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개혁의 과제는 '제자도'의 회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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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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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복협 9월 월례회에서 새문안교회 이수영 목사 눅14:25-35 본문으로 설교

지난 9월 9일 화평교회에서는 한국복음주의협의회(회장 김명혁 목사, 이하 한복협)가 9월 월례회 모임을 갖고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교회의 개혁"을 주제로 논했다. 행사에서는 오정호 지형은 최이우 한진환 여주봉 목사 등이 발표했으며, 김영한 박사가 종합 토론을 진행했다. 또 행사 전 경건회 설교는 이수영 목사가 전했다. 다음은 이수영 목사의 설교 전문이다.

▲이수영 목사(새문안교회, 한복협 부회장)

적어도 최근 20년은 한국 개신교에게 위기의 시기였음을 부인할 수 없을 것입니다. 성장이 멈추었을 뿐 아니라 교인 수가 하락세로 돌아선 것입니다. 교세의 수적 하락보다 더 심각한 것은 교회나 그리스도인에 대한 사회의 호감도와 신뢰도의 추락입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우리는 한 마디로 믿음에 대한 잘못된 이해라고 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제자도에 대한 바른 이해가 부족한 것입니다. 이해는 잘 하고 있다 해도 실천이 약한 것입니다. 여기에 주님의 말씀으로 돌아가 제자도를 다시 생각해볼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 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세 번이나(26, 27, 33절) 반복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친히 가르쳐 주신 주님의 제자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도리를 찾을 수 있다고 봅니다. 본문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십니다. 이 말씀은 아마도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도리를 가장 포괄적이며 압축적으로 표현한 말씀일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다름 아니라 예수님을 바르고 철저하게 따르려고 할 때 닥치는 모든 고통을 감당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십자가는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당신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짊어져야 하는 십자가의 고통의 한 구체적인 예를 본문 26절에서 언급하셨다고 봅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신 것입니다. 이 말씀은 결코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으려면 모든 인륜관계를 끊어야 한다거나 자기 자신은 말할 것도 없고 자기의 형제자매와 처자들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부모까지 정말로 미워해야 한다는 뜻의 말씀이 아니라, 주님에 대한 사랑과 충성이 부모를 공경하고 처자나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것보다 더 크고 우선적이어야 함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즉 주님을 사랑하고 그에게 충성하는 일 때문에 어떤 때는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를 섭섭하게 할 수도 있으며 그것은 인간적으로 매우 괴로운 일일 수 있으나 그 어려움을 감당할 수 없고 그래서 인륜관계를 위해 주님과의 관계를 희생시킨다면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10:37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모든 인륜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 주님 우선의 새로운 인륜관계로의 변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우리에게서 가치들의 우선순위가 하나님 중심으로 재정돈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에게서 가장 소중하게 여겨질 "자기 목숨"조차도 가치매김의 우선순위에 있어서 그 첫 자리를 주님께 내어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26절 하반절의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 말씀은 바로 그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짊어지는 십자가는 단순히 몇몇 가지 고통을 감내하는 것이 아니라 전적인 자기포기, 자기부인인 것입니다. 내가 죽는 것을 말합니다. 십자가는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복음서의 다른 곳(마16:24, 막8:34, 눅9:23)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전적인 자기포기, 자기부인으로서의 십자가를 가리키며 본문 33절에서는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는 누구나 땅도 집도 온갖 세간도 다 남 줘버리고 거렁뱅이로 길거리에 나서라는 말이 아닙니다. 또 누구든지 재산을 가진 사람, 특히 많은 재산을 가진 부자는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큰 일에 쓰시려고 어떤 사람에게는 특별히 돈 잘 버는 재능을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재물의 있고 없음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벌었는가에 있으며, 무엇보다도 어떻게 쓰는가에 있는 것입니다.