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는 단지 언급되지 않았을 뿐: 초대교회 전통과 성경 전반이 고발하는 생명 파괴

로빈 슈마허(Robin Schumacher)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기독교 변증가이자 작가인 로빈 슈마허의 기고글인 "제임스 탈라리코와 ‘낙태에 침묵하는 성경’ 주장, 다시 짚어보다"(James Talarico and the Bible’s silence on abortion, take 2)을 10월 26일(현지시각) 게재했다.

기독교 변증가로 활동하고 있는 슈마허는 작가로도 활동하면서 많은 책을 냈고 미국 내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최근 한 유권자 타운홀 행사에서 미국 텍사스주 연방 상원의원 후보인 제임스 탈라리코(James Talarico)는 성경이 낙태 문제에 침묵한다고 주장했다. 앞서 ‘제이미 커른 리마 쇼(The Jamie Kern Lima Show)’에서 “예수님은 낙태에 대해 한 번도 말씀하지 않으셨으며, 성경은 이 문제에 침묵한다”고 했던 발언을 되풀이한 것이다.

이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성경에는 “낙태하지 말라”는 직접적인 명령이 없고, 복음서에도 예수님이 낙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신 기록은 없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이 ‘성경은 태아의 생명을 어떻게 바라보는가’라면,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논의를 끝낼 수는 없다.

탈라리코의 주장은 낙태에 대한 종교적 반대의 근거를 부정하려는 오래된 논리와 맞닿아 있다. 미국 가족계획연맹(Planned Parenthood) 역시 성경에 낙태가 직접 언급되지 않는다는 점과 다양한 교파의 성직자들이 여성의 선택을 지지한다는 점을 내세운 바 있다.

이 주장을 검토하기에 앞서 논의의 범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지금 다루려는 것은 하나님의 존재 여부나 성경의 영감에 관한 논쟁이 아니다. 핵심은 성경 본문이 태아를 어떤 존재로 묘사하며, 그 생명에 어떤 가치를 부여하는가 하는 문제다.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것이 허용을 뜻하는가

예수님이 낙태를 직접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곧 그 행위를 허용하셨다는 뜻은 아니다. 어떤 주제에 대한 명시적인 언급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찬성이나 반대의 입장을 단정하는 것은 ‘침묵에 근거한 논증’의 한계를 드러낸다.

복음서에는 예수님이 강간이나 아동 학대의 모든 유형을 구체적으로 열거하며 정죄하신 기록도 없다. 그렇다고 그분의 가르침과 성품에 비추어 그러한 행위를 용인하셨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따라서 특정 사안에 관한 예수님의 견해를 살피려면 그분이 인정하신 성경의 가르침 전체를 함께 검토해야 한다. 예수님은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요 10:35)라고 말씀하셨으며, 아버지께 기도하시면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라고 고백하셨다.

그렇다면 낙태라는 단어의 등장 여부를 넘어, 성경이 인간의 생명과 태중의 아이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살펴봐야 한다.

성경은 태중의 아이를 어떻게 묘사하는가

성경은 무죄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엄중하게 다룬다. “살인하지 말라”(출 20:13)는 계명이 이를 분명히 하며, 잠언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 가운데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손”(잠 6:17)을 꼽는다.

낙태에 이러한 원칙을 적용하려면 태아가 성경에서 어떤 존재로 묘사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누가복음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누가복음 1장 41절과 44절은 태중의 세례 요한을 가리켜 헬라어 ‘브레포스(brephos)’를 사용한다. 같은 단어는 누가복음 2장 12절과 16절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님을 가리킬 때도 쓰인다. 누가는 태중의 아이와 출생한 아이를 모두 ‘아기’라는 말로 묘사한 것이다.

단어 하나만으로 현대의 모든 윤리적·법적 쟁점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이 본문은 태중의 생명을 출생한 아이와 전혀 무관한 존재로 취급하지 않는다. 필자는 이러한 언어의 연속성이 태아의 존엄성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근거가 된다고 본다.

출애굽기의 법은 무엇을 말하는가

출애굽기 21장 22–23절도 이 논의에서 자주 다뤄진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임신한 여인을 쳐서 낙태하게 하였으나 다른 해가 없으면 그 남편의 청구대로 반드시 과태료를 내되 재판장의 판결을 따라 낼 것이니라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이 본문은 싸움에 휘말린 임신부가 충격을 받아 아이를 잃거나 일찍 출산하게 되는 상황을 다룬다. 다만 해당 표현이 유산을 뜻하는지 조산을 뜻하는지, 이어지는 ‘해’가 임신부에게만 해당하는지 아이까지 포함하는지를 두고 해석이 나뉜다.

