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관 서면 제청’ 후폭풍… 청와대, 손봉기 제청 반려 검토

이재명 대통령·조희대 대법원장 과거 갈등 재조명… 대법관 공석 장기화 우려
조희대 대법원장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으로 출근하고 있다. ©뉴시스

조희대 대법원장이 손봉기 대구지법 부장판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서면 제청한 것을 두고 청와대와 대법원의 충돌이 격화했다. 청와대가 제청 반려를 포함한 대응 방안을 검토하면서 대법관 공석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졌다.

22일 법조계와 정치권에 따르면 청와대는 조 대법원장의 손 부장판사 임명 제청을 반려하거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는 방안 등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는 이번 제청을 “협의를 건너뛴 유례없는 일방 통보”로 규정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18일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으로 손 부장판사를, 오는 9월 퇴임하는 이흥구 대법관 후임으로 김성수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이재명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통상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면담을 통해 최종 후보자를 조율한 뒤 서면 절차를 밟았지만, 이번에는 대면 협의 없이 문서로 제청했다.

청와대는 김 부장판사 제청에 대해서는 대법원과 일정 부분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논란의 초점은 사전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손 부장판사 제청과 대면 협의 없이 진행된 서면 제청 방식에 맞춰졌다.

◈209일간 이어진 인선 협의, 결국 책임 공방으로

노태악 전 대법관 후임 인선은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가 지난 1월 21일 손 부장판사를 비롯해 김민기·박순영 서울고법 고법판사와 윤성식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4명을 추천하면서 시작됐다. 그러나 청와대와 대법원은 최종 후보자를 놓고 209일 동안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청와대는 김민기 고법판사를 우선 검토했지만, 대법원은 김 고법판사의 배우자가 오영준 헌법재판관이라는 점에 부담을 나타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이 선호한 것으로 전해진 윤성식 부장판사는 이후 내란전담재판부 재판장을 맡게 되면서 인선이 더욱 복잡해졌다.

노경필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1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청와대에 이 대통령과 조 대법원장의 면담을 요청했지만 성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노 처장은 두 사람이 합의할 기회를 얻지 못해 서면 제청을 택했다며, 제청 방식도 청와대 민정수석 측과 협의했다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이를 반박했다. 대법원에서 후보자 협의가 마무리되면 대통령 면담을 논의할 수 있다는 일반적인 답변을 했을 뿐이며, 서면 제청 방식에 합의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제청 수 시간 전에 손 부장판사 이름을 통보받은 것을 사전 협의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명문 규정 없는 ‘사전 협의’… 비공개 관행 비판도

헌법 제104조 제2항은 대법관을 대법원장의 제청과 국회의 동의를 거쳐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규정했다. 그러나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제청에 앞서 어떤 방식으로 협의해야 하는지, 대통령이 제청을 반려하거나 임명동의안 제출을 보류할 수 있는지는 헌법과 법률에 명시돼 있지 않다.

역대 정부에서는 대통령과 대법원장이 서로의 권한을 존중하는 선에서 최종 후보자를 물밑에서 조율하는 관행이 이어졌다. 이번 대법관 서면 제청 사태는 양측의 합의가 무산되면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인선 협의 과정이 수면 위로 드러난 사례가 됐다.

일각에서는 청와대와 대법원이 법적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비공개 협의를 관행으로 이어오다가 합의가 깨지자 서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조 대법원장의 일방적인 제청과 함께 정치권이 대통령과 협의하지 않았다는 점만을 문제 삼는 태도도 비판했다. 대법관 후보자를 둘러싼 물밑 협의가 국민의 알권리와 감시를 벗어난 채 이뤄져 왔다며 양측 모두 비공개 관행에 대한 설명과 개선책을 내놓아야 한다는 취지로 지적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겸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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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조희대 ‘악연’도 갈등 배경으로 거론

이재명 대통령과 조희대 대법원장의 관계는 현 정부 출범 이전부터 긴장돼 있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대선을 앞둔 2025년 5월 1일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이 대통령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한 2심 판결을 깨고 유죄 취지로 사건을 돌려보냈다. 조 대법원장은 당시 전원합의체 재판장을 맡았다.

