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와 컴퓨터 수출 증가에 힘입어 올해 대미 무역흑자가 처음으로 1천억 달러를 넘어섰다. 지난해 연간 흑자의 두 배를 웃도는 규모다. 수출 호조가 이어지는 가운데 미국이 무역 불균형을 이유로 현지 생산과 투자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2일 산업통상부의 ‘2026년 10월 수출입 동향’에 따르면 올해 1~10월 대미 수출은 1,767억 달러, 수입은 745억 달러로 무역수지는 1,022억 달러 흑자를 기록했다. 지난해 연간 대미 무역흑자는 495억 달러였다.
월별 흑자 규모도 확대됐다. 지난 1월 52억 달러였던 대미 무역흑자는 6월 121억 달러로 늘었고, 9월과 10월에는 각각 173억 달러와 176억 달러를 기록했다. 대미 수출액 역시 1월 120억 달러에서 10월 249억 달러로 증가했다.
◈ 반도체·SSD 수요가 수출 견인… 자동차도 소폭 증가
수출 확대의 중심에는 반도체가 있었다. 올해 1~10월 대미 반도체 수출은 510억 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19% 증가했다. 서버용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수요가 늘면서 컴퓨터 품목 수출도 236억 달러로 514% 증가했다.
지난해 미국의 고율 관세 영향으로 감소했던 자동차 수출은 같은 기간 245억 달러로 1.1% 늘었다. 반도체와 컴퓨터가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인 가운데 자동차도 소폭 회복했다.
미국의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투자 확대는 한국산 반도체와 서버용 저장장치 수요를 뒷받침했다. 다만 미국이 제조업 육성과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업에 현지 생산시설 확대를 요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흑자 확대가 추가 압박으로 이어질 경우 기업들은 수출 가격 경쟁력과 수익성 저하, 미국 투자 확대 부담 등에 직면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반면 미국 내 AI 투자에 필요한 반도체 수요가 구조적으로 늘고 있어 수출 증가를 곧바로 관세 압박과 연결하기는 어렵다는 분석도 나왔다.
◈ 미국 중간선거·추가 관세 변수… 전문가 전망 엇갈려
3일(현지시간) 치러지는 미국 중간선거도 통상정책의 변수로 거론됐다. 공화당의 의회 다수당 유지 여부에 따라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추진 여건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구조적 과잉생산·과잉설비 관련 무역법 301조 조사와 무역확장법 232조에 따른 조치 가능성도 불확실성으로 꼽혔다. 별도의 법적 근거에 따른 추가 관세가 추진되면 기존 한미 무역 합의만으로 기업의 통상 부담을 제한하기 어려울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백철우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미국이 과거 중국을 압박했던 것처럼 한국에도 투자 확대를 강하게 요구할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는 “반도체의 경우 가격 압박과 함께 미국 내 생산 압박이 심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박석재 우석대 경영학부 교수는 AI 데이터센터 건설에 따른 반도체 수요 증가를 불가피한 흐름으로 보고, 이를 이유로 미국이 관세나 투자 압박을 강화하기는 어렵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미국산 무기 구매와 서비스 투자 확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에 관한 한국의 입장을 설명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