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크리스천데일리인터내셔널(CDI)은 롭 핸드의 기고글인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자유가 사라질 때"(When freedom of religion is not)를 9월 12일(현지시각) 게재했다.
롭 핸드는 더 타이드(The Tide®)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코디네이터다. 그는 미국 내 사역과 국제 사역에 참여해 왔으며, 동아시아에 거주한 경험이 있고 중미와 남미, 동남아시아, 유럽에서 복음 전도 프로젝트에 참여했다. 그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향한 예수님의 사랑을 듣고 복음에 응답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열정을 품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남아시아 전역에서 거센 반기독교 정서가 확산되며, 주류 종교와 다른 신앙을 선택한 이들의 삶을 위협하고 있다. 이른바 ‘종교의 자유(Freedom of Religion)’ 법과 ‘신성모독 금지(Anti-Blasphemy)’ 법이 오히려 기독교인을 향한 불신과 적대감을 키우는 배경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러한 법들은 가장 기본적인 인권 가운데 하나인, 정부의 부당한 간섭 없이 신앙을 선택하고 예배할 권리를 제한할 위험이 있다. 특히 인도와 파키스탄에서는 종교적 긴장이 근거 없는 고발과 부당한 체포,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사례들이 반복되고 있다.
국가가 개인의 신앙 선택과 종교 실천의 자유를 보장해야 한다는 원칙은 국제사회에서도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제로 많은 유엔 회원국이 ‘시민적 및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ICCPR)’에 가입해 종교와 양심의 자유를 보호할 의무를 지고 있다. 인도와 파키스탄 역시 이 규약의 당사국이다.
그럼에도 남아시아 곳곳에서는 종교 자유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 아래 처벌받는 사람들
인도에서는 여러 주가 이른바 ‘종교 자유법’ 또는 ‘개종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이러한 법들은 원칙적으로 강압이나 사기, 부당한 유인에 의한 개종을 막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문제는 실제 집행 과정에서 평범한 종교 활동이나 기독교인의 모임, 전도 행위까지 ‘강제 개종’ 의혹으로 확대 해석될 수 있다는 점이다.
최근 마디야프라데시(Madhya Pradesh)주에서는 6명의 목회자와 한 명의 성도가 이러한 법에 따라 징역형을 선고받은 사건이 있었다. 이들은 한 기독교인 가정에서 열린 어린이의 생일파티에 참석하고 있었다.
당시 초대받지 않은 한 이웃이 술에 취한 채 나타나 소란을 일으켰고, 이후 많은 주민들이 현장에 몰려들면서 갈등이 커졌다. 한 참석자가 상황을 진정시키기 위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오히려 목회자들을 상대로 종교적 개종을 시도했다는 취지의 고발이 제기됐다.
파티를 주최한 사람이 아무런 강압적 행위가 없었다고 증언했음에도 사건은 결국 유죄 판결로 이어졌다.
이런 사례는 ‘강제 개종을 막는다’는 법의 취지와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제한한다’는 현실 사이의 긴장을 보여준다.
파키스탄의 신성모독법과 폭력의 위험
파키스탄에서도 상황은 심각하다. 최근 한 지역에서는 불태워진 코란이 들어 있는 익명의 소포가 한 상점 주인에게 전달된 뒤, 한 기독교인이 코란을 훼손했다는 확인되지 않은 소문이 퍼졌다. 이에 분노한 군중이 기독교인들이 거주하는 지역에 몰려들었고, 여러 기독교 가정이 위협을 받았다.
피고발인과 그의 가족은 결국 무장 경찰의 보호 아래 대피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폭력 사태를 막기 위해 개입하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질문도 남는다.
사소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고발이 대규모 폭력과 보복으로 이어질 수 있는 법적·사회적 환경 자체를 개선하지 않는다면, 비슷한 사건은 언제든 반복될 수 있다.
