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20대에 우울증으로 강단을 떠난 나를, 집사들이 다시 일으켜 세웠다"(Depression took me out of the pulpit in my 20s. My deacons brought me bac) 11월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10월은 ‘목회자 감사의 달’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성도들을 돌보는 목회자들에게 감사를 표현하며, 그들의 수고를 돌아보는 때다.
필자는 목회 현장에서 20년을 보낸 뒤 기독교 공공정책 옹호 사역에 27년 동안 몸담았다. 두 사역의 무게를 경험하면서, 여러 면에서 목회가 공공정책 사역보다 더 힘든 일이라는 생각을 해왔다.
의사당에서 나눈 대화
몇 년 전, 노스캐롤라이나주 의회에서 논의되던 사회 현안에 우려를 품은 목회자들이 주도인 롤리를 찾아왔다. 상·하원 의원실을 방문하는 필자의 일정에 동행하기 위해서였다.
하루 일정을 마칠 무렵 한 목회자가 감사를 전하며 말했다 “목사님 일을 제가 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의회 사역은 참 힘든 일이군요.”
필자는 감사의 뜻을 전한 뒤 이렇게 답했다 “공공정책 사역을 시작하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했습니다. 목회자들이 매일 어떤 어려움을 겪는지 알기에, 저는 목사님의 사역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정치 영역에서는 반대와 저항을 어느 정도 예상한다. 의견이 다른 사람들이 필자의 입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때로 거칠게 비판하는 것도 이 사역의 일부다. 그러나 그러한 반대가 과거 교인들에게 뜻밖의 부당한 비난을 받았을 때만큼 깊은 상처를 남기지는 않았다.
신념이 다른 사람에게 반대를 받는 것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라고 고백하며 사랑과 이해를 기대했던 이들에게 상처받는 것은 다르게 다가온다.
필자는 의사당에서의 일과를 마치면 대개 집으로 돌아가 그날의 긴장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목회자는 사역과 개인의 삶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 교회 안팎의 시선 속에서 살아가며, 사역의 부담은 집까지 따라온다. 배우자와 자녀도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기대와 부담을 함께 감당하기도 한다.
필자는 그 목회자에게 거듭 말했다 “저는 여전히 목사님의 일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강단 뒤에 놓인 짐
목회는 귀하고 보람찬 사역이다. 한 사람이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세례를 받으며, 믿음 안에서 자라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데는 큰 기쁨이 있다. 성도들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함께하고, 가장 어두운 시간에 성경의 위로를 전하는 것도 목회자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그러나 그 특권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목회자는 낙심한 사람을 격려하고,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하며, 상처받은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러는 동안 자신도 재정적 압박이나 가족 문제, 건강상의 어려움, 낙심과 싸우고 있을 수 있다.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을 수 없는 성도들의 아픈 사연을 마음에 간직해야 할 때도 있다.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깊은 고독을 경험할 수 있는 자리다.
목회자를 향한 비현실적인 기대를 풍자한 ‘완벽한 목사님’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이 목회자는 20대 후반이지만 목회 경력은 40년이다. 설교는 10분 안에 마치면서 누구의 마음도 상하게 하지 않고 죄를 분명히 지적한다. 하루에 열다섯 가정을 심방하면서도 언제나 교회 사무실에 있다. 청소년들에게 모든 시간을 쏟으면서 어르신들과도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다. 모든 위원회 회의에 참석하면서 전도할 시간도 충분히 낸다.
그런 목회자는 어디에 있을까. 늘 길 건너 다른 교회에 있다고 한다. 이 이야기에 웃음이 나는 것은 그 안에 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때로 한 목회자가 모든 은사를 갖추고, 모든 취향을 만족시키며, 모든 필요에 응답하면서도 지치지 않기를 기대한다.
물론 목회자도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건설적인 권면과 파괴적인 비난은 다르다. 바울 역시 “날마다 내 속에 눌리는 일이 있으니 곧 모든 교회를 위하여 염려하는 것이라”(고후 11:28)라고 고백했다.
신실한 목회자라고 해서 일과가 끝날 때 성도들을 향한 염려까지 쉽게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목회자는 누가 위로할 것인가.
우울증으로 강단을 떠났을 때
목회 초기, 아직 20대였던 필자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1980년대 당시 필자가 살던 노스캐롤라이나 동부에는 기독교 상담 자원이 많지 않았다. 결국 테네시 동부의 기독교 상담 기관을 찾아가 일정 기간 머물며 도움을 받았다.