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자기 자신의 부귀영화나 쾌락 등을 위해서 재산을 축적하고 사용하던 삶을 청산하고, 재물을 모으는 일이나 재물 그 자체를 보다 궁극적인 가치 아래 두며 보다 가치 있는 일을 위해 사용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곧 오로지 주님의 뜻대로,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위해서,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에게 복과 유익과 기쁨이 되도록 돈을 벌기도 하고 쓰기도 하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 된 사람들의 삶의 자세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린다"는 것은 단지 소유욕의 포기만이 아니라 우리 각자가 가진 모든 세상적 욕심, 목적, 계획, 수단, 의미, 가치관, 인생관의 포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주의 제자가 되기 위하여 져야 할 십자가는 단지 인간관계와 재물에 있어서의 얼마간의 희생과 고통분담이 아니라 완전하고 철저한 자기부인이며, 삶의 의미, 삶의 목적, 삶의 기쁨, 삶의 방식, 삶 자체의 전적인 방향전환을 말하는 것입니다. "나" 중심의 삶에서 "주님" 중심의 삶에로의 전환이 곧 예수님의 제자 됨이라는 말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 내 힘, 내 재능, 내 계획, 내 계산, 내 방법, 내 기술을 신뢰하고 의지하던 데서 오직 주님의 뜻과 그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데로 돌아설 때 비로소 주님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 28절부터 32절 사이의 두 비유말씀은 바로 그것을 가리키고자 하신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망대를 세우려는 사람이 망대를 세우기 시작하기 전에 먼저 망대건축을 다 마칠만한 충분한 예산이 있는지를 살피고, 전쟁을 하려는 사람이 전쟁터에 나가기 전에 적을 물리칠 충분한 병력이 있는지를 살펴야 하듯이, 주의 일을 하려고 하는 사람도 정확한 자기평가와 확실한 준비가 필요한데, 그 가장 확실한 준비는 다름 아니라 자기를 철저히 부인하고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주님의 제자가 되어 주의 일을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자기의 지혜와 자기 힘만 믿고 자기 방식으로 대들다가는 기초만 쌓다가 망대는 못 세우거나 일만의 군사로 이만의 군사와 맞서 싸우다 패배함으로써 세상의 웃음거리밖에 되지 못하는 것처럼 되고 말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제자가 되려면 자기를 온전히 부인하고 오직 주님중심으로 주의 일에 임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자기의 지혜, 힘, 사고방식을 포기하고 모든 지혜와 힘과 삶의 방식을 온전히 주님에게서 배우고 얻고자 할 때 그의 참 제자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끝으로 본문 34-35절의 말씀을 상고해 봅니다. 앞에서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은 다름 아니라 "나"의 모든 것이 "나 중심"에서 "주님 중심"으로 바뀌는 것이라고 했는데, "주님 중심"으로 바뀐다는 것은 또 달리 말하면 "이기적" 삶에서 "이타적" 삶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하나님사랑은 이웃사랑으로 나타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로 이어지는 34-35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소금"을 언급하십니다. 소금은 바로 그 이타성으로 인하여 가치를 인정받는 물질입니다. 소금은 자신을 보존하고 그대로 남아있으면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소금은 다른 물질 속에 던져져 자신은 녹아 없어짐으로써 생명과 신선함을 유지해주고 음식의 맛을 내줌으로써 그 가치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며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고 자기 목숨까지도 미워할 줄 아는 것이 제자가 되는 길임을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그 가르치심을 이 소금의 비유를 들어서 다시 한 번 요약하시고 결론지으시는 것으로 누가복음의 기자는 우리에게 증언하고 있는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소금처럼 철저히 자기를 부인하고 버림으로써 온전해진다는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제자도에 관한 말씀을 하신 것은 십자가를 지시고 그 위에서 달려 돌아가시기 위해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고 계실 때였습니다. 그런데 그를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은 십자가 지는 일 같은 것은 꿈도 꾸지 않고 있었으며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오르실 때 큰 자리, 높은 자리, 그의 좌우 자리에 앉을 생각들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마20:20-21, 막9:34).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과연 예수님과 그의 뜻, 그의 하시는 일을 바로 알고 따르는지를 물으시며 참 제자가 되는 길, 즉 십자가 지는 일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제 이 땅의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스스로에 대해 성찰해봐야 할 문제점들이 거의 다 드러났다고 봅니다. 십자가를 지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에 따르는 고통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중심, 주님 우선으로 삶의 가치관이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전적인 자기포기, 자기부인이 없는 것입니다. 세상적 욕심, 목적, 계획, 수단, 의미, 가치관, 인생관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예수 믿기 전의 삶의 의미, 삶의 목적, 삶의 기쁨,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는 것입니다. 내 생각, 내 경험, 내 지식, 내 힘, 내 재능, 내 계획, 내 계산, 내 방법, 내 기술을 여전히 신뢰하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진정 주님의 뜻을 찾으며 오직 그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는 데로 돌아서지 않는 것입니다. 남들이 나를 위한 소금이 되어주기를 바랄 뿐 내가 남을 위한 소금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맛을 잃은 소금이 되고 길에 버려져 세상 사람들의 발에 밟히고 있는 것입니다. 제자도의 회복, 이것이 한국교회가 다시 일어서고 사회로부터 잃어버린 신뢰와 사랑과 존경을 회복하며 나라와 국민 가운데서 제 자리를 되찾는 길입니다. 십자가는 다시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 끝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들을지어다" 입니다. 이 말씀을 듣는 한국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글=한복협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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