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욕(老慾)은 노추(老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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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갑자기 사퇴했다. 전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은 스토리텔링이 대단해서 사람들은 그의 강의에 쑥 빠져 들었다. 특히 그의 명작 역사 기행문은, 모든 사람에게 한국의 예술과 한국 건축 그리고 문헌에 눈을 뜨게 했다. 그는 오래 동안 한국 고전 문학과 역사 자료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자였다. 말 그대로 그는 한국의 지성사, 문화사에 독보적 존재였다. 그래서 그는 장관 자리를 마다하고,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그를 만나 본 적이 없지만, 유튜브를 통해 그의 강의를 들어보면, 우리 문화재에 대해 감칠맛 나게 해설 하는 말 그대로 그는 한국문화 전도사를 자임했다. 그리고 그의 나이는 77세라고 한다. 그는 한국문화와 서지학의 최고였다. 그의 튀는듯한 아이디어 덕분에 지금 국립중앙박물관은 세계 3위의 자리에 올라와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의 여행자들이 국립중앙박물관으로 몰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학의 지성이라는 그가 갑자기 무너지고 불명예 퇴진하고 말았다. 듣기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족자에 쓴 글이, 어느 애국자가 쓴 것이라고 세인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그러나 알고 보니 그 글씨는 애국자가 아닌, 친일 작가가 쓴 것으로 판명되었다. 이 소식에 학계가 뒤집어지고, 문화계가 무너져 버렸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불찰을 직고(直告)했다. 하지만 그를 주저앉힌 것은 따로 있었다. 그 작품은 자기의 개인 소장품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한국문화계, 박물관계, 서지학회 등이 세상에 고개를 들 수 없는 치욕을 받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자신이 소유한 작품을 중앙박물관에 전시했을까?

노욕(老慾)이었다. 노욕(老慾)이 노추(老醜)를 불러온 셈이다. 그의 노욕은 한국인을, 아니 세계인을 기만한 것이고, 속인 것이다. 나는 그분의 인품이 고결한 것을 믿는다. 그런데 소위 학문하는 사람인 대학 교수들, 지성인들, 종교인들도 순간적인 노욕으로 평생을 쌓아왔던 도덕적 고결함이 무너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필자는 신학자요, 목사이지만, 반세기 전부터 서양기독교 사료와 한국 근대사의 자료를 방대하게 모으기도 했다. 그래서 1980년 중반에 애서가 클럽이 주는 ‘애서가’ 상을 받기도 했고, ‘애서가 협회장’을 4년 했었다.

나는 주로 1600년대 전후의 구텐벍 인쇄체로 된 교부들의 원전, 예컨대 폴리갑에서 어거스틴까지 그리고 개혁자 요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의 자료를 모을 수 있는 데까지 50년을 그리했었다. 그리고 한국 근대사 특히 교회 사료 수집에도 올인했었고, 한국 장로교 신학과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려고 밤낮없이 자료를 수집했었다. 자료는 곧 돈이다. 집념이다. 자료를 찾다보면 맨 정신으로는 못한다. 그것은 곧 욕심이다. 끝없는 욕심이다. 그리고 그것은 내 학문의 정체성을 찾는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자료를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너무도 잘 이해한다. 그래서 귀중 본이 나오면, 빚을 내서라도 기어히 그것을 사고 만다.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 갑자기 물러난 것도, 그의 노욕(老慾)이 작동한 듯하다. 그는 인기 있는 문화해설사이자, 국립중앙박물관 관장이니 무엇이 더 부족했을까? 아무래도 순간적인 착각과 양심 불량이 작동했을 것이다. 모든 인간은 자기 분야에 다 그렇고 그런 인간뿐이다.

1980년대 초로 기억된다. 5.18이후 대학가는 민주화를 외치며, 밤이고 낮이고 데모로 세월을 보냈다. 그런데 전라남도 어느 대학에서 데모 주동자로 날리던 그가 학교에서 퇴학 처분을 받고, 내가 있는 대학으로 전학을 왔다. 그는 데모 주동자로 활동해 본 경험 때문인지, 내 방을 방문해서 상당한 고급 정보를 주었고, 나를 따랐다. 그는 당시 어느 도시의 시장 아들이기도 했다. 그의 대한 이야기를 더 해야겠다. 그는 집안이 좋아서 상당한 국보급 유물들을 소장하고 있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문헌이었다. 그가 고백한 내용은 이렇다.

그가 가진 이순신 자료에는 이순신 자신이 쓴 ‘장계’가 있었다. 그래서 당대 최고의 한국사 학자를 찾아가서 감정을 의뢰했었다. 며칠 뒤 그 유명한 교수를 찾아가서 원자료를 돌려받았는데 이상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장계’가 깔끔하게 잘려있었다. 그는 한국의 내로라 하는 국사학의 노 교수를 똑바로 보면서, “교수님! 경찰에 고발할까요! 신문 기자를 부를까요!” 했더니, 무릎을 꿇고 싹싹 빌면서, “원문을 돌려 드릴 테니 제발 용서해달라!”고 애원했다. 한마디로 한국사 학자의 노추(老醜)였다.

그 후 내 제자인 그는 그 유물을 해군 사관학교에 기증했었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의 ‘장계’를 한 부 복사해서 내게 선물로 주었다. 아쉽게도 40년이 지나는 동안 영인본이라도 그 두루마리를 찾을 길이 없다. 모든 분야에 전문가들은 다 노욕(老慾)이 있다. 그러나 노욕을 잘 다스려야 남은 생애가 편하다. 나는 나의 모든 자료를 모교인 총신대에 기증하고 나니 그렇게 홀가분하고 감사하기 짝이 없다. 노욕(老慾)은 노추(老醜)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약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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