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에게서 배우는 지도력

오피니언·칼럼
편집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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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창세기 41장 1~43절
대림다문화센터 대표 이선규 목사.

“만 이 년 후에”로 시작되는 본문의 말씀에는 인간의 불신실함에 대한 고발이 담겨 있다.

보디발의 아내가 한 거짓 고발로 옥에 갇힌 요셉은 어느 날 꿈을 꾸고 근심에 잠긴 두 관원의 꿈을 해몽해 주었다. 요셉의 해몽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사흘 후 복직했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당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에게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알려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그 역시 요셉을 옥에서 구해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직의 기쁨에 취해서였는지, 그는 2년이 지나도록 요셉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본의는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신실하지 못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우리도 이런 실수를 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혹시 이것이 나 자신의 이야기는 아닌지 돌아보아야 한다.

“만 이 년 후에”라는 말씀에는 위대한 인내에 대한 찬사도 담겨 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가 한 거짓 고발 때문에 옥에 갇혔지만, 자신의 억울함을 풀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어떤 고통이든 견디기 어렵지만, 억울하게 당하는 고통은 더욱 견디기 힘들다. 그럼에도 요셉은 그 긴 시간을 견뎌 냈다. 실로 위대한 인내의 모범이 아닐 수 없다. 그 비결은 무엇이었을까?

먼저, 모든 일이 마침내 바른 데로 돌아간다는 사필귀정(事必歸正)의 믿음, 곧 하나님께서 의롭게 판단하신다는 확고한 신앙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는다. 또한 고통의 시간을 봉사의 시간으로 바꿀 줄 아는 지혜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요셉은 자신의 운명을 하나님께 맡겼다. 두 관원의 근심을 살피고 도왔던 것처럼, 갇혀 있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보람 속에서 자신의 고통도 이겨 냈을 것이다.

지금 억울한 고난으로 괴로워하고 있는가? 요셉에게서 고난을 이겨 내는 믿음과 지혜를 배우기 바란다. 이러한 인내를 갖춘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만 이 년 후에”라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감사도 깔려 있다.

하나님은 낮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높이시고, 천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귀하게 세우시는 분이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종으로 팔려가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 숱한 고난을 겪었다. 그 시간은 하나님께서 그를 높이시기 위해 마련하신 준비 과정이었다.

요셉은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켰고, 지혜의 근본이신 하나님은 그에게 지혜를 더해 주셨다. 바로의 꿈을 해몽할 때에도 요셉은 그 능력이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밝혔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직한 지 만 2년 후, 바로는 나라의 존망이 걸린 꿈을 꾸었다. 바로가 꿈을 해석할 사람을 찾자, 술 맡은 관원장은 비로소 요셉을 기억하고 그를 바로에게 소개했다.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요셉이 바로 앞에 서게 된 것이다.

이 일을 계기로 애굽의 총리가 된 요셉은 7년의 풍년 동안 이어질 7년의 흉년을 준비했다. 그리하여 애굽 백성과 이스라엘 자손을 기근에서 구하는 큰일을 감당했다. 놀라운 신분의 변화에도 요셉은 자만하지 않았다. 우리나라에도 이처럼 신실한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충성에는 이러한 신실함의 의미도 담겨 있다.

돌이켜 보면 형들의 횡포와 술 맡은 관원장의 불신실함, 심지어 하나님께서 자신을 외면하시는 것처럼 느껴졌을 시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 안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초조해하고 있는가? “만 이 년 후에”를 준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운 섭리를 믿고 묵묵히 전진하기 바란다.

요셉의 일생이 보여 주듯이 지도자는 먼저 자신의 삶을 의롭게 가꾸어야 한다. 인내와 화해의 자세 역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필수 덕목이다. 어떤 위치에 있든 국민의 일치와 화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요셉이 애굽의 총리로 나라를 다스릴 때, 가나안 땅에도 흉년이 들었다. 양식을 구하러 애굽에 온 야곱의 아들들은 그곳에서 요셉과 극적으로 다시 만났다. 이것이 어찌 우연이었겠는가? 이처럼 꿈같은 형제의 만남이 한반도에서도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있겠는가?

남한에서는 남는 식량의 보관을 걱정하는 반면, 북한에서는 식량 부족과 기근의 소식이 들려온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요셉과 형제들의 상봉이 우리에게 가르쳐 주는 것은 넓은 도량으로 서로를 품는 마음이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남을 위해 선한 일을 힘써 행하면, 그 선행이 훗날 자신에게 닥칠 어려움 속에서 생명을 건지는 도움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성경이 우리에게 기회 있는 대로 선을 행하라고 권면하는 이유를 되새겨야 한다.

물론 6·25전쟁을 비롯한 지난날의 상처를 생각하며 “어떻게 그런 이들과 화해를 말할 수 있는가”라고 반대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팔아넘긴 형들을 대하는 요셉의 태도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라고 말했다. 이어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라고 고백했다. 그리고 형들과 그들의 자녀를 기르겠다고 약속하며 그들을 위로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러한 요셉의 넓은 아량이 필요하다. 여야가 서로 다투고, 동서가 비난을 주고받으며, 가진 자와 소외된 자 사이에 갈등의 골이 깊어질수록 사회는 더욱 각박해진다. 이럴 때일수록 서로를 품고 화해를 이루는 지도자가 절실하다.

이제 통일이 꿈을 넘어 현실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하며 기도한다. 이를 위해 요셉처럼 넓은 마음으로 화해를 이루는 지도자가 나오기를 소망한다. 요셉과 형들의 극적인 만남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지금 고난에 직면해 있는가? 그렇다면 그 시간을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 용광로를 통과하는 과정으로 받아들이기 바란다. 현재는 힘들고 어려워도 고난 너머에 예비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인내하며 통일의 꿈을 이루어 가기 바란다.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높이시고, 괴로움을 위로하시며, 풍성한 은혜로 채우시는 손길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성공을 갈망한다. 그렇다면 요셉처럼 어려운 환경을 이겨 내고, 유혹을 물리치며, 넓은 마음을 품기 바란다. 그것이 요셉에게서 배우는 성공의 비결이다.

요셉은 열일곱 살의 어린 나이에 애굽에 팔려가 갖은 고생을 했지만, 형들에 대한 적개심과 보복심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오히려 고난을 이겨 내고 형들을 품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지도자가 필요하다.

이웃을 향한 포용과 너그러움을 잃고 적개심에 사로잡힐 때, 사람과 공동체는 파멸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 빌립보서 4장 5절은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고 말씀한다. 오늘의 지도자들, 특히 정치 지도자들이 이 말씀에 귀 기울여 인내와 화해, 관용의 지도력을 실천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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