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백성’이 아니고, ‘국민’이다. 우리나라가 오늘날처럼 자유민주주의 국가가 되어, 우리의 손으로 대통령을 뽑는 선거를 한 것은 오래지 않다. 본래 우리나라는 500년 동안 왕조 국가였기에, 선거가 무엇인지, 투표가 무엇인지 모르는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이 땅에 서양 선교사들이 들어오고, 먼저 학교와 교회와 병원을 세우고, 보육원을 세우면서 이 땅에 어두움을 몰아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성도들이 불어났고, 문맹이 퇴치되었다. 미국, 호주, 캐나다 선교사들의 경쟁적인 선교활동이 세상을 바꾸었다. 특히 장로교회에서는 1901년 평양 장로회 신학교를 세우고 1907년에 첫 졸업생 7명을 배출하고, 목사로 안수했다. 그리고 5년 후인 1912년에 드디어 조선예수교 장로회 총회를 개최했다.
한국장로교회는 일찍이 민주주의 의회 정치를 학습했다. 그런데 하나였던 장로교회가 지금은 수백 개의 총회로 분열되어 있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다. 누구든지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총회를 만든다. 이것도 민주주의 훈련 덕분이던가! 유럽교회의 입장으로 본다면, 한국장로교회는 교리와 신앙이 같은데도 서로가 머리가 되려는 ‘탐욕’ 그 자체에 있다. 이런 가운데 해아릴 수 없이 많은 총회가 이번 주에 열린다.
조선예수교장로회 제1회 총회장은 선교사 언더우드(H.A. Underwood) 목사가 선출되었고, 부총회장은 길선주 목사였다. 기타 임원들도 선출되었다. 총회는 전국적인 대표제 조직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조선은 백성이 국가의 지도자를 선거로 뽑는 민주공화국이 아니었다. 그런데 교회는 이미 교인 →장로 대표 →노회 →총회라는 대표제가 구조적으로 작동하고 있었다. 어두웠던 우리 민족이 복음에 눈을 뜨고 장로교회의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이미 민주주의의 경험을 쌓아 왔다. 양반과 상놈을 없애고, 남녀를 구별치 않고, 복음 앞에서는 즉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람이 평등하다’는 사실을 교회의 훈련을 통해, 시스템을 통해 자연스럽게 학습하고 경험했다. 교회 안에서 평신도가 지도자를 선출했다는 말은, 목사 혼자서 교회를 독단으로 목회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가 무엇인지도 모르던 시절, 한국 초기의 장로교 교인들은 교회 생활을 통해, 투표를 통해 대표자를 뽑고, 회의와 토론 그리고 표결을 통해 모든 것을 결정하는 것이 오늘의 자유민주의 훈련이었다. 그래서 교회는 전국적으로 조직망을 갖고 있었다. 예컨대 총회가 구성되기 전에 이미 ‘황해 노회’ ‘경상노회’ ‘함경도 노회’ ‘남평안노회’ ‘북평안노회’ ‘경기 충청노회’가 있었다. 당시는 주재소(파출소) 보다 교회가 더 많았고, 전국적 조직망(Network)을 통해 세계의 흐름을 목회자들의 설교를 통해서 성도들이 잘 알고 있었다.
왕조 시대는 그냥 가난한 백성들이었다. 그러나 복음으로 백성들은 깨어나기 시작했고, ‘회의하는 법’ ‘대표자 파송법’ ‘회의록 작성법’ ‘재정 공동관리법’ ‘지도자 선출법’을 잘 알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교회의 주일학교와 기독교 학교는 성경공부 교육을 통해 참다운 민주시민의 삶을 살게 하는 역할을 했다. 그리고 국민이 주권의 주체라는 사상도 이미 알고 있었다. 즉 주권이 왕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국민이 주권자라는 의식이 3.1운동에 연결되고, 임시 정부로 연결되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일제로부터 1945년 광복을 맞았고, 1948년 8월 15일,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대한민국을 세웠다. 그러나 해방공간 3년은 신탁통치 기간이었는데, 북의 간첩 ‘성시백’ 등의 방해 공작으로 몇 번의 위기를 맞기도 했다. 하마터면 우리나라는 공산주의자의 손에 먹히고 말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이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그때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한미동맹, 기독 입국론을 주장하는 이승만이 혜성처럼 나타나 선거를 통해 나라를 세웠다. 그의 미국 민주주의 국가관은 곧 청교도 정신이고, 청교도 정신은 종교 개혁자 요한 칼빈의 정신이기도 했다.
부정선거는 도적질이고 반민주적이다. 선거는 공정해야 하고, 부정선거로 당선된 사람은 무효가 될 뿐 아니라, 부정선거를 조작한 자는 법에 따라 처벌받는 것이 옳다. 그런데 1948년 5월 10일에 우리나라는 최초로 대의정치를 위해 선거를 실시했다. 본래 5월 9일이 선거일이었지만, 그날이 마침, 주일(일요일)이었기 때문에 전 기독교인들이 선거에 참여해야 하기에 월요일 곧 10일로 바꾸었다. 그리고 이승만 박사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의회를 구성하고, 1948년 8월 15일 자유대한민국을 선포했다. 그리고 이것이 우리나라의 ‘건국절’이다. 광복절과 건국절은 엄연히 다르다. 그러니 건국절을 말하지 않는 것은, 자유대한민국을 부정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역대 정부는 8.15 광복절만 외치고 있을 뿐, 건국절은 말하지 않고 있다. 그러니 우리나라가 광복절만 주장하는 것은, 1945년 이후의 3년 해방공간에서 방황하고 있는 형국이다. 물론 광복은, 다 같이 기뻐하고 축하할 일이다. 하지만 광복과 건국을 같은 뜻으로 보아서는 안된다.
지금 우리나라는 해방공간처럼 박헌영, 성시백과 같은 이들이 우글거리며, 당시 대한민국의 건국을 막으려 했던 북의 공작에 갇혀있는 듯하다. 모든 주권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백성’이 아니고 ‘국민’이다!
#정성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