당시 민주당은 대법원이 대선을 앞두고 이례적으로 빠르게 사건을 처리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대법원은 법률심인 상고심의 판단에 따른 판결이라는 입장이었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민주당과 조 대법원장 사이의 불신이 깊어졌다.

이번 손봉기 대법관 서면 제청이 당시 판결에서 비롯됐다고 단정할 직접적인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정권 출범 이전부터 형성된 불신 속에서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면담이 성사되지 않았고, 7개월 가까이 후보자 협의도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에서 과거의 충돌이 현재의 갈등을 키운 배경으로 작용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왔다. 현 여권과 조 대법원장이 이 대통령 취임 전부터 긴장 관계에 있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다만 대법관 인선은 대통령과 대법원장의 개인적 관계를 넘어 헌법기관 간 권한과 견제의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과거 재판을 둘러싼 불신이 인사 협의에 영향을 줬다는 의혹이 확대될 경우 사법부 독립과 대통령의 임명권을 둘러싼 갈등이 더욱 정치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제청 반려되면 후보 추천부터 다시 밟을 가능성

청와대가 손 부장판사 제청을 반려하거나 임명동의안을 국회에 보내지 않을 경우 대법원은 인선 절차를 원점에서 다시 시작할 가능성이 있다. 노 처장도 기존 추천 후보들에게 재추천 절차가 진행될 경우 참여할 의사가 있는지 확인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새 절차가 시작되면 후보자 천거 공고와 심사를 거쳐 대법관후보추천위원회를 다시 구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추천됐던 김민기·박순영 고법판사와 윤성식 부장판사 등이 다시 후보군에 포함될 수 있지만, 새로운 인물이 천거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법원조직법상 추천위원회는 선임대법관과 법원행정처장, 법무부 장관, 대한변호사협회장, 한국법학교수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 등 당연직 위원과 법관 1명, 변호사가 아닌 외부위원 3명 등 10명으로 구성된다. 추천위가 후보자를 추천하면 해당 위원회는 해산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기존 추천위의 재가동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과거 사례를 보면 절차를 서둘러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2012년 7월 김병화 대법관 후보자가 사퇴했을 당시 대법원은 후보 추천을 원점에서 다시 시작했지만, 재제청까지 약 두 달 반, 국회 동의까지는 석 달 넘게 걸렸다. 이번에도 제청이 무산되면 대법관 공석 장기화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5부 요인 초청 오찬에 참석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희대 대법원장. ©뉴시스

◈대법관 2명 공석 가능성… 재판 차질 우려

대법원은 노태악 전 대법관이 지난 3월 3일 임기를 마친 뒤 5개월 넘게 한 자리가 비어 있는 상태다. 손 부장판사 제청이 무산되면 공석 기간은 더 길어질 수밖에 없다.

이흥구 대법관도 오는 9월 7일 퇴임한다. 후임으로 제청된 김성수 부장판사는 청와대와 대법원이 사전 의견을 조율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회 인사청문회와 본회의 표결, 대통령 임명 절차를 고려하면 이 대법관의 퇴임 전 취임은 쉽지 않다는 관측이 나왔다.

이 대법관이 속한 대법원 소부 3부는 노경필 대법관이 법원행정처장에 취임하면서 이미 재판 업무에서 빠진 상태다. 이 대법관의 후임 취임까지 늦어지면 4명의 대법관 가운데 2명이 자리를 비우게 돼 일부 사건의 심리와 선고 일정에 차질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번 사태가 장기적인 헌법기관 충돌로 번지지 않도록 청와대와 대법원이 후보자 협의 과정과 판단 근거를 투명하게 밝히고, 대법관 공백을 최소화할 해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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