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영삼 칼럼] 일본, 왜 자꾸 서두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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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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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석대 채영삼 교수

‘위안부 타결’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본이 책임을 공식인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1993년 고노담화와 유사한 수준이라는 평이다. 게다가 피해자 지원도 한국 정부가 재단을 설립하고 일본 정부가 예산을 출연하는 식이다. 일본이 법적 책임은지지 않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하지만 위안부 문제는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무엇보다, 일본이 그리고 한국 정부가 서두른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는다. 계기도 의아하다. 한국에서 반일감정이 극에 달했다든지 일본에서 커다란 의식전환이 일어났다든지 하는 계기가 없다. 도리어, 일본은 자위대를 재건하고 미국의 지원을 받아 동북아에 세력을 확장하기 위해 웅비 직전이다. 얼마 전에는, 유사시에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있다는 한국총리의 믿지 못할 발언도 있었다.

그래서 이번 ‘위안부 타결’은 인위적으로 들린다. 도무지 일본이 반성하는 맥락에서 하는 행위가 아닌 셈이다. 한국은 이제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창하는 이들이 권력에 힘입어 교과서까지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와 있다. 한국정부에 의해 일제 식민지 역사가 긍정적으로 비쳐질 마당에 일본이 위안부 문제를 뉘우치고 반성할 리가 없다. 커다란 문맥에서 맞지 않다. 일본은 한반도를 두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 것인가. 한국은 일본을 두고 무엇을 하고자 하는가.

지도자들은 이 나라를 어디로 끌고 가려는가. 그곳이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는 곳이 아니기를 바랄 뿐이다. 다시, 약자들이 고통 받고, 억울한 자들이 더 억울하게 되는 곳이 아니기를 원할 뿐이다.

불과 10여 년 전 만 해도, 정치민주화를 이루었으니 이제 경제민주화만 이루면 된다고 철없이 떠들어대던 기억이 아련하다. 또 선거철이 온다. 다시 온갖 거짓말이 난무할 것이다. 결국 시민이 깨는 일 밖에 다른 길이 없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결국 성도가 깨어나는 수밖에 없다. 바로 가르치고 말하고 사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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