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을 견디는 법: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쉐인 아이들먼 목사. ©기독일보 DB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쉐인 아이들먼 목사의 기고글인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Why is God silent?)를 10월 1일(현지시각) 게재했다.

아이들먼 목사는 캘리포니아주 랭커스터에 있는 로스앤젤레스 북쪽 웨스트사이드 크리스천 펠로우십의 창립자이자 수석 목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작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원히 잊으시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어느 때까지 숨기시겠나이까”(시 13:1).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실 때 우리는 기뻐한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아무런 대답이 들리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시간은 신앙생활에서 결코 낯선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침묵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기다림보다 즉각적인 결과를 원하기 때문이다. 연단의 불을 통과하기보다 가능한 한 빨리 그 불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이러한 시간을 통해 우리가 끈질기게 하나님을 붙드는 ‘돌파하는 기도(prevailing prayer)’를 배우도록 하신다. 존 파이퍼(John Piper)는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고 계시지만, 그것이 실제 삶에서 드러나고 증명되는 과정을 허락하신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는 종종 기다림이 따른다.

하나님의 침묵은 믿음에 대한 깊은 시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기다림의 시간은 결코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오히려 그 시간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깊이 다져가는 과정이 될 수 있다. 창세기 37장 이후에 펼쳐지는 요셉의 삶을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그는 형들에게 버림받아 구덩이에 던져지는 시험을 겪었고, 보디발의 집에서는 거짓 고발과 억울한 일을 당했으며, 결국 아무런 잘못 없이 감옥에 갇히는 고통까지 겪었다.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갈 수 있을까”, “왜 거짓말과 억울함을 감당해야 하는가”, “왜 이런 부당한 일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질 만한 시간이 계속됐지만, 하나님은 요셉을 잊지 않으셨다. 보이지 않는 시간에도 그를 빚고 준비시키고 계셨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이유

카터 콘론(Carter Conlon) 목사는 ‘하나님이 침묵하실 때 강건하게 서기’라는 메시지에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는 몇 가지 이유를 제시한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이미 말씀하셨기 때문에 같은 말씀을 계속 반복하실 필요가 없을 수 있다. 다니엘의 경우처럼 영적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신자가 끝까지 인내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우리의 내면에 저항이 있어 다른 목소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덮고 있을 수도 있고, 침묵 자체를 통해 우리의 관심을 하나님께로 돌리고 영적으로 깨우시는 경우도 있다. 때로는 그 시간이 하나의 시험과 연단의 과정일 수도 있다. 시편은 요셉을 가리켜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시 105:19)라고 기록한다.

그런데 때로 진짜 문제는 하나님이 말씀하지 않으신 데 있지 않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따르고 싶어 하지 않는 데 문제가 있을 수 있다. 하나님께서 주신 답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 우리는 마치 듣지 못한 것처럼 행동하기도 한다.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미 알고 있으면서 계속 ‘확증’을 구하고, 하나님께 다시 보여달라고 하거나 확인해 달라고 하며 새로운 표적을 요구한다. 그러나 마음 깊은 곳에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을 수 있다.

하나님의 인도를 진정으로 원한다면 바로 그 지점부터 정직하게 돌아봐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협상하는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분명하게 말씀하신 부분이 있다면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전에 먼저 그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필자 역시 하나님의 뜻을 듣고 싶지 않아 영적인 걸음을 지체했던 때가 있었고, 이미 분명하게 다뤄야 할 문제를 외면하면서 새로운 방향과 더 많은 인도를 구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우리를 앞으로 밀어주시기보다 이미 지나쳐 온 문제 앞으로 다시 데려가 그 문제를 먼저 직면하고 해결하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 분명하게 요구하신 것을 계속 외면하는 것은 단순한 망설임이 아니라 불순종의 문제가 될 수 있다. 사울 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자신의 방식으로 수정한 뒤 그것을 제사라는 종교적 행위로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사무엘은 하나님께서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신다고 책망했다. 이 문제를 지나치게 무겁게 다뤄 사람을 낙심시킬 필요는 없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순종하는 일의 중요성을 가볍게 여겨서도 안 된다.

