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전문칼럼] 이슬람지하드의 진짜 의미(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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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만석 목사(한국이란인교회·한장총 이슬람선교훈련원 원장) ©이지희 기자

또한 이슬람 개혁가이며 현존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이슬람 학자들 중 한 사람인 이븐 타이미야는 이 하디스에 대해서 이런 평가를 내렸다.

“어떤 이들이 선지자 께서 타북 전투에서 돌아오면서 우리는 지금 작은 지하드에서 더 큰 지하드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주장하는데 이 하디스는 출처가 없다. 이슬람에 대한 지식을 가진 자 중에 그런 말을 한 사람은 없다. 불신자들에 대한 지하드야말로 가장 숭고한 행동이다. 그리고 그것은 인류를 위해서 가장 중요한 행동이다.”(위키피디아 영문판 ‘Lesser vs Greater Jihad’참조)

그렇다면 가장 권위 있는 하디스는 지하드에 대해서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아부 후라이라가 전하기를: 어떤 사람이 알라의 사도(무함마드)에게 와서 “(상급에 있어서) 지하드와 동등한 행위를 가르쳐 주십시오”라고 했더니 대답하시기를 “그런 행동은 찾을 수가 없다”고 대답하시면서 “무슬림 전사가 전쟁터에 나가서 싸우는 동안 그가 전쟁을 마치고 돌아올 때까지 쉬지 않고 쌀라트(이슬람 의식에 의한 기도)를 하면서 금식을 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셨다. 그는 “그런 일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했더니 아부 후라이라가 “무슬림 전사는 그의 말이 긴 줄에 매어서 어슬렁거리면서 풀을 뜯을 때도 그 발자국마다 상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부카리 하디스 V4, B52,No.43)

이 하디스는 가장 신뢰도가 높은 부카리의 하디스이다. 한 번 전쟁이 시작되면 그 전쟁이 몇 주 안에 끝나기도 하지만 몇 개월씩 걸리는 전쟁도 있다. 그동안 어떻게 쉬지 않고 금식하면서 엎드렸다 일어났다 하면서 쌀라트(이슬람 의식에 의한 기도)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기도나 금식도 중요하지만 지하드의 중요성에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부카리의 하디스에서 지하드와 관련된 것을 하나만 더 확인해 보면

안나스 빈 말릭이 전하기를: 사도(무함마드)가 “알라를 위해서 오후나 정오에 한 번 나가서 싸우는 것이 세상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보다 더 훌륭하다.”(부카리 하디스V4, B52, No.53)

이슬람 학자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은 하디스보다는 꾸란의 권위가 훨씬 높다고 하는데 꾸란은 지하드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

“같은 무슬림일지라도 소경이나 절뚝발이나 불구자를 제외하고 알라를 위해서 생명과 재산을 바쳐서 싸우는 자들과 집에 앉아 있는 자와는 동등하지 않다. 알라께서는 재산과 생명을 바쳐가며 싸우는 자들에게는 집에 남아 있는 자들보다 더 높은 지위를 부여하실 것이다.(꾸란4:95)

이것은 꾸란에 기록된 내용이다.

너희가 비록 싸우기 싫어도 전쟁은 너희에게 부과된 의무이니라. 너희는 유익한 것을 싫어하기도 하고 해로운 것을 좋아하기도 하느니라. 너희는 아무것도 모르고 알라는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꾸란2:216) 최영길역 한글 꾸란에는 “싸움은 너희에게 부과된 의무니라”라는 말을 “너희에게 성전이 허락되었노라”라고 번역하고 있다. 영문과 이란어로 번역된 어떤 번역본도 “Kutiba AAalaykumu alqitalu”를 성전이 허락되었노라고 번역한 것은 없다. Kutiba는 법령에 기록되었다는 말이다. 무엇이 의무사항으로 기록되었느냐 하면 “alqitalu” 즉 전투, 전쟁이 의무사항이라는 말이다. 이 단어는 “qatala” 즉 “죽이다 살해하다”외에 다른 뜻이 없는 단어에서 파생된 것이다. 그래서 여기서 싸움이 의무사항이라는 말은 멱살이나 잡고 흔들면서 고함이나 질러대는 싸움이 아니라 목을 자르고 손가락을 잘라 버리는 싸움(꾸란8:12)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최영길 역 한글 꾸란에는 “목을 때리고 손가락을 때리라”고 미화시켜 번역해 놓았다.

우리나라처럼 무슬림 숫자가 적은 나라에서는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로 부각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거짓말을 할지라도 용서가 된다는 타끼야(Taqiya)라는 편리한 교리가 있기 때문에 전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다. 심지어는 꾸란의 구절도 거짓말로 번역해서 그 의미를 미화 시키거나 덜 혐오스럽게 바꾼다. 실력이 없어서 혹은 단어의 뜻을 몰라서가 아니다. 아랍어 사전을 만든 사람이 단어의 뜻을 몰라서 실수로 오역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런데 이슬람 학자들은 소위 교수님 혹은 박사님등의 호칭으로 불리는 지식인들이지만 이슬람을 미화시키기 위해서는 주저함 없이 담대하게 거짓말을 한다.

정직하게 말하자면 지하드란 불신자들과 싸우는 전쟁을 말하는 것이다. 이슬람 교리에 의해서 무슬림들이 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행동이 지하드라면 그리고 그 지하드가 알라를 위해서 불신자들을 죽이는 것이 목적이라면 우리 주변에 무슬림들의 숫자가 많아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일이 아니다.

물론 모든 무슬림들이 꾸란대로 실천하지는 않는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꾸란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무슬림 집안에서 태어났으니 무슬림이 된 것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이 어떤 계기가 주어지면 헌신된 무슬림들이나 학자나 이슬람 성직자들에게 진짜 이슬람 교리를 배우게 된다.

이슬람을 평화의 종교라고 하는 사람들은 거짓말에 속고 있든지 아니면 알면서도 속이고 있든지 둘 중의 하나일 뿐이다.

꾸란은 비무슬림들을 어디서 만나든지 살해하라(꾸란9:5)고 명하고 있으며 세상에 이슬람을 안 믿는 사람이 한 사람도 남지 않을 때까지 계속 싸우라(꾸란8:39)

생명과 재산을 바쳐 싸우는 자들만이 진정한 무슬림이다.(꾸란49:15)

이런 꾸란의 가르침에 의해서 그들은 비무슬림들을 적으로 여기로 전쟁을 일으키는 것이다.

이번에 개헌특위에서 이슬람과 관련된 문제가 거론 되고 있다고 한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주는 것은 듣기에는 좋은 말이지만 이슬람교리는 이를 거부한다. 비록 유엔인권선언문에 서명을 했지만 이 조항들이 이슬람 율법과 충돌이 될 경우에는 이슬람의 샤리아에 우선권을 둔다고 OIC(이슬람협력기구)회원국들이 카이로 선언문을 채택했다.(1990년 8월5일)

그들은 비무슬림들이나 여성들을 교리적으로 차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슬람을 배신한 자를 살려둘 수 없다는 교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우리와 동등한 권리를 주는 것은 유럽이 망한 길을 따라가는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문화 정책에서 이슬람은 제외시키는 것이 국익을 위한 지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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