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주의의 로마, 데브레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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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정성구 박사

헝가리의 데브레첸을, ‘칼빈주의의 로마’라고 한다. 또 다른 별칭으로 데브레첸은 ‘헝가리의 제네바’라고 불리 운다. 특히 데브레첸 개혁주의 대학교(Debrecen Reformed University)는 1538년에 설립된 것으로, 칼빈이 ‘제네바 아카데미’를 세운 1559년보다 21년이 앞서 있다. 헝가리에는 데브레첸 개혁주의 대학교 말고도, 1531년에 세워진 사로스파탁 개혁주의 대학(The Reformed College at Sarospatak)이 있다. 그리고 1781년에 세워진 라데이 대학(The Ráday College)이 있는가 하면, 1585년에 세워진 파파 개혁주의 대학(Pápa Reformed College)도 있다.

한국의 독자들은 세계 칼빈주의 운동의 본산은 네덜란드라고 알고 있다. 그리고 한국교회는 청교도 신학의 전통을 이은 구 프린스턴과 멕코믹 신학교에서 온 선교사들의 신앙을 이어받은 교회라고 알고 있다. 특히 네덜란드 이민자들이 전해준 아브라함 카이퍼와 헬만 바빙크의 칼빈주의 신학 체계, 또는 칼빈주의 사상의 바탕에 세워진 한국 장로교회다. 특히 박형룡 박사의 교의학의 저작의 바탕은, 루이스 벌코프의 교의신학이다. 그는 거기서 칼빈과 아브라함 카이퍼, 바빙크를 소개했다. 그런데 헝가리 개혁교회가 어떻게 위대한 개혁주의 신학의 전통과 일찍 칼빈주의 사상을 가르치는 개혁주의 대학들에서 수많은 대학자와 목회자들을 세우게 되었을까?

우리 장로교회는 미국 선교사들이 전해준 그대로 신학과 신앙의 전통을 갖고 있지만, 유럽의 교회들과의 관계가 없었고, 별로 접촉도 없었다. 더욱이 헝가리는 반세기 동안 공산 치하에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외교 관계도 1980년대 후반부터 있었다. 필자는 네덜란드 암스텔담에서 개혁주의와 신학 특히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을 연구했다. 그리고 여러 미국의 신학교들에서 연구 교수로 공부했었다. 그러나 헝가리 교회와 개혁 신학은 들은 바도 없었다.

그런데 1986년 ‘제4차 세계 칼빈학회’가 헝가리 데브레첸 개혁주의 신학 대학교에서 열렸다. 당시 한국 대표로는 한철하 박사와 이종성 박사와 그리고 필자가 동행했었다. 그 대회에서 필자는 설교 하는 영광을 얻었다. 그 당시 헝가리는 아직도 공산당의 지배하에 있었다. 당시 나는 모든 순서를 혼자 담당했었는데, 예배 중 기도하면서, “오른손에 일곱 별을 잡으시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운행하시는 주님께서 헝가리 개혁교회에 참다운 자유를 달라!”고 뜨겁게 나는 기도했었다. 그리고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변화 산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본문으로, 이 시대에 “칼빈을 단지 학문적으로 연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먼저 우리 시대에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라고 한국서 했던 것처럼 힘 있게 외쳤다.

예배의 모든 진행을 혼자서 했기에, 축도를 한국말로도 하고 영어로도 했다. 문제는 내 부족한 영어 설교가 전 세계에서 최고의 칼빈 학자들 100여 명과 헝가리 지도자들이 제대로 알아들었는지가 걱정이 되었다. 강단을 내려오자, 미국의 친구들과 헝가리 교회 지도자들이 포옹하면서 엄지척을 올렸다. 헝가리 개혁교회 학자들과 목사들은, 반세기 동안 공산 치하에 고생하다가 이 같은 설교를 처음 듣고 환호했다. 500년 칼빈주의 전통을 가진 헝가리 교회가 반세기 동안 큰 소리 한번 못 치다가 개혁 개방의 물길이 터진 것이었다. 그들의 찬양은 힘이 있었고 기도도 뜨거웠다.

데브레첸은 과거 헝가리의 임시 수도이기도 했지만, 칼빈주의 신학과 신앙의 중심이었다. 중심 거리에는 ‘Calvin Street’가 있고, 데브레첸 개혁주의 대학 입구에는, 칼빈과 쯔윙글리 등의 부조물이 있었다. 헝가리 교회는 자신들을 향하여 당당히 칼빈주의자 교회(Calvinist Church)라고 밝히고 있다. 필자는 그 후 수차에 걸쳐서 데브레첸 대학을 방문했었고, 종교개혁의 도서관은 무려 60만 권의 장서가 소장되어 있었고, 16세기 개혁자들의 도서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헝가리 교회의 대표적 신학자이자, 총장이었던 보톤드 갈 박사(Botond Gaal)와 여러 차례 교제했다. 그리고 나의 책, ‘한국교회사 설교사’가 2002년에 Koreai református igehirdetők 헝가리 칼빈 출판사에서 번역 출판되었다. 당시 필자는 그 공적을 인정받아, 500년 전통의 개혁주의 대학으로부터 ‘명예 신학 박사(Doctor Diviniti)’ 학위를 받기도 했다.

헝가리 개혁교회는 16세기부터 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쌍두마차로 칼빈주의 사상으로 함께했다. 헝가리의 신학자와 목회자 거의 모두가 암스텔담, 캄펜, 라이덴, 프라너커 등에서 공부했었다. 20세기에는 헝가리의 교의 신학자 예노 세베스타인(Jeno Sebestyn)은 ‘헝가리의 아브라함 카이퍼’라는 별명을 들었다. 그는 부다페스트 신학교 교의학 교수로 네덜란드 암스템달 뿌라야 대학에서 외국인으로는 최초로 명예 신학 박사를 수득했다. 네덜란드와 헝가리는 칼빈주의 신학의 쌍두마차였다. 심지어 아브라함 카이퍼의 두 딸들이 헝가리에서 교회 일을 돕기도 했다.

역사적으로 보면, 헝가리 교회는 1552년에 데브레첸 대회에서 헬베틱 고백서(Helvetic Confession, 제 二 스위스 고백서)를 채용했다. 헝가리 교회는 칼빈과 함께 일하던 하인리히 불링거(Heinrich Bullinger, 1504~1575)의 사상을 그대로 이어받았다.

앞으로 한국교회는 앞선 개혁주의 사상을 배워야겠다. 앞으로 우리 한국교회가 세계적으로 칼빈과 칼빈주의 운동의 보루가 되었으면 한다.

#정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