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서에서 본 요한의 신앙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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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창환 목사(서울 강서교회)
김창환 목사

사도 요한(히브리어: יוחנן, 그리스어: Ιωάννης, 음역: 요한, 영어: John the Apostle), (6년경 ~ 100년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이다. 요한이라는 이름의 뜻은 ‘주님께서는 은혜로우시다’이며, 사도 요한은 야고보와 형제로도 알려져 있다. 전통적으로 요한복음, 요한 서신과 요한 계시록의 저자로도 알려져 있기도 하다. 그 세베대와 살로메의 아들로 초기에는 형인 야고보와 함께 가버나움에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더불어 갈릴리에서 어부로서 생활했다. 어느 날 게네사렛 호수에서 배를 타고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그들은,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아버지와 삯꾼들을 남겨둔 채로 즉시 따라 나서 그의 제자가 되었다.

전에 세례 요한의 제자였다.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요 1:35-37).

세례 요한의 두 제자는 안드레와 요한이다. 안드레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로, 요한복음 1장 35-39절에 기록되어 있다. 요한은 본서의 저자로 추정되며, 요한복음 1장 35-42절에 그의 이름이 언급된다. 두 제자는 세례 요한의 소개로 예수님을 찾아가게 되었다.

야고보의 형제로, 베드로, 안드레와 함께 물고기 잡던 어부다.
“거기서 더 가시다가 다른 두 형제 곧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이 그의 아버지 세베대와 함께 배에서 그물 깁는 것을 보시고 부르시니 그들이 곧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1-22).

요한은 巨富인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을 많은 유산을 팽개친 채 예수님을 따랐다. 내일 아침걱정 안 하는 사람이 없이 굶주리는 사람 많던 그 당시에 거대한 상속을 포기하고 따름에는 야고보와 요한이 초기 신앙이 얼마나 컸는지 가히 짐작이 간다.

가장 총애 받던 제자 3명의 수제자 중 하나다.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 형제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마 17:1-4).

요한은 예수님의 12제자 중 한 명이었을 뿐만 아니라, 베드로와 야고보와 함께 예수의 가장 가까운 측근으로 활동했다. 그는 변화산 사건(막 9:2-13)이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막 14:32-42) 등 중요한 순간마다 예수님과 함께 있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해 요한은 예수남의 가르침과 그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이해를 얻었으며, 이는 후에 그가 기록한 요한복음과 서신들에서 드러난다.

외골수 성격에 야심을 가진 자다.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주께 나아와 여짜오되 선생님이여 무엇이든지 우리가 구하는 바를 우리에게 하여 주시기를 원하옵나이다”( 막 10:35).

모친을 통해 예수님께 높은 직책을 요구할 만큼 야심이 큰 자이다.

우레와 같이 성격이 급하고 거친 자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시기 때문에 그들이 받아들이지 아니 하는지라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 이를 보고 이르되 주여 우리가 불을 명하여 하늘로부터 내려 저들을 멸하라 하기를 원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돌아보시며 꾸짖으시고”(눅 9:53-55).

요한의 성격을 보면 배와 그물을 다 버리고 즉각 예수님을 따른 것으로 보아 결단력 있는 자이다. 예수께서 형제 야고보와 더불어 ‘우레의 아들’이라고 칭한 것과 주님을 배척한 사마리아인들에게 불이 내리기를 원한 것으로 보아 급하고 활화산 같은 성격을 지닌 자이다.

주님께 사랑을 받기를 원했던 제자다
“예수의 제자 중 하나 곧 그가 사랑하시는 자가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누웠는지라”(요 13:23).

요한복음에는 요한이 직접적으로 등장하지 않지만, “예수께서 사랑하신 제자”(요 13:23, 19:26)로 간접적으로 언급한다. 이 표현은 단순한 자기 미화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규정한 신학적 자기 정체성이자, 겸손한 고백이다.

마지막까지 십자가 곁에 있었던 유일한 제자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요 19:26).

12제자 중 유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형장까지 좇은 것을 볼 때 용기와 의리 있는 자이다.

주님을 사랑하듯 마리아를 모신 자다.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7).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 중 특별히 많은 사랑을 받고 가까이서 주를 섬겼을 뿐만 아니라 어머니 마리아를 모시라는 예수님의 부탁을 받은 것으로 보아 책임감 있고 신뢰감 있는 자이다.

제일 먼저 무덤으로 달려간 제자다.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말하되 사람들이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다가 어디 두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겠다 하니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나가서 무덤으로 갈새”(요 20:2-3).

그리스도의 마지막 이적 때 있었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이르되 주님이시라 하니 시몬 베드로가 벗고 있다가 주님이라 하는 말을 듣고 겉옷을 두른 후에 바다로 뛰어 내리더라”(요 21:7).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요 21:23).

복음서 이후의 사도 요한

성령 강림 이후 베드로와 함께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에서 포교 활동을 벌였다. 그러한 요한을 바울은 야고보, 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 전승에서 44년경 헤롯 아그리바 1세의 박해를 피해 소아시아로 피신했으며 그곳의 일곱 교회, 즉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및 라오디게아 교회를 지도했다고 한다. 이레네우스의 증언으로 시작하는 전승에서 95년 로마 황제 도미티아누스의 기독교 박해 때 군병들이 요한을 붙잡아 밧모 섬으로 유배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다가, 96년 도미티아누스가 암살되자 사면을 받아 에베소로 귀환하여 요한복음, 요한 1. 2. 3 서, 요한계시록을 저술하였다.

요한은 너무 노쇠하여 제대로 설교를 못하여 항상 신도들에게 부축을 받았다고 한다. 요한은 항상 서로 사랑하라고 가르쳤는데, 매일 같은 말만 반복하는 요한에게 신도들이 불평을 하자 요한은 “사랑은 그리스도 교회의 기초요, 사랑만 있으면 죄를 범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요한은 ‘사랑의 사도’라고 부른다. 요한은 죽기 전까지 단 한 가지를 반복했다고 전해집니다. “자녀들아, 서로 사랑하라.” 이 단순한 메시지는 그가 평생 보고, 만지고, 믿고, 선포한 모든 진리를 집약한 것이다. 요한이 보여준 사랑의 신학과 계시의 영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깊은 도전과 위로가 된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제자들이 순교로 생을 마감한 것과 달리, 요한은 유일하게 자연사했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요한이 박해를 겪지 않은 것은 아니다. 테르툴리아누스라는 초대교회 교부는 그의 저서『시효론』(De Praescriptione Haereticorum)에서 요한이 로마에서 박해를 받았다고 기록했다. 그에 따르면, 요한은 도미티아누스 황제 시대(81-96년)에 로마로 끌려와 끓는 기름 가마에 던져졌다고 한다. 그런데 놀랍게도 요한은 이 끔찍한 고문에서 살아남았다. 뜨거운 기름 속에서도 아무런 해를 입지 않고 나왔다는 거다. 이 기적적인 사건 때문에 로마인들은 요한을 더 이상 해치지 못하고 밧모 섬으로 유배 보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비록 성경에 직접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초대교회에서 널리 퍼진 전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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