신성모독법이나 개종금지법이 실제 폭력을 부추기거나 특정 종교 공동체를 압박하는 수단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강제 개종을 막는 것과 종교 선택을 막는 것은 다르다
기독교 신앙의 관점에서도 강압이나 사기, 폭력을 통한 개종은 정당화될 수 없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은 각자가 자유롭게 내려야 하는 개인적인 결단이다. 신앙은 강제로 만들어질 수 없으며, 정부는 종교를 이용한 착취나 폭력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러나 사람들을 강압과 폭력으로부터 보호하는 것과, 다른 종교에 대해 듣거나 스스로 신앙을 선택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전자는 인권 보호일 수 있지만, 후자는 오히려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종교의 자유’를 명분으로 만들어진 법이 개인의 종교 선택과 표현, 전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 법은 자신의 이름과 정반대의 결과를 낳게 된다.
종교의 자유는 단지 자신의 기존 신앙을 유지할 권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새로운 신앙에 대해 듣고, 질문하고,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며, 자신의 믿음을 다른 사람과 평화롭게 나눌 권리까지 포함해야 한다.
기독교인들에게 치명적인 결과
종교 관련 법률을 위반한 것으로 판단될 경우 처벌은 국가와 혐의에 따라 매우 무거울 수 있다. 수년간의 징역형은 물론이고, 일부 국가의 신성모독 관련 법률에서는 극단적으로 무거운 형벌이 규정돼 있다.
예수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복음을 전하고 제자를 삼는 일을 신앙의 중요한 의무로 받아들이는 기독교인들에게 이러한 법은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이 문제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성경에서 양각 나팔, 즉 ‘쇼파르(shofar)’는 하나님의 백성에게 주의를 촉구하고 위기의 순간 행동을 요청하는 강력한 신호였다.
오늘날 남아시아 곳곳에서 벌어지는 종교적 박해와 신앙의 자유를 제한하는 제도들은 교회에 다시 한 번 경고의 나팔을 불도록 요구하고 있다.
우리가 싸워야 할 방식
그러나 이 싸움은 폭력이나 보복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기를 들고 동일한 방식으로 맞서는 것이 아니라, 기도하고 대변하며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 것이다.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라고 말했다(엡 6:12).
그리스도인은 박해받는 형제자매를 위해 기도하고, 종교 자유가 보호받도록 목소리를 내며, 도움이 필요한 공동체를 실제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영적 전쟁이라는 언어는 다른 사람을 적으로 규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사람을 미워하지 않으면서도 악과 불의에 맞서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언어여야 한다.
국경을 넘어가는 또 다른 물결
감사하게도 남아시아에는 또 다른 종류의 물결도 흘러가고 있다. 바로 라디오 전파다.
여러 기독교 사역 단체들은 현지 언어로 성경 말씀과 찬양, 복음 메시지를 방송하며 사람들이 자신의 언어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들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전파는 국경과 정치적 장벽을 넘어간다. 외부인의 접근이 쉽지 않은 지역이나 공개적으로 기독교 신앙을 접하기 어려운 곳에서도 사람들은 라디오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복음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사역은 특히 박해받는 기독교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매일 들려오는 성경 말씀과 찬양은 외딴 지역에 있는 성도들에게 자신들이 잊히지 않았다는 위로를 전하고, 다른 기독교인들과 영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복음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도 이러한 방송은 비교적 안전하게 기독교 신앙을 접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다.
참된 자유를 위해
기독교 신앙은 궁극적인 자유가 정치 제도나 경제적 환경만으로 완성되는 것은 아니라고 고백한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그렇다고 현실의 종교 자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은 아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이 자신의 양심에 따라 믿고, 질문하고, 거부하고,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보호돼야 한다. 그래야 신앙 역시 강요가 아니라 진정한 결단이 될 수 있다.
전 세계 곳곳에서 기독교인을 향한 적대감과 종교적 긴장이 이어지는 가운데, 많은 성도들이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라고 묻는다.
우리는 기도할 수 있다. 박해받는 이들을 대신해 목소리를 낼 수 있다. 종교 자유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을 지원할 수 있다. 그리고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까지 복음을 전하는 사역들을 도울 수도 있다.
‘종교의 자유’라는 이름의 법 때문에 오히려 위협받는 사람들이 있다면, 교회는 그 역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
진정한 종교의 자유란 특정 신앙을 강요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믿고, 믿지 않고, 질문하고, 선택하며, 자신의 신앙을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