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 겪는 고난에는 두 가지 기능이 있다.
하나는 삶을 더욱 강하게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삶을 더욱 깊게 만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고난의 훈련을 통해 더욱 강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시련을 지나면서 인생의 깊이가 더욱 깊어지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고통을 지나온 사람에게는 그렇지 않은 사람에게서 쉽게 찾아볼 수 없는 삶의 깊이와 맛이 있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마음에 새겨둘 만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역사를 돌아보면 수많은 위대한 인물들이 고난의 시간을 지나면서 명작을 남겼다. 빅토르 위고는 정치적 망명 생활을 하던 시기에 자신의 대표작인 『레 미제라블』을 완성했다.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옙스키 역시 시베리아 유형이라는 혹독한 시간을 거친 뒤 인간의 죄와 구원, 고통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룬 작품들을 남겼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도 정치적 이유로 고향에서 추방된 뒤 방랑 생활을 이어가면서 불후의 명작 『신곡』을 남겼다.
쇠는 풀무를 통과하면서 더욱 단단해지고, 금도 뜨거운 불을 지나야 불순물이 제거된 정금이 된다. 조개 역시 그 안에 들어온 이물질을 견디는 과정을 통해 진주를 만들어 낸다. 거센 파도를 경험해야 숙련된 뱃사공이 되고, 강한 훈련을 통해 군대는 더욱 강해진다.
곡식이 잘 익어 알곡이 되기 위해서도 햇빛만 필요한 것은 아니다. 때로는 바람과 비, 뜨거운 햇볕과 차가운 밤공기를 모두 견뎌야 한다.
성경도 고난의 유익에 대해 말씀한다.
로마서 5장 3~5절은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라고 말씀한다.
고난은 그 순간에는 아프고 힘들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과정을 통해 사람을 연단하시고 소망으로 이끌어 가신다.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요셉은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열한 번째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의 특별한 사랑을 받았고, 그 때문에 형들의 시기와 질투의 대상이 되었다.
요셉은 꿈의 사람이었다. 형들의 곡식 단이 자신의 단을 향해 절하는 꿈을 꾸었고,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신에게 절하는 꿈도 꾸었다. 그래서 형들로부터 ‘꿈꾸는 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러나 요셉이 꾸었던 꿈은 오랫동안 현실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였다.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렸고, 애굽에서 보디발의 집에 들어갔다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다.
그럼에도 요셉은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그곳에서 요셉은 바로의 신하였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났다. 두 사람이 각각 꿈을 꾸고 근심하자 요셉은 그들의 꿈을 해석해 주었다.
특별히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면서 요셉은 이렇게 부탁했다.
“당신이 잘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바로의 생일에 복직되었다.
요셉은 그가 자신을 기억해 주기를 간절히 기다렸을 것이다.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바로에게 알려 감옥에서 벗어나게 해 주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달랐다.
창세기 40장 23절은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고 기록한다.
요셉은 또다시 기다려야 했다. 그것도 2년 동안이나 잊힌 사람처럼 감옥에 머물러야 했다.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요셉은 하나님께 실망하고 좌절할 수도 있었다. 지금까지 억울한 일을 견디어 왔고, 감옥에서 한 가닥 희망을 발견했다고 생각했지만 그 기대마저 무너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셉은 절망적인 환경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믿었다.
창세기 39장 20~21절은 감옥에 갇힌 요셉과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고 기록한다. 요셉의 환경은 감옥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까지 감옥에 갇힌 것은 아니었다.
두 관원장이 꿈을 꾸고 근심할 때에도 요셉은 이렇게 고백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이 짧은 고백은 요셉이 감옥이라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 두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그런데 요셉의 감옥 생활을 자세히 살펴보면 또 하나 중요한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요셉은 근심하고 있는 두 관원장에게 “어찌하여 오늘 당신들의 얼굴에 근심의 빛이 있나이까?”라고 물었다.
요셉은 자신의 일에만 충실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자신도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 처지였지만 다른 사람의 얼굴을 살폈다. 그들의 표정에 드러난 근심까지 알아보았다.
