 기독교 대가의 초상화’라는 제목으로, 유해무 박사(전 고신대 교수)가 ‘헤르만 바빙크의 교회론과 실제 그리고 한국교회’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제했다.

먼저 제임스 박사는 “바빙크의 죽음 이후 그의 많은 것이 잘 알려져 있다”며 “바빙크의 삶은 교의학자로서의 삶이었지만, 단지 교의학자로서의 삶만은 아니었다. 바빙크는 이론과 실천에 있어서 다양한 영역에 관여했다”고 했다.

이어 “바빙크를 묘사하기 위한 단어로 ‘대가’(Polymath)라는 단어를 도입했다”며 “대가라는 말은 물론 전문가주의의 단계를 넘어서는 공헌을 통해서 다양한 학문분과에서의 고도의 전문화되고 진전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다양한 전문성을 함양하고 유지하는 자를 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바빙크는 자신의 대가됨을 보여주는 두 단어를 자신의 생애에 걸쳐서 사용했다. 우리는 대가 바빙크를 이해하기 위해 공교회성·보편성(Catholocity)과 보편성(Universality)이라는 두 단어에 주목해야 한다”며 “바빙크에 의하면 기독교는 단지 모든 사람을 위한 신앙이라는 점에서 보편적 신앙이라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신앙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을 위한 신앙이라는 점에서 보편적”이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바빙크가 말하는 보편성과 보편주의는 구원론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보편적 공교회성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거나 유사한 의미를 말하는 것”이라며 “바로 그것은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 대한 보편주의적 적용을 의미하는 단어였다. 바빙크는 자신을 그리스도인, 곧 모든 곳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불렀다. 바로 이것이 바빙크의 대가적 주장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어 “대가로서 바빙크에 대한 묘사가 가지는 두 가지 결과에는 먼저, 바빙크의 삶을 대가의 삶으로 보는 것을 배운다는 것은 이전의 바빙크 연구에서 지배적이었던 묘사를 뒤집는 것을 의미한다”며 “바빙크의 대가됨은 바로 기독교 신앙의 보편성의 표현이었다. 바로 이것은 집중력 없고, 내적으로 분열되고 혼동된 인물로서의 바빙크라는 이전의 지배적인 묘사에 대한 또 다른 중요한 뒤집기를 의미한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바빙크를 대가로 인정하면서 우리는 바빙크를 위대한 기독교 대가들의 리스트 속에 추가해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우리는 기독교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에 의해 덜 간과된 이러한 기독교 대가들의 리스트에 주목해야 하는데 그것은 바로 기독교 대가됨은 그 자신을 넘어서 무엇인가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한 “이러한 예외적인 기독교 대가들 개인들은 삶의 모든 측면을 위한 보편적 신앙으로서의 기독교 신앙의 본질 자체를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유해무 박사가 개혁주의학술원 칼빈학술세미나에서 발제를 하고 있다. ©개혁주의학술원 영상 캡처

두 번제 발제를 맡은 유 박사는 “바빙크는 자기 교회론을 한 편으로 성경과 교의사 그리고 교회의 전통과 신조 위에 세웠다. 이것은 바빙크의 강점”이라며 “성경 원어뿐만 아니라 아랍어까지 공부하여 성경을 주석할 수 있는 기량을 갖춘 그의 교의학은 카이퍼의 교의학 보다 훨씬 더 성경적이고 부드럽다. 이런 기초 위에 교의사와 교회의 전통에 대한 광범위한 독서와 이해는 가톨릭교회나 루터파교회의 신학의 유익과 약점을 포괄하는 더 나은 ‘개혁파’ 신학과 교의학의 독특성을 정립하게 하였다. 특히 그는 자기 교회의 신조인 고백서와 요리문답 그리고 도르트신경을 고백하고 신학적 작업에 이용하였다”고 했다.

이어 “다른 편으로 바빙크는 이런 기초를 자기의 역사적 상황에서 숙고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발전시키고 교회론의 실제적 사안에서 적용하고 교회와 신학을 인도하여 안목을 넓혔다”며 “그는 자신이 말하는 존재의 원리인 삼위 하나님 신앙과 인식 원리인 성경과 성령의 인도와 같은 원리의 사안에서 결코 타협하거나 중재적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이에 기반하여 교회의 합동과 신학교육기관의 통합을 위한 시도에서 바빙크는 신학의 주체, 개혁파 원리 등을 주제로 삼아 대치하는 두 기존 교회의 의견을 중재하여 교회의 일체성을 구현하려고 애썼다. 이 과정에서 대신학자인 바빙크는 여러 형태로 상처도 받았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바빙크의 이런 노력에 저변에는 유기체 사상이 깔려 있다. 그는 당대 철학으로부터 유기체 사상을 수용하여 일체성과 다양성에 관심을 가졌다”며 “교회를 신앙을 가진 자들의 후천적 연합으로 보는 개인주의적인 교회론을 그가 유기체 교회의 관점에서 비판한 것은 한국교회에 큰 경종을 울린다”고 했다.

