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떠난 다섯 살의 텅 빈 저녁, 아버지 직업란에 ‘X’를 쳐야 했던 초등학생 시절의 가난, 그리고 끊임없이 이어지던 서류 탈락과 막막한 공백기. 신간 『기다림의 시간을 걷는 당신에게』는 흔히 볼 수 있는 극적인 반전이나 화려한 성공담을 노래하지 않는다. 대신 끝이 보이지 않는 시간 속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자기 자리를 지켜낸 한 기독교 학교 교목의 담담하고 정직한 고백을 담아냈다.
상처 한가운데 심긴 작은 씨앗, "학교가 교회 같았으면"
저자의 유년 시절은 결핍이라는 단어를 배우기도 전에 결핍을 먼저 몸으로 겪어낸 시간이었다. 가정환경 조사서의 빈칸을 들킬까 봐 전전긍긍하던 아이는, 조건 없이 이름을 불러주고 상처보다 마음을 먼저 알아주던 ‘교회’에서 온기를 경험한다. 그리고 “학교가 교회 같았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는다. 이 투박한 한 문장은 훗날 저자가 숱한 좌절을 딛고 교목이 되어, 매일 아침 교문에서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작지만 끈질긴 기도 모임을 지켜내는 흔들림 없는 원동력이 된다.
미화 없는 정직한 회고, “그때는 몰랐다”
이 책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과거를 승자의 시선으로 섣불리 포장하지 않는 정직함이다. 저자는 아픔과 실패의 순간들을 “그때는 몰랐다”는 담백한 문장으로 풀어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마침내 교실에 섰을 때도 동화 같은 결말은 찾아오지 않는다. 수업 내내 엎드려 자는 아이, 마음을 닫은 빈 의자 앞에서 저자는 교목이라는 이름의 무력감과 자신의 한계를 처절하게 마주한다. 하지만 그가 끝내 도망치지 않고 그 자리에 남아있었을 때, 아무것도 듣지 않는 줄 알았던 아이가 훌쩍 다가와 묻어둔 질문을 꺼내놓는 뭉클한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기다림의 계절을 통과하는 이들을 위한 위로
고난을 통과했다고 해서 모두가 화려하게 빛나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인생의 어떤 계절에는 빛나는 것보다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이 더 큰 믿음일 수 있다"고 묵묵히 고백한다. 각 장의 끝에는 짧은 성경 구절과 묵상이 실려 있어, 깊고 고요하게 하루의 마음을 다잡기에 제격이다.
응답이 지연되는 시간 앞에서 스스로를 너무 빨리 ‘실패’라 단정 짓는 사람들, 눈에 띄는 열매가 없음에도 매일 묵묵히 씨앗을 뿌리고 있는 청소년 사역자와 교사들에게 이 책은 진한 공감을 전한다. 늦어지는 것은 결코 끝난 것이 아니며, 버티는 동안 우리는 단단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은 가장 따뜻한 방식으로 증명해 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