필자는 이 구절을 아이가 일찍 태어난 상황으로 이해하며, ‘다른 해’에는 임신부뿐 아니라 아이가 입은 피해도 포함된다고 본다. 본문이 피해의 대상을 임신부로만 명시하지 않은 채 “생명은 생명으로”라는 원칙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태중의 생명 역시 법적 보호의 대상이다.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도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본문을 해석했다. 그는 ‘다른 해’가 생명의 상실을 포함하는 심각한 피해를 뜻하며, 태아를 죽게 한 책임에도 “생명은 생명으로”라는 원칙이 적용된다고 설명했다.

이 구절의 해석에 논쟁이 있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그럼에도 성경이 임신부와 태중의 생명에 가해지는 폭력을 법적으로 다룬다는 점은, 성경이 태아의 생명에 아무런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는 주장과 거리가 있다.

모태에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돌보심

성경의 다른 본문들도 태중의 생명을 하나님의 창조와 돌보심 안에서 묘사한다. 시편은 자녀를 “여호와의 기업”이라 부르며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이라고 말한다(시 127:3). 이사야는 하나님을 “모태에서 너를 지은” 분으로 소개한다(사 44:24). 욥은 자신과 종이 동일한 창조주께 지음받았음을 고백하며 이렇게 묻는다: “나를 모태에 만드신 이가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우리를 뱃속에 지으신 이가 한 분이 아니시냐”(욥 31:15).

시편 139편 역시 모태에서부터 이어지는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노래한다: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시 139:13).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태에서부터 자신을 부르시고 어머니의 복중에서부터 이름을 기억하셨다고 고백한다(사 49:1). 예레미야에게도 하나님은 “내가 너를 모태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배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성별하였고”(렘 1:5)라고 말씀하신다.

이 본문들은 각각 시적 고백이나 특정 인물의 소명이라는 문맥에 놓여 있다. 현대의 낙태 문제를 직접 다루는 법 조항은 아니다. 그러나 태중의 생명이 하나님의 창조와 관심 밖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공통된 시각을 보여준다.

필자가 태아의 존엄성을 성경적으로 주장하는 이유는 어느 한 구절에만 있지 않다. 모태 안에서의 삶과 출생 이후의 삶을 이어지는 이야기로 바라보는 성경 전반의 증언에 있다.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문헌의 증언

초기 유대교와 기독교 문헌이 낙태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도 참고할 만하다.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는 율법이 자녀를 양육하도록 명하며, 태중의 아이를 없애거나 태어난 아이를 죽이는 행위를 금한다고 설명했다. 요세푸스는 기독교 교부가 아니라 유대인 저술가이지만, 당시 유대교의 생명 이해를 살피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한다.

초기 기독교 문헌인 『디다케』 2장 2절은 낙태와 출생 후의 영아 살해를 모두 금한다. 터툴리안(Tertullian) 역시 태중의 생명을 파괴하는 행위와 이미 태어난 생명을 빼앗는 행위를 연결해 비판했다.

이러한 문헌이 성경 자체와 같은 권위를 갖는 것은 아니다. 다만 초기 신앙 공동체가 인간의 생명에 관한 가르침을 낙태 문제에 어떻게 적용했는지 보여준다. 적어도 낙태에 반대하는 기독교적 입장을 현대에 갑자기 만들어진 주장으로만 볼 수는 없다.

성경의 침묵이라는 말만으로 끝낼 수 없는 논의

결국 탈라리코의 주장은 직접적인 언급이 없다는 사실과 윤리적 가르침이 없다는 판단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예수님이 낙태를 명시적으로 언급하지 않으셨다는 사실만으로, 성경이 태아의 생명에 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고 결론 내릴 수는 없다.

성경은 무죄한 생명을 보호하라고 명하며, 태중의 아이를 하나님의 창조와 돌보심 안에 있는 존재로 묘사한다. 초기 기독교 문헌도 이러한 생명 이해를 바탕으로 낙태를 거부했다.

필자는 이 누적된 증언이 태아의 생명을 존중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결론을 뒷받침한다고 본다. 낙태에 관한 성경적 논의는 특정 단어가 등장하는지만 확인하는 데서 끝날 수 없다. 성경이 인간을 어떤 존재로 바라보며, 그 생명을 어떻게 대하라고 가르치는지까지 함께 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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