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규 칼럼] 나는 어떠하며, 누구와 함께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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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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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규 목사(앵커한인교회 담임)

[기독일보=칼럼] 오늘 날 교회에서나 사회나 사람이 속해있는 어느 단체에서라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 ‘소통 관계’입니다. 자신의 이기적인 것을 위한 소통과 관계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것은 상대방의 말이나 행동에 공감을 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진정한 인격과 감정을 함게 동참하고 나의 아픔이요 즐거음으로 갖는 소통이요 관계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대부분의 많은 사람들은 자기에게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친절하고 가까이 합니다. 상대방이 고통받거나 괴로워하면 가까이 하기는 커녕 비방하고 범죄하여 그렇다고 하는 사람들까지 있습니다. 미국에서 물난리로 고통 받을때나 일본의 지진이 일어나 고통 받을때나 요즘 한국의 지진으로 무섭고 두려움에 떨고 있는데도 목사들이라는 사람들은 같이 아파하고 위로하기는 커녕 오히려 죄의 댓가라고 하는 것을 미디어를 통하여 듣고 본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나만 아니면 괜찮다는 식의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2장15절>에서 말씀하시기를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내가 주체가 아니라 다른사람이 먼저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내가 아프고 괴로와도 상대방을 위해서라면 기뻐 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고, 내가 즐거울지라도 상대방이 아프고 괴로우면 함께 아파하고 괴로워해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동참이라는 것, 함께 한다는 것은 엄밀히 말하면 관계를 어떻게 하고 있느냐를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한국에서 신학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고 긴장이 풀어 졌는지 어려서부터 가지고 있던 지병이 나타나 아파서 병원에 입원한 적이 있습니다. 필자의 모교에서 여전도사와 강도사가 심방을 왔습니다. 솔직히 병문안을 가면 음료수라도 사가지고 가야 하는게 당연한데 빈손으로 와서 아픈사람을 위해 기도는 커녕 어디가 아프냐고 물어서 아프지 않다고 했더니 온지 10분정도 있다가 가더군요. 엘리베이터 타는 것을 보려고 뒷모습을 보는데 그 둘이서 하는 말이 ‘아프지도 않은데 목사가 왜 병원에 입원했냐’며 둘이서 대화 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이런 자들이 어떻게 교인을 돌볼까하는 생각을 한적이 있습니다.

유학생시절 당시 필자의 아버지께서 위독하셨습니다. 그때 당시 영주권을 신청한 상태이어서 한국에 나가면 미국으로 들어올수 없는 상황이 었습니다. 제 영주권 서류가 잘 풀려서 거의 다 되었고 한국에 갔다가 올수 있는 여행 허가신청서를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필자가 속해있는 교회의 담임목사에게 나의 서류를 달라 아버지가 위독하니 한국에 다녀와야겠다고 했습니다. 무슨 서류냐고 시치미를 땜니다. 그래서 제가 ‘다 되었다면서요?’ 되물었더니 아니라고 뭘 잘못 알고 있나보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윽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저희 식구는 아버지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였습니다. 아버지께서 하나뿐이 없는 손주의 얼굴도 한번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습니다. 정말 죽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담임목사는 제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알면서도 모르는척 하고, 교인들 역시 아무소리 하지 않습니다.

필자가 속한 노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돈을 걷어 놓았으니 가져가라는 전화였습니다. 목사라는 자들이 이 정도뿐이 되지 않나 위로를 해주기는커녕 돈을 거둬놨으니 와서 가져가라 그래서 ‘그런 돈 필요없다. 너희나 다 먹어라’ 했습니다. 그날 연세드신 목사님 한분이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은 좋겠어 우리부모 돌아가셨을 때는 노회에서 돈을 주지 않았는데 목사님 아버지 죽었다고 돈을 노회에서 주니’ 그러는 것입니다. 그걸 위로의 전화라고 했는지 비아냥거리려고 전화한 것인지 하도 어이가 없어서 “돈 받은 것 없습니다. 전화 끊으세요.”하고 지났습니다.

얼마 후 선배목사가 어떻게 알았는지 전화가 와서 하는말 ‘아버지 돌아가셨다고 그렇게 슬퍼해 이해가 가질 않네’ 하는 것입니다. 제 입에서 욕이 나오는 것을 참고 속으로 욕을 했습니다. 이런것들이 목사라니 이런것들 밑에서 있는 교인들이 불쌍하다 나혼자 말했습니다.

그런 인간의 기본이 되어있지 않은 사람들하고 지금은 관계를 갖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그들은 인간이 아니라 동물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동물들도 아닙니다. 동물들도 자기 동료가 죽으면 그 옆에서 지키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 입니다. 최소한 하나님의 모습을 지닌 사람들이라면, 목사라는 것을 떠나서 그렇게 관계를 갖으면 않되는 것이니깐요.

관계라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아파하는자와 즐거워하는자와 함께 하라 말만의 함께가 아닙니다. 그 사람의 심정이 되라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떠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자들과 함께 하고 있습니까?

광대를 아시는지요? 광대는 자기가 괴롭고, 아프고, 즐거워도 화장을 하거나 탈을 쓴 뒤에서 해야지 앞으로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아픔사람에게는 위로를 즐거워하는 사람에는 즐거움을 주는 자기를 버린 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비롯 무대에서 일지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예수님의 마음으로 괴롭고 아파하는자들과 함께 나의 아픔과 괴로움으로 받아들이고 즐거운자들에게는 그들의 즐거움이 나의 기쁨이요 즐거움으로 함께하는 진정한 예수님의 마음을 갖은 우리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 이동규 (DONG KYU LEE) 목사는...
한국에서 칼빈대와 총신대 신대원을 졸업하고 미국 리버티신학대학(신학 석사)과 아주사페시픽대학(기독교교육학 석사)을 거쳐 풀러신학교에서 목회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고, LIFE UNIVERSITY와 WORLD CHRISTIAN UNIVERSITY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 앵커한인교회 담임목사로 섬기고 있으면 캘리포니아 CHONGSHIN UNIVERSITY THEOLOGICAL SEMINARY 총장 및 ALL THE NATION INTERNATIONAL EVANGELICAL GENERAL ASSEMBLY 총회장을 맡고 있다. 저서로는 <전인적 기독교교육>(2015.11. 밀알서원 펴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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