자신의 고통에만 매몰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바라볼 수 있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이 보여주는 중요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문제만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근심과 아픔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 내가 힘들다는 이유로 주변 사람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것이다.
한 시인은 삶의 깨달음 뒤에 남는 것은 ‘자족하는 것’과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인의 삶 역시 하나님께 받은 은혜 안에서 만족할 줄 알고, 동시에 이웃의 아픔을 살피며 살아가는 삶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섬기고 돌볼 수 있어야 한다.
요셉은 또 이렇게 말했다.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아니하니이까? 청하건대 내게 이르소서.”
요셉은 자신이 꿈을 해석할 능력을 가진 특별한 사람이라고 내세우지 않았다. 모든 능력의 근원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했다.
이 고백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
돈을 벌든, 공부를 잘하든, 사업에서 성과를 이루든, 내가 가진 능력과 기회가 어디에서 왔는가를 우리는 어떻게 고백하고 있는가.
사람은 조금만 일이 잘되어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고 싶어 한다. 내가 잘해서 된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요셉은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따라 믿음이 달라지는 사람이 아니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고, 감옥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았다. 꿈을 해석할 때에도 자신의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하나님의 능력을 높였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이렇게 고백할 수 있는 사람이 진정 하나님의 계획과 선하심을 믿는 사람일 것이다.
그러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환경이 어렵다고 해서 쉽게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의 인생에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건이 일어난다. 그러나 믿음의 눈으로 돌아보면 그 모든 과정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게 된다.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를 생각하게 된다.
왜 바로의 두 관원장은 바로 그때 죄를 지어 감옥에 들어오게 되었을까.
왜 바로는 그들에게 진노했을까.
왜 요셉은 애굽에 팔려 갔으며, 많은 사람 가운데 하필 보디발의 집에 들어가게 되었을까.
그리고 왜 보디발은 바로의 신하이자 친위대장이었을까.
하나하나 따로 보면 우연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체 이야기를 놓고 보면 그 만남과 사건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 배후에는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예비하심이 있었다.
시편 74편 16절은 이렇게 말씀한다.
“낮도 주의 것이요 밤도 주의 것이라 주께서 빛과 해를 마련하셨으며.”
우리의 밝은 날만 하나님의 것이 아니다. 어두운 밤도 하나님의 것이다.
형통한 순간만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시간 역시 하나님의 손을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도 요셉처럼 모든 문제의 열쇠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할 수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야 한다.
또 다른 사람의 고민을 듣고 그들의 아픔에 함께하며,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고 복음을 나눌 기회를 만들고 있는지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
자신에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면서 다른 사람의 아픔과 고민에도 관심을 가졌던 요셉.
문제의 진정한 해결이 하나님께 있음을 알고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했던 요셉.
그의 모습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필요한 신앙인의 모습이 아닐까.
나 역시 문제를 해결하시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돌아본다.
다문화센터를 운영하고 다문화사랑밥상을 섬기는 일 역시 단순한 사업이나 활동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람을 어떻게 사랑하고 섬길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바라보아야 할 것이다.
시편 23편 4~5절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이유는 환경이 좋아졌기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믿었기 때문이다.
요셉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삶을 붙들었던 것은 감옥의 문이 언제 열리느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었다.
오늘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 있다.
우리는 요셉의 은혜를 잊어버린 술 맡은 관원장만을 쉽게 나무랄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모습을 바라보다 보면 그 안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은혜를 너무 쉽게 잊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에게 값없이 주신 구원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기고 있지는 않은가.
어려울 때에는 하나님을 찾다가 형편이 좋아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모습은 없는가.
그렇다면 술 맡은 관원장의 모습은 결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 나는 다시 자신에게 묻는다.
내 안에도 술 맡은 관원장과 같은 모습이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다른 사람의 아픔을 살피며, 모든 문제의 해답이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했던 요셉의 믿음을 나는 얼마나 닮아가고 있는가.
고난이 나를 무너뜨리는 돌이 아니라 더욱 강하게 하고 깊게 만드는 하나님의 연단이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어떤 환경에서도 나를 잊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 역시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기며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이선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