그동안 강단을 오래 비워야 했고, 교회 집사들도 필자의 상태를 걱정했다. 어느 날 집사회 회장에게 전화가 왔다. 집사들이 사택을 방문해 만나고 싶다는 것이었다. 필자는 두려웠다. 정서적으로 지쳐 있던 터라 사임을 요구하러 오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다.
지금도 거실 소파에 앉은 필자를 집사들이 반원으로 둘러앉았던 모습이 선명하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을 드러내거나 목회자로서의 자격을 따져 묻지 않았다. 따뜻하고 온유하게 말을 건넸다.
집사들은 변함없는 사랑과 신뢰를 전했다. 상담을 계속 받도록 격려했고, 강단에 서둘러 돌아오려 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집사회 회장이 평생 잊지 못할 말을 했다 “목사님, 저희는 목사님이 잘 회복하셔서 다시 저희의 목자로 돌아오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그 말을 떠올리면 눈시울이 붉어진다. 그들은 필자에게 더 무거운 짐을 얹는 대신, 회복할 시간이 필요한 한 사람을 알아봤다. 목회자로서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 요구하기에 앞서, 지쳐 있는 사람에게 필요한 사랑을 베풀었다.
집사들은 자신들의 말과 태도가 필자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미쳤는지 다 알지 못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위태롭게 느껴지던 때, 그들의 돌봄은 소망과 신뢰를 되찾는 데 큰 힘이 됐다. 필자는 그들이 목회를 계속할 수 있도록 붙들어줬다고 믿는다.
당시 사임을 요구받았다면 수치심과 좌절감 때문에 목회로 돌아오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들의 긍휼은 치료와 회복의 시간을 견디게 해줬다.
그들은 이후 어떤 사역의 열매가 맺힐지 알지 못했다. 다만 목회자에게 사랑이 절실할 때 마음을 다해 사랑했다. 그 온유한 돌봄은 필자가 이후 수십 년 동안 사역을 이어가는 중요한 밑거름이 됐다.
모세의 손을 받쳐준 사람들
필자는 출애굽기 17장을 읽을 때마다 그 집사들을 떠올린다.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울 때 모세는 산꼭대기에서 하나님의 지팡이를 잡고 손을 들었다.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모세의 팔도 지쳐갔다.
그때 아론과 훌이 다가왔다. 돌을 가져와 모세가 앉도록 하고 양쪽에서 그의 손을 받쳐줬다. 모세의 손은 해가 질 때까지 내려오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승리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였다. 바로와 맞섰고,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했으며, 이스라엘을 이끌고 홍해를 건넜다. 그런 모세도 피곤해졌다.
아론과 훌은 그의 피로를 탓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살피고 곁에서 도왔다.
필자의 집사들이 해준 일도 그와 같았다. 혼자 힘으로 버티기 어려웠을 때, 그들은 곁에 서서 짐을 함께 들어줬다.
오늘날 목회자에게도 이러한 동역자가 필요하다. 기도하고 격려하며, 가족을 아끼고, 사역의 부담을 함께 나누는 성도들이다. 근거 없는 비방에 휩쓸리지 않고 사실을 분별하며, 어려움 속에 있는 목회자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곁을 지키는 이들이다.
목회자 역시 피로와 낙심, 정서적 고통을 겪는 사람이다. 다른 이들에게 전하도록 부름받은 사랑과 이해, 격려를 자신도 필요로 한다.
감사를 넘어 곁을 지키는 동역으로
목회자 감사의 달은 목회자의 설교와 기도, 심방과 섬김에 감사를 전할 좋은 기회다. 편지를 쓰거나 작은 선물을 건네고, 그 사역이 자신의 삶에 어떤 도움이 됐는지 말해줄 수 있다.
그러나 감사가 그때의 표현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목회자가 충분히 쉬고, 필요한 상담과 치료를 받으며, 가족과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실제로 도와야 한다. 사역을 함께 나누고 회복을 기다려주는 태도도 필요하다.
아론과 훌은 모세의 수고에 박수만 보내지 않았다. 지친 그의 곁으로 다가가 손을 받쳐줬다.
목회자에게 전할 수 있는 깊은 감사 역시 그와 같다. 사역을 칭찬하는 데서 더 나아가, 그가 건강하게 회복하고 신실하게 사역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함께 짐을 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