그는 “한국교회 안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교회의 분열과 이합집산은 교회의 머리 아래 지체가 연합하고 화평을 이루는 모습은 결코 아니”라며 “유기체 교회 이론에는 역시 일말의 무리가 있다. 비록 그가 제도 교회보다 유기체 교회가 앞선다는 카이퍼의 주장을 암시적으로 비판한 것은 옳지만 전체가 부분에 앞서는 유기체의 정의 때문에 유기체 교회가 제도적이고 지역적인 교회를 앞설 가능성은 상존하며, 제도 교회가 약화될 위험도 상존한다. 제도 교회를 이루는 요소들이 사라진다 하여도 (유기체) 교회는 존속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가 초기에 그렇게 강조하였던 ‘하나님의 나라’가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가려지는 아쉬움이 있다. 신자들이 고백과 삶에서 유기체 교회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낸다고 말하는 것이 더 성경적일 것이며, 천국에서도 직분, 말씀과 성례가 더 이상 없지만 교회는 여전히 가시적일 것이라는 주장은 그리 성경적이지 않다”며 “이것은 교회의 본질을 성도의 교제로 보는 그의 입장에서 나온 귀결이다. 더욱이 바빙크의 교회론은 서방교회의 전통에 서 있는데, ‘예배’를 통해 교회를 이해하고 정의하는 고대교회의 교회론의 언급은 빠져있다”고 덧붙였다.

유 박사는 “교회론에 나타난 이런 부조화나 내적 갈등은 그가 신학이란 제도 교회나 직분이 아니라 유기체 교회와 교인들의 사고(ratio christiana)로 이루어진다는 주장에 기인한다”며 “이로써 신학의 주체로서 제도와 유기체 교회, 신학교와 대학교의 신학부의 갈등은 해결되지 않은 채, 그에게 관계와 교회정치의 쓴 맛만 안겨주었다. 이것이 그의 교회론과 실제의 이면”이라고 했다.

이어 “죄인을 불러 의인으로 만들어 날마다 의인으로 살게 인도하는 신학과 목회는 인간관계 속에서 수행한다. 이런 일을 맡은 신학자와 목회자 자신들의 인간관계는 늘 위기에 직면할 수 있다”며 “바빙크는 이런 관계 속에서 신학하고 설득하고 교회를 세우려고 애썼다. 비록 그가 현장에서 항상 편한 관계만을 누린 것은 아니라 하더라도 그의 교회론은 교회의 주인이신 삼위 하나님의 사역 전체를 바라보면서 이상적인 교회의 모습을 담아낸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와 신학의 현장은 어떤가. 바빙크는 자기 교회의 ‘분리’를 정당하게 수용하고 사랑하며, 교회의 신학교를 자랑한다. 여기에는 교회의 분리와 교회의 일체성, 분리의 정당성을 변호하는 신학과 신학교의 존재 근거가 문제가 된다. 한국교회는 수많은 교파로 분열되어 있고, 교파마다 신학교를 운영한다. 교회가 분리하고 신학교를 세울 정당한 근거가 무엇인가”라며 “당대의 교회와 신학이 성경과 신조를 떠났고, 신학을 종교학으로 변질시켜 신학의 학문성을 인정하지 않을 때, 바빙크는 단호하게 자기 교회와 교회의 신학교를 변호하였다. 자기 교회를 사랑하고 신학의 원리를 따라 신학을 연구하고 교회를 가르치며, 특히 신학의 포괄적 사명을 강조하는 신학은 현재 한국교회에서도 절실하게 요청된다. 그러나 교회가 없는 신학, 교회를 섬기지 않는 신학은 바빙크에게 어불성설이듯, 현재 쇠퇴일로에 있는 한국교회를 향한 신학의 사명은 그 어느 때보다 막중하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바빙크가 신학의 유기체 사상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신학서론(백과전서학)의 중요성을 부각시키면서 신학의 여러 분과를 묶어 신학의 일체성을 정립하려고 시도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며 “신학의 파편화가 당연시되어 분과 상호간의 관계와 협력으로 나타나는 일체성에 무관심한 한국신학과 신학교육의 현실의 교정을 위하여 신학서론은 절실하게 요청된다”고 했다.

이어 “바빙크가 신학교육기관의 통합을 위하여 수많은 실패와 좌절도 마다하지 않은 것을 한국의 신학자들과 신학교는 귀감으로 삼아 교파의 존재와 의미를 성경적으로 상대화하고 교회의 일체를 위한 교회 합동과 신학교육기관의 통합에도 관심을 기울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울러 “한국교회는 신학자가 교회치리와 교회 정치 언급 자체를 봉쇄하거나 신학자들이 이런 문제에 대해서 애써 무관심을 보인다. 그러면 신학자는 교회의 현장에서 뒤로 물러나서 학문으로서 신학만을 추구할 것이요, 그것은 바빙크가 비판하였듯이 신학이 성경과 신조와 심지어 그리스도에게서 이탈하는 기회를 만드는 꼴이 될 것”이라며 “오히려 신학자는 신학을 연구하듯, 보다 적극적으로 교회 개혁적이고 해체적인 요소를 탐사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는 신학 본연의 사명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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