기다림은 버려지는 시간이 아니다

하나님의 침묵처럼 느껴지는 시간 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우리를 빚고 다듬으며, 불순물을 제거하고 정결하게 하며, 무너진 부분을 다시 세우고 회복시키실 수 있다. 우리는 흔히 결과가 나타나야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은 기다림 자체가 하나님의 훈련 과정이 될 수 있음을 반복해서 보여준다. 아브라함도 기다렸고, 요셉도 기다렸으며, 다윗도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뒤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침묵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쉽게 얻을 수 없는 영적인 인내와 깊이를 배우지 못할 수도 있다. 카터 콘론의 표현처럼 “검은 편안한 해먹 위에서가 아니라 단단한 모루 위에서 두드려져 만들어진다.” 신앙도 마찬가지다. 편안함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있으며, 기다림과 실패, 응답 없는 기도와 이해되지 않는 상황을 통과하면서 비로소 배우게 되는 신뢰가 있다. 하나님의 침묵은 반드시 하나님의 부재를 의미하지 않는다.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기도

웨슬리 듀웰(Wesley Duewel)은 『위대한 돌파의 기도(Mighty Prevailing Prayer)』에서 돌파하는 기도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것을 구할 때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그는 하나님의 뜻이 방해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영적인 저항으로 인해 그 뜻의 성취가 지연되는 상황에서도 신자가 기도로 끝까지 하나님을 붙들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한 우리가 원하는 시점이 아니라 언제 응답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에 가장 큰 유익이 될 것인지는 하나님만이 아신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시간은 우리의 시간표와 다를 수 있지만 결코 잘못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너지는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듯한 순간에도 돌파하는 기도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것을 구한다면 눈앞의 상황만 보고 “불가능하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은 인간과 자연의 한계를 넘어 일하실 수 있는 주권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돌파하는 기도가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강제로 얻어내는 기술이라는 뜻은 아니다.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꺾어 우리의 뜻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뜻 안에 머물며 그분을 신뢰하도록 변화되는 데 있다. 진정한 기도는 하나님을 조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붙드는 것이다.

기도가 우리 안에서 이루는 일

끝까지 하나님을 붙드는 기도는 상황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는 사람 자신을 변화시킨다. 부흥을 위한 통로가 되고, 흔들리는 믿음을 붙드는 기초가 되며, 절망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게 한다. 메마른 영혼이 다시 생명수를 찾도록 돕고,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순간에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게 한다. 무엇보다 기도는 우리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간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단순히 원하는 답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알아간다. 기다림을 통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배우고, 침묵을 통해 자신의 동기를 발견하며,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뜻보다 선하다는 사실을 배워간다. 때로 우리는 기도를 시작할 때 문제만 해결되기를 원하지만, 긴 기도의 시간을 통과한 뒤에는 문제보다 하나님 자신을 더 붙들게 되기도 한다. 이것이 기다림이 결코 헛되지 않은 이유다.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

하나님의 침묵은 고통스럽다. 시편 기자들 역시 그것을 숨기지 않았다. “어느 때까지니이까”라는 절규는 믿음이 없는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의 기도다. 그래서 하나님의 침묵을 경험할 때 자신의 질문과 아픔을 억지로 감출 필요는 없다.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말할 수 있다. 다만 그 침묵만으로 하나님이 우리를 버리셨다고 결론 내려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미 무엇을 말씀하셨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순종하지 않고 미뤄둔 것은 없는지 살펴봐야 하며, 자신의 뜻만을 관철하려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도 점검해야 한다. 그리고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을 때에는 말씀을 붙들고 인내하며 계속 기도해야 한다.

기다림의 시간에도 하나님은 일하실 수 있다. 우리가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돌파하는 기도는 메마른 영혼을 다시 강건하게 하고, 소망을 새롭게 하며, 믿음에 영양분을 공급한다. 우리의 시간표보다 하나님의 지혜를 신뢰하며 그분을 기다리는 법도 가르쳐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그분을 기다려야 한다. 기도하고 말씀을 붙들며, 이미 주신 말씀에 순종하고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침묵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며, 하나님의 기다림 또한 결코 하나님의 무관